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 연극원 예술사 연출 스튜디오 공연 <나는 사라진다> : 사라짐의 시간

5월 28일 상자무대에서 진행된 연극원 스튜디오 공연 <나는 사라진다>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아르느 리그르(Arne Lygre)의 작품으로 실험적인 형식과 대사로 이미 본국인 노르웨이에서는 그 명성을 입증받은 작품이다. 희곡 작품 보통의 대화 형식이 아닌, 소설에서 많이 쓰이는 직접 화법 방식과, 1인칭 서술 방식을 택한 이 작품의 주된 주제는 ‘난민’이다. 

북유럽은 이전부터 그들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주제로 ‘난민’을 꼽아왔다. 단순히 사회나 정치면의 이야기뿐 아니라 현재 만들어지는 많은 종류의 예술 작품들은 ‘난민’ 혹은 ‘이민자’를 메인 토픽으로 택해왔다. 2017년 제7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인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 <더 스퀘어>(The Square)는 바로 그 ‘난민’ 문제, 다시 말해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난 ‘타자’의 출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혹은 받아들일 수는 있는가를 전면으로 묻는 영화였기에 유럽에서 열리는 시상식 중 가장 권위가 높은 칸의 황금 종려상을 거머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 유럽이 바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기에. 이후에도 영화 <경계선>(BORDER)이나, 오늘 다룰 희곡 <나는 사라진다> 등 북유럽의 이민에 대한 관심은 여러 가지 예술 작품으로나타나고 있다. 

<나는 사라진다>는 대단히 독특한 대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직접 화법을 택하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친구가 사라졌어. 빨리 올게라고 말하고, 딸을 찾으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어. 

내 친구는 울었어. 난 남편을 잃었고 친구는 자식을 잃었다고, 그건 비교할 수 없다고 했어.

나도 아이를 잃었어. 오래전에. 지금은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아.

나는 그 사건을 생각해.” (1)

“‘나는’~을 한다, ~을 생각한다. ‘나는’ ~에 서 있다, 앉아 있다” 등의 서술 방식이 이어지는 이 작품의 대화 형태는 두 가지 효과를 야기한다고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무시무시한 객관화다. 갑자기 나라를 잃고 난민이 되어버린 주인공이 자신의 상황을 무척이나 객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스스로와 사건을 분리하려는 노력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사건과 가까이 붙어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서술하는 구성은 대화라는 발화 형식의 시간성을 허문다. 직접화법의 1인칭 서술 방식은 사건과 상황으로부터 극 속 주인공을 떨어트려 놓는 효과도 야기하지만, 동시에 관객에게도 언어적인 소격 효과를 발생시킨다. 다음은 <나는 사라진다>의 극작가 아르느 리그르의 말이다. 

“저는 연극에서 시각보다 더 강력한 언어의 힘에 관심이 있습니다. 말 자체의 힘, 또는 배우에 의해 발화된 말의 영향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남자의 엄마를 연기한 배우가 다른 인물의 대사를 말할 때, 관객은 언어의 힘에 의해 그 사실을 믿게 됩니다. 젊은 아들을 연기하는 배우가 어린 소년 역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도 관객의 마음에 진실로 다가오게 되죠.” (2)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형식의 두 번째 효과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언어로 전해지는 고독이다. 여러 명의 배우가 등장해 서로 대화를 주고받기는 하지만, 대화 형식이 아닌 서술 형식을 택한 이상 그들의 대화는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선형적 형태라기보다는 앞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시간의 구조를 뒤튼, 비선형적 구조가 된다. 그리고 그 비선형적 구조, 다시 말해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에서 공감을 구할 수 있기보다는 스스로와의 독백에 더 가까운 대화들은 공간을 단순히 공명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극에서 주인공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행하는 일은 대화가 아니라 바로 ‘상상’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공명하는 고독과, 언어로 전해지는 힘을 전달하기 위해 <나는 사라진다> 공연의 연출은 무대를 매우 간소화시킨다. 침대 하나가 놓여 있고, 무대의 앞쪽과 중앙에 네모난 구획들이 놓여 있다. 그 구획을 옮겨 가며 배우들은 독백(대사)을 외운다. 하나의 구획에서 또 다른 하나의 구획으로 옮겨가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을 들이며, 배우들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다. 꼼짝없이 포획된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하는 그 붙잡힌 시간들은 관객을 적극적으로 그들의 ‘상상’에 참여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지독한 소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이 이중적 포획이 지금의 난민들이 처한 처지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 앞에 있다고 ‘상상’되는 존재지만, 동시에 정확하게 ‘공감’할 수는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상상되면서도 소외되고, 대화하면서도 동시에 독백에 그친다. 그리고 그 사라지는 독백과, 대화들이 연극이라는 형식을 입고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처럼 느껴진다. 연극은 지속되는 매체가 아니라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사라짐으로써 완성되는 매체이기 때문에.

박채원 기자
Leanonpete2017@karts.ac.kr

(1)    아르느 리그르, 『나는 사라진다 / 나의 그 무엇도 』, 권현정 옮김, 지만지드라마, 2019.
(2)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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