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서울시,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 담은 인권헌장 선포 유보
박 시장은 장로교 행사에서 “논란 야기해 죄송”
시민사회 “시민이 만든 인권헌장 선포하고 이행할 의무 있다”
성소수자 단체들, 헌장 선포 요구하며 서울시청 농성 돌입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논란과 갈등이 야기되어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12월 2일 치 <기독신문>의 ‹박원순 시장 “시민인권헌장 논란 죄송”… 한장총 임원과 간담회서 “동성애 지지 않는다” 입장 거듭 밝혀›라는 기사 첫머리에 나온 문장이다. <기독신문>은 예장합동 계열의 신문으로, 박 시장은 1일 한국장로교총연합회 간담회에 참석해 이와 같이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이날 한장총 임원들은 “갈등의 원천이 되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주기를 주문”했고, 박 시장은 “성전환자에 대한 보편적인 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며,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한다. 기사 논조를 걸러 읽더라도, 박 시장이 소위 ‘동성애 논란’에 대해 재차 유감을 밝혔다는 점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등으로 구성된 대표적인 극우 개신교계 단체다. 지난해 9월엔 종교인 과세 방침에 대해 “유물론적 사상이 근저에 있다”며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학생인권조례 논란이 한창일 때도 “교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동성애를 용인해 학생들의 건전한 가치관 형성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다.

 

서울시는 올해 8월 공개 추첨으로 시민 150명을 뽑고 인권전문가, 명예부시장 등으로 ‘인권헌장제정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12월 10일 ‘시민의 손으로 직접 만든’ 인권헌장을 발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박 시장의 재선 공약이기도 했다. 문제는 차별금지 조항이었다. “서울시민은 성별, 종교, 장애, …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에 대해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제1장 제4조가 표적이 됐다. 결국 11월 20일 열린 공청회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반대 시위와 난입으로 무산됐다. 지난 10월 2일 ‘서울시민인권헌장 동성애 합법화 조항 반대 시민연합’은 “동성애 예방 교육이나 동성애 극복 지원 활동이 진정한 인권보호 활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우리나라에는 동성애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폐해도 증가하고 있다”고도 했다.

 

11월 28일 열린 제6차 시민위원회는 45개 조항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고, 미합의된 5개 조항은 표결을 거쳐 원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서울시가 갑자기 “만장일치가 아니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뒤이어 일요일인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표결 처리에 대해 최종적으로 합의해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서울시는 “앞으로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더 광범위하게 경청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시민위원회는 서울시를 향해 “애초 약속대로 시민이 만든 인권헌장을 선포하고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고, 일부 전문위원들 또한 “민주적 원칙에 충실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확정된 인권헌장을 단지 논란이 있고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폐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냈다.

 

박 시장이 장로교 목사들과 간담회에서 ‘사과’의 뜻을 보인 것은 서울시가 헌장 선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못박은 다음날이었다. 이것이 기름을 부었다. 이에 12월 6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소속 활동가들을 비롯한 40여명은 서울시청 1층 로비를 기습 점거해 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인권헌장 선포와 박 시장에 대한 면담을 요구하며 매일 저녁마다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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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재빨리 퇴거 명령을 내렸으나 농성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인권의 원칙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 소신을 버리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태도”라고 썼다. 노동당 성정치 위원회는 성명에서 “서울시와 서울시장은 인권을 적대하는 혐오세력에게 굴복했다”고 했다.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도 “인권은 합의할 사항도 아니며 타협할 사안도 아니”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또한 성명을 내고 “한국은 지난 9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바 있는데, 서울에서 ‘찬반’을 핑계로 인권헌장 선포 유보 사태가 일어난 것은 국제적 수치”라고 했다. 통합진보당은 대변인 논평에서 “인권변호사 출신 시장을 둔 서울시민들이 인권 후퇴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미 서울시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삶의 권리를 누구 판단으로 인정하고 말고 한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박 시장이 ‘동성애’ 문제로 곤욕을 치른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는 지난 10월 12일 ‹박원순 시장, 한국의 동성결혼 합법화를 바라다›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여기서 박 시장은 “한국 헌법도 동성 커플들을 인정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미국 지역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였지만, 국내에서 일부 뉴스 사이트가 이를 크게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시는 14일 곧바로 설명자료를 통해 “동성결혼 합법화를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 아니”라며 “인터뷰 과정에서 (한국의)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시장 본인의 의지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며칠 뒤 박 시장은 장로교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마치 (제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처럼 나갔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재차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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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1990년대 남한 사회의 시민운동을 개척한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등으로 유명했던 시민운동가 박원순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내 당선됐다. 2014년 6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해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재선도 성공했다. 그는 선거 이튿날 새벽 당선 소감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시민 여러분이 낡은 것과의 결별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 저는 앞으로 오로지 시민만 생각하며 언제나 시민 편에 서겠습니다.” 글/사진: 선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