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획 : 한예종의 손



정년, 마지막 학기를 마치신 소감

학교에서 신분이 좀 바뀔 뿐이지 한동안은 크게 다를 건 없을 것 같아요. 모든 교수들이 동의를 해줘야 가능한 거지만 만약 명예교수가 되면 70세까지는 한 학기에 5학점을 가르칠 수 있어요. 수업 수가 줄어든다는 것 정도? 그것보다도 65세라 경로 우대 대상이 됐다는 게 좀… 뭐, 받아들여야죠.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 거니까.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으신가요? 

나도 모르게 열심히 하게 되고, 즐겁다 느끼는 수업이 있는데 대게 1학년 수업이에요. 1학년들은 순진해서 내가 야단쳐도 그냥 듣고, 거짓말해도 믿어주는데 그에 비해 고학년을 가르치는 건 힘들어요. 그들은 이미 한 명의 작가이고 예술가인데 내가 평가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되는지, 하는. 

한예종 영화과의 장점이 있다면? 

다른 학교는 가르쳐보지도, 다녀보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위계나 억압은 없는 것 같아요. 군기를 잡는다거나 쓸데없는 예의 차려야 한다거나. 난 그런 게 좋아. 스승의 날도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어. 스승의 날에 찾아오면 나한테 야단맞아요.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학생들은 교실에서 수업을 통해 만나는 것이 전부였으면 좋겠어. [왜요?] 귀찮아. 부담스럽고. 예전에 뒤풀이 오래서 잠깐 갔는데 너무 어색해서 못 앉아있겠더라고. 다들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져서… 

기록을 세운 게 있으시다고요! 

수업에서 단 한 번도 시험을 본 적이 없어. 다 과제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누군가를 테스트하는 걸 싫어하나 봐요. 당하는 것도 싫고. 과제가 다 자아 성찰적이잖아. 정답과 오답을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닌. 우리 학교가 그럴 수 있는 학교인 게 다행스럽고 고마워요. 그런데 학생들은 차라리 시험 내달라고 해. 과제 제출 안 하면 끝까지 따라가니까… 

학생들이 선생님을 무서워하는데… 

내가 가끔 분노조절장애가 있어요. 옛날에 성질을 못 참아서 학생들에게 심하게 했던 적이 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고 싶어요. 

먹는 거 좋아하시나요? 

나는 먹방을 하면 잘할 것 같애. 몰랐는데, 예전에 구교환 배우가 나 밥 먹는 걸 한참 보는 거야. 그리고 하는 말이 식사를 너무 맛있게 하신다고. 사람 관찰하는 데에 전문가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진짠가 싶으면서 뿌듯하더라고요. 식탐이 있는 건지 음식 한 번 먹을 땐 정말 정신없이 먹어요.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면 너무 좋아. 특히 냉면. 세 끼 냉면만 먹으라고 해도 살 수 있어. 내가 <올드 보이>를 찍는다면 오대수가 냉면 먹는 거로 만들 거야. 좌파들이 자주 먹는 평양냉면 있잖아요, ‘을밀대’도 좋고 ‘북촌손만두’ 피냉면도 좋고. 냉면은 다 좋아. 

돌곶이 나만의 맛집이 있다면? 

한때는 ‘테이블 토크’ 자주 갔는데 나이 드니까 ‘건강한 밥상’을 찾게 되더라고. 근데 문 닫아서 너무 아쉬워요. 어디로 가셨을까… ‘덕수 칼국수’도 좋아. 칼국수랑 스팸 주먹밥이 내 소울푸드. 

내 손은 ___ 하다!

탐정이 추리를 한다면 내 손을 보고 “이 사람은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구나” 할 것 같아요. (굳은살을 가리키며) 여기 이게 우등생들만 갖고있는 거거든.  

내 손의 싫은 점  

손이 작아. 장갑도 여성용 써야 돼. 그리고 못생겼지. 고등학교 때 수학 과외 선생님이 백발에 되게 기품있는 분이셨는데, 고급 만년필로 공식을 정갈하게 쓰는 손이 너무 길고 하얗고 나랑 정반대인 거예요. 그때부터 손 콤플렉스가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장점도 있어요. ‘따뜻해’. 그래서 추울 때 손을 잡아주면 사람들이 좋아해.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내가 내 손의 가장 좋아하는 점이에요. 

손의 온도가 마음의 온도와 비례한다고 봐도 될까요?

그건 아니고.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며 드는 생각 

어렸을 땐 사실 정말 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하는 게 없잖아요. 공부를 잘했다고 해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그런데 어른이 돼서 처음 무언가를 하고 싶다 했던 게 ‘영화’인 것 같아요. 적어도 영화를 직업으로 갖게 된 후부터는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한 적은 없었어요. 먹고 살기 위해 비굴하고 모욕적인 일을 참아야 하는 상황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게 너무 행운이에요. 더군다나 이렇게 자유로운 학교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얻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자는 아니더라도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고… 너무 행운이었어서 한편으로는 좀 나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또 돌려드려야겠죠. 

김홍준 (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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