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한국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국제무대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한국의 예술, 한국사회의 문화철학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영화계에서는 미나리, 대중음악계에서는 BTS를 비롯한 유명 K팝 가수,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수연과 2020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를 최연소 우승한 첼리스트 한재민 등 한국의 예술가, 혹은 한국을 주제로 한 작품이 국제무대에서 주요한 업적을 이루어내고 있다. 2021년, 한국의 문화예술계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가의 성과를 바라보는 한국사회 또한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고 있다. 한국사회가 이들을 보고 보이는 반응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을 두고 예술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라는 평가를 빼놓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이, 혹은 한국을 주제로 한 작품이 세계에서 인정 받았다는 데에 집중하는 것은 예술가의 K- 정체성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문화철학에 관해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사실 한국사회가 이처럼 “전세계에 우리나라의 이름을 알린 것”에 열광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1970-80년부터 본격화된 민족주의적인 움직임은 개인의 성공이 곧 이들의 성공을 뒷받침한 한국사회의 성공임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한국사람이라면 마땅히 한국이 국제적 명성을 높여가는 데에 일조해야함을 강조한다. 마치 BTS의 성공에 BTS 멤버나 기획자, 회사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키워낸 것이 한국사회라고 이야기하고, 한국인이라면 국위선양을 성실하게 해내고있는 BTS를 응당 응원하고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분위기처럼 말이다. 국가사업으로 K팝산업을 진흥해야한다는 정책적 주장도 전세계에 한국의 이름을 알리고, 외화를 벌어오는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해내겠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SNS에서 보이는 여러 콘텐츠들과 그를 향한 반응에서도 한국 대중이 국제무대에서 우수한 결과를 얻은 한국의 문화예술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볼 수 있다. K팝 아이돌을 비롯한 대중음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면 바빠지는 이들이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리액션 영상을 찍는 채널들이 그중 하나인데, 국내에서는 여러 채널이 K팝 가수의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을 재편집하여 업로드하고있다. 대부분의 반응은 소위 “국뽕”이라고 하는 민족적인 자긍심이 피어난다는 것이며, 이곳에서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자신이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본인의 능력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인 가수들과 콘텐츠를 찬양하고있다. 

1974년,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정명훈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수상하고 김포공항부터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했고 수많은 국민은 그를 오색의 종이꽃으로 환영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기에 힘을 키워야한다는 민족의 과제가 있었기에, 정명훈의 수상소식은 한국인에게 더없는 민족적 자긍심을 키워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술가의 성공이 국가나 민족의 성공으로 환원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예술가의 성과가 국가의 지원 덕분에 만들어졌다거나 국가가 이들을 키워냈기에 한국사회가 한마음으로 이들을 응원해야한다는 주장은 전후에 국력이 약해진 때에 생겨난 의무감의 선물로, 이제는 설득력 없는 주장이 되었다.

다행히도 오늘날에는 “예술가의 능력이 얻은 결과를 국가가 가로채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반응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많은 대중이 예술가의 영역과 국가의 지원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 같다. 여기에는 대중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많은 예술작품이 예술가가 아닌 국가의 것으로 빼앗긴 전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국가, 같은 문화권에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예술가가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데에 괜히 자랑스러워지는 것은 많은 이들이 경험했을 듯하다. 그러나 이것을 국가 차원에서 과도하게 이끌어내거나, 작품에서 예술가가 지워지는 정도에 이르면 상황이 바뀐다. 더 이상의 국가 개입은 지원이 아닌 간섭의 영역이 될 것이다. 수많은 국내 예술가가 국제사회에서 이름을 알리고 “한국”이라는 소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 예술가와 그에게 붙은 K-를 구분해 생각해야하는 필요성이 강조된다. 예술가의 성과를 국가의 성과로 환원하거나 그들을 국가적인 정체성에 한정하기보다는 예술가와 그의 시선에 집중해야 할 때가 왔다. 

eunicehong95@karts.ac.kr
홍유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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