모험, 용기, 도전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안규철 미술원장 인터뷰

2월 24일 원장실에서 안규철 미술원 원장
2월 24일 원장실에서 안규철 미술원 원장

―2014년 새 학기가 곧 시작됩니다. 곧 입학식이 있을 예정인데요. 신입생을 맞이하시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2학기 내내 시험문제 출제를 위해 팀을 짜서 연구를 합니다. 그렇게 굉장히 고심해서 만든 시험문제를 가지고 상당히 공을 들여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입니다. 아마 일반 미술대학과는 사뭇 다른 방식일 거예요. (다른 미술대학은) 그냥 기계적으로 시험 문제를 출제해서 잘한 학생은 합격하고 못한 학생은 떨어지는 식이잖아요. 그런데 미술원은 출제부터 진행과정, 시혐 결과에 이르기까지 미술원 선생님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엄청난 책임감을 가지고 진행합니다. 그래서 매년 들어오는 신입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대단히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올해 신입생들은―매번 경쟁률이 증가하는 추세였지만―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 더 각별하고 기대가 됩니다.”

 

―이번 신입생들을 뽑으실 때 중점적으로 보았던 부분은 어떤 부분인지요?
“주어진 과제를 얼만큼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가를 봅니다. 오랫동안 암기해서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의, 잠시 반짝하는 테크닉보다는 얼마나 창의적으로 과제에 임할 수 있는가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데, 정리하자면 얼마나 지적으로 사고할 수 있느냐, 또한 언어적 소통능력이 있느냐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시각적 표현력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겠습니다.”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마 선배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 학교는 1학년이 되었다고 긴장을 풀고 놀러 다닐 시간이 없습니다. 학생들도 그 길을 선택한 것이구요. 굉장히 타이트한 수업으로 한 학기를 보내게 될 텐데, 수업 과제가 낯선 학생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이걸 왜 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품는 학생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학교가 특별한 방식으로 오랫동안 만들어낸 프로그램입니다. 힘이 들더라도 이 과정을 즐겁게, 열심히 통과해 주십사 하는 부탁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대학교에 들어왔다고 미팅도 하고, 놀러다니고 싶다면서 한눈을 팔다 보면 얼마 안 가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생활 4년 내내 따라다니는 힘든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수업과 과제에 집중해서 ‘다른 것은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고 지금 이 과정이 중요하다’는 태도로 올인해 줄 것을 주문드립니다. 그렇게 1학년 과정을 무사히 마치면 그 뒤에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미술에 대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예술대학 지망생들을 보면 다 똑같은 입시 교육을 받고 여기까지 왔다고 보여지거든요. 그래서 학생들하고 예술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 대단히 제약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미술원 파운데이션 과정)은 수많은 과제 발표와 크리틱, 토론이 있어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아마 미술에 대해서, 또 어떻게 이미지를 다루고 그것을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배울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학년인데 일 년 놀지’ 하는 생각은 말고 여기는 여러분들이 제치고 들어 온 수백 명 탈락자들의 자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학교에 들어와서 놀 것 같으면 그 자리를 열심히 할 다른 사람이 들어왔어야 맞잖아요? 그리고 국립대학의 여러 혜택을 받는 사람으로서 정말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십사 하는 부탁도 드립니다.”

 

