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폭력 게임의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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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5일 예고편으로 첫 선을 보인 <헤이트리드>라는 게임은 공개되자마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평범한 탑뷰 시점(위에서 본 시점을 뜻하며 3D 게임을 만들 수 없던 시절, 공간감을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됨)의 슈팅 게임에 불과해 보이는 <헤이트리드>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다름 아닌 게임의 컨셉 때문이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증오로 가득찬, 인간을 혐오하는 대량 학살범의 역할을 맡게 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민간인과 경찰들을 ‘학살’해야 한다.

 

비디오게임에서 이런 비윤리적이고 과도한 폭력 묘사가 나온 것은 처음은 아니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2>도 테러리스트의 시점에서 공항에서 민간인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 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GTA) 같은 게임에서도 원한다면 대량 학살을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콜 오브 듀티의 그 장면은 내러티브적 요구에 의해 들어간 하나의 장면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그랜드 테프트 오토>(GTA)는 그것이 게임의 본래 목적이 아니라 가능한 일탈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 게임과는 다르다. 이 게임의 목적은 ‘대량 학살’ 그 자체다.

 

비디오게임이라는 매체는 폭력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유행하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같은 게임만 봐도 킬스트릭(Kill Streak, 게임에서의 연속킬)을 이어나갈 때마다 호쾌한 음성으로 더블 킬이니 트리플 킬이니 하며 카운트를 해준다. 대부분의 비디오게임들 역시 이처럼 살인에 보상을 준다. 이에 대한 내부의 자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임 기획자 워런 스펙터(Warren Spector)는 자신의 게임들은 폭력이 불편하게 느껴지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노력들을 비웃을 수도 있다. 게임 디자이너 라프 코스터(Raphael Koster)가 든 예시처럼, <테트리스>도 블럭을 사람 형상으로 바꾸고 ‘아우슈비츠에서 시체를 효율적으로 채워 소각하려는 작업’이라는 식의 설정만 갖다 붙이면 순식간에 비윤리적인 게임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데드 라이징>과 같은 게임은 대량·무차별 학살의 이미지와 매커니즘을 담고 있지만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게임의 설정이 그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헤이트리드>는 그런 식의 정당화를 전면 거부한다. 개발자들은 이 게임의 주인공이 그저 증오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악당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왜 이런 게임을 만드는 걸까? 자연스레 드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개발자들은 이미 홈페이지에 명시해두었다.
“이런 궁금증이 드실 겁니다. 왜 이런 걸 만드나요? 오늘날, 많은 게임들이 고상해지고, 다채로워지고,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고, 뭔가 한 차원 더 높은 예술을 지향합니다. 그냥 엔터테인먼트로 남기보다요. 우리는 이러한 경향에 반대하는 뭔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뭔가 다른 거요. 플레이어에게 순수한, 게임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걸 말입니다. 바로 이 게임처럼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우리는 ‘네, 이건 사람들을 죽이는 게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이유는 오직 뿌리 깊은 증오심 때문입니다.”

 

게임을 예술과 구분 지으며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로 규정하는 인식은 지난 몇 달간 미국 게이밍 커뮤니티를 뒤흔들고 있는 게이머게이트 사건의 지지자들과도 일맥상통한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야. 왜 심각하게 받아들여?”. 게임은 게임일 뿐이니, 대량학살과 같은 비윤리적 행위도 게임인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게임에 대한 문화비평 담론의 적용을 격하게 거부한다. 아니타 사키시안(Anita Sarkeesian)의 페미니즘 비평이 격렬한 거부반응을 맞은 데에는 여성혐오 정서뿐만이 아니라 이런 저항감도 함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들은 결국 매체의 가능성을 극도로 제한하게 될 것이다. 게임의 ‘순수한 본질’이 싸이코패스가 되어 사람이나 쏴 죽이는 것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가 “게임은 예술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을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반발했던 것처럼 이들에게는 그들의 매체가 좀 더 고차원적인 무언인가로 인정받길 원하는 욕망 또한 상존하고 있다. 게임은 게임 그 이상의 무엇이고, 심각하게 받아 들여져야만 한다. 권택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