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미명하에 가해지는 폭력

촬영장 내 인권침해,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최근 A 배우는 타학교 촬영장에서 촬영 전날 갑작스러운 노출을 통보받았고, 이에 거부 의사를 표현했지만 이어지는 제작진들의 강요 속에 촬영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한다. A 배우는 노출 통보 이전 몇 주 전부터 이야기되어오던 미팅을 진행했었고 그사이에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 약속하지 않는 퇴근 시간에 이미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A 배우가 촬영을 진행하고 납득하고자 한 이유는 이미 출연을 약속하였고, 그래도 학생들의 작품에서 원활한 진행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학생들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본교의 경우 연기과가 타과와 협업하여 영상 촬영을 하지만 계약서는 쓰지 않고 주로 구두 약속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의 작품이고 캐스팅의 과정에서 서로의 신분을 확실히 알고 있는 부분이 크게 작용한다. 친분이 이미 있는 관계의 작업인 경우 얼핏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이는 반대로 배우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촬영장 혹은 촬영 과정의 불편함을 표현하면 단순한 사무적 관계를 넘어 교우 관계가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배우와 연기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스태프에게도 마찬가지다. 향후 진로를 전공을 살리고자 한다면 쉽게 부당대우에 관해 얘기하기 어렵다. 배우와 마찬가지로 스태프 또한 차후 작품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 작업하는 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놔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출자에게도 어려움이 있다. 연출자 또한 학생이며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만큼의 전문성을 갖추긴 어렵다. 애초에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촬영 현장에 들어서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아내기 위한 역할, 그리고 그 메시지를 만들어 주기 위해 함께 해주는 인원들을 존중하면서도 지휘해야 하는 역할 이 모두를 동시에 진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교내 연출자 B씨의 경우 최근 작업을 하며 짧고 제한된 시간 내에 많은 인원을 통제하고 원하는 작품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 거의 묘기에 가까웠다고 회상한다. 그는 연극원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것에 비해, 영상원의 경우 교내 작품부터 졸업 작품까지 자신의 사비로 오롯이 부담해야하였고, 한 컷당 돈이 든다는 생각에 예민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도 투자 대비 학생들에게 좋은 결과를 원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학교가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경쟁 상황에 매몰리면서 작업을 하는 순간만은 작품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나 또한 스텝들을 잘 케어하지 못한 부분을 반성하고 있다”

 연출자 B씨는 자기연민에 빠지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계약서, 페이, 작품성을 떠나 함께 일하는 동료로 와준 배우와 스태프들을 위해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는 인지하는 자세를 갖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혹여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본인의 실수가 있었다면 빠르게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답했다. 이미 연출자 본인 또한 모두가 자신의 부족함을 감내해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친구, 동기 그리고 동료. 그사이 모호한 관계에 놓여있는 만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위의 사례는 교내 작업에서만 한정되어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학교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즐비해 있다. 이는 문화예술 업계 전반의 문제이며 작품을 향한 문화예술인의 열정을 좌절시킬 수 있고 해당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영화 인력이 지속해서 양성되고 스태프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할 촬영장에서 배우들의 인권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업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예술성이 뛰어난 시나리오와 작품일지라도 부당대우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촬영된 작품이라면 좋은 작품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렵다. 예술인의 사기를 꺾고 산업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해결책이 요구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문제점 개선을 위해 우선 법률의 개정이 요구된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조의4 항에서는 계약 체결 시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추상적이다. 만약 명시되지 않은 조건 이외의 요구를 받을 때 배우가 이에 거부 의사를 밝히기 어려우며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교내의 작업의 경우 대부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개정이 되더라도 노동 법률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개입되지 않는다. 하지만 위의 법률이 계약 체결 시 업무의 범위나 보수, 근로시간 등 구체적인 근로조건을 명시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개정된다면 스태프가 촬영장에서 인권침해를 받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률 개선안은 한계가 분명하다. 세상엔 다양한 촬영 현장이 있고 이 법률을 적용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촬영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법률 개정만으로 촬영 현장의 인권 침해와 부당대우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배우에게 어떠한 합의점도 주지 않고 단순히 연출자의 요구를 꼭두각시처럼 따라가게 만드는 촬영 분위기 역시 함께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이 업계에선 당연하다.’, ‘○○씨가 처음이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 업계는 다 그래요.’와 같은 말들은 연기자를 향한 부당대우와 폭력에 가까운 강압적 요구를 정당화한다. 물론 연출자만 촬영장에서 갑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배우가 연출자나 스태프에게 갑질을 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연출자든 배우든 각자의 분야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하려 노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더는 예술을 앞에 내세워 서로에게 강압적인 폭력을 가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하며 촬영 현장의 구성원 모두가 정당한 항의와 요구를 당연히 할 수 있는 촬영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A 배우는 촬영 전부터 촬영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한다. 자신의 요구가 촬영 전에는 인정받는 것으로 보여도 당일 현장에서 어떤 요구를 강요할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노출이 작품에 중요하다는 연출자 한 명을 이해시켜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배우가 무엇을 입을지 사실은 관심 밖이며, 추가되는 노동과 문제없이 빨리 일이 진행됐으면 하는 모든 제작진까지 이해시켜야 했다. A 배우가 용기 내,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 바닥에서 계속 일하려면 말 들으라는 식의 협박이었다. 과연 이 바닥은 어떤 곳이기에 부당함을 이야기하여도 인정받지 못하고 처참히 무시되어야 하는 것일까.

 단순히 배우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이어지는 촬영과 준비 속에 체력과 정신력은 바닥이 나고 연출, 스텝, 배우 모두가 지쳐가는 상황 속에서 안타깝게도 무의식적으로 관습과 관행에 의지하게 되는 구조의 문제다. 물론 앞서 말한 법률이 개선되어도 단번에 촬영장이 변화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법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것을 명시하고 인정해준다면 제작진과 배우 모두 서로 긴장을 할 수 있고, 존중이 시작될 수 있다.

 또한, 공동의 작업물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이 다른 구성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강압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법률에 부당대우에 저항할 권리를 주장하는 가장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요구하면서도 구성원 간 수평적인 관계의 촬영 현장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가 노력해야 한다. 결국,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촬영장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jwwoopp@karts.ac.kr
박지우 기자

hamin@karts.ac.kr
승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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