―지난 2월 21일 학위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사회로 나가는 졸업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당부의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항상 조금 더 멀리 바라보고,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장단점만으로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멀리 보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서 매일같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아마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선택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감수하더라도 끊임없이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를 따라가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가, 좋은 건축가, 좋은 디자이너, 좋은 미술이론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사회가 베풀어주는 존경과 평가, 이것은 결국 이 사람들이 그 어려운 선택을 하고 꾸준히 자기 일을 해 왔다는 것에 대한 보상이거든요. 이것은 예술가에게 운명같은 겁니다. 사실 쉽게 돈벌이 하고, 쉽게 안정되는 길을 가기로 하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물론 부모를 잘 만나서 막강한 후원을 받으며 예술가가 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무모할 만큼의 신념을 가지고 노력에 의해서 예술가가 되거든요. 그 길이 어렵기 때문에 권하기가 어렵지만, 기왕에 과정을 마쳤다면 졸업한 사람들은 그 길을 걸어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충분한 베이스캠프를 갖췄다고 생각하시고 정진해 달라고 주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가의 길이 쉽지 않다면, 졸업한 학생들에게도 힘든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어떤 방법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요? 선배 예술가로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저한테도 여러가지 선택의 순간이 있었죠. 주변에서 다들 예술가, 미술가로 공부를 더 하는 시점에 저는 취직을 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어요. 7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을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바꿔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제가 경험했던 것이고.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가졌을 때, 그것을 과감히, 무모하게 떨쳐버리고 다시 미술 공부를 하기로 선택하면서, 먼 훗날에 ‘당장의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내가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을 포기했다는 후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졸업생들도 앞으로) 예술가의 삶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할 거에요. 그런 판단은 필연적으로 오게 됩니다. (생업을 위한) 일을 계속 하면 편안할 텐데, 용기가 있고 자신의 삶을 존중한다면 과감히 떨쳐버려야죠. 모험, 용기, 도전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가 취업인데요. 미술원 학생들도 취업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순수)예술을 취업률의 잣대로만 재단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현실적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졸업생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지 않은 것은 미술학원 강사가 되는 것이구요. 그것은 가장 쉽고 편안하게 자신의 노하우를 가지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죠. 그리고 미술원 출신이라고 하면 수없이 많은 미술원 지망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있지요. 안타깝죠. 능력 있고 예술가로서 성장하기를 기대했던 사람이, 현실의 압력에 굴복하고 미술원 입시 학원을 하고 있다고 하면 너무 실망스럽고 참담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뽑고 가르쳤는지를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최소한의 자기 삶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성인으로서 독립적인 생활을 위한 일은 안할 수가 없겠죠. 그러나 그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자신이 가진 예술가로서의 목표와 병행할수 있는가가 되어야 하고, 병행되기 어려운 경우 당장 멀쩡한 직장일지라도 받아들이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그림을 그리는데 그것을 가지고 일러스트레이션 일을 한다던가, 편집 레이아웃 일이나 애니메이션 일을 한다던가 하는, 직업과 연결해서 할 수 있는 일거리들을 찾고 기본적인 투자를 해두는 것은 권하고 싶어요. 그야말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노동, 최소한의 취업 등은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게 부모님들에게 큰 부담이고 당연히 본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겠죠. 그런데 저는 취업도 해봤고 사표도 내봤고 했던 사람으로서 어떤 선택의 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떠한 것을 통해, 어떠한 길에 발을 들였을 때, 이것이 내 인생에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불편하더라도 이것을 포기하고 여기에 (작업에) 매진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취업을 위해 학교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 있는지요?
“사실 구체적으로는 학원에서 하는 수업, 학원에서 개인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과 같은 수업을 학교 정규 프로그램에 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아주 뾰족한 답을 못 드려서 죄송한데, 취업 문제에 관련해서는 딜레마예요. 대학 4년 마친 학생들한테 ‘부모님 도움을 받아 작업하며 살아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잖아도 심각한 취업난인데, 미술대학 졸업자로서 할 만한 일들이 그렇게 마땅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뾰족한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 용감하게 생각한다면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에 제가 직장을 다닐 적에 동료 작가, 그러니까 제 또래 전업작가가 있었는데, 그 작가는 ‘한달에 보름 정도 공사장에서 일하면 한달 내내 작업하고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는데 왜 내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기웃거리고 회사 같은 데를 돌아다니냐? 나는 막노동을 하겠다’ 하면서 그것을 실천하는 동료도 있었죠. (일은) 각자 찾아야 하고요. 학교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도와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미술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이나 후속조치가 마련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미술원 이종호 전 건축과 교수는 산학협력단에 인건비 등을 허위로 청구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가운데 지난달 20일 투신하여 사망했다.)
“굉장히 불행한 일이에요. 감사에서 지적된 부분은 결국 연구비 유용 문제인데, 사실 학교에서도 정확한 진상은 아직 알 수 없어요. 감사원에서는 그분이 연구비 관리를 잘못해서 비리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고,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좋지 않은 결말이 나버려서 난감합니다.
일단은 연구비가 정확히 어떤 식으로 들어오고 나가는지 관리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에서 연구비 출납 상황을 중간에 점검하거나 그것을 관리 감독할 수 있었던 체계는 미흡했다고 보여요. 그래서 그 부분은 당연히 학교가 보완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죠.
그런데 이 교수께선 학교 진상 조사에서 ‘연구원에게 보내야 할 연구비를 횡령했다거나, 착복했다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고, 일을 그렇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고 소명했고, 감사원에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였어요. 그런 한편에서 검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마지막까지 명예 회복을 원했어요. 앞으로 진상 조사가 정확히 이루어져서, 이분에게 과실이 있었는지, 아니면 연구소를 운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떤 편법을 사용한 것인지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아직 누가 무엇을 잘못했네 잘했네 하는 것을 판단하기 어려운 시점인데, 일단 돌아가신 분은 동료였고, 학생들의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교내에서 추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단을 하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 문제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조심스럽습니다.” (인터뷰 이후 안 원장은 고 이종호 교수 추모식 준비위원장을 맡아 28일 추모식을 진행했다.)

 

―올해 개인적인 작업이나 전시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2월 26일부터 6월 29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달의 변주곡’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외 작가 6~7명이 참가하는 전시가 있습니다. 1학기 내내 하는 전시니까 시간 되시면 구경 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을에는 조금 더 큰 규모의 개인전도 계획하고 있어서, 올해는 굉장히 바쁘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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