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알면 좋습니다 1편

서구 미술시장의 간략한 역사

코로나 19를 마주한 지 1년이 넘었다.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축시켰으나 반대로 우리의 다른 욕망, 자산증식에 대한 욕망은 촉진했다. 각종 주식과 부동산 프로그램이 매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였고, 또 성행하고 있다. 나 역시 아직 20대 중반이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많은 시간을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할애하고 있으며, 할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하다. 하지만 모두가 주식 이야기를 할 때면 주식이 끝물이라고 하던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과 종합주가지수는 우리의 투자 시선을 미술품으로 옮기도록 하고 있다. 작년 12월 1일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19일까지, 서울옥션의 주가가 160% 정도 급등한 것은 미술 시장의 호황에 대한 기대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앞으로의 글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다. 미술 시장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과 어떻게 다른가? 주식과 부동산보다 재화의 외재적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운 미술품의 값을 우리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미술품은 수집의 대상인가, 투자의 대상인가?

서구 미술 시장의 간략한 역사

[근대 이전]

미술 시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17세기 이전, 미술 활동의 기반은 후원이었다. 미술가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후원자의 주문을 받아 미술품을 제작하였다. 미술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후원자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며 미술품 제작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미술가에게 그림 속 등장인물과 인물의 의복, 배후 풍경 등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기도, 미술가가 비싼 재료를 남용하지 않도록 감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요구와 감시에 따라 미술가가 제작한 미술품은 모두 후원자의 소유가 되었다. 기능공의 지위에 있었던 미술가의 사회적 지위는 미술 수요자의 지위에 비해 훨씬 낮았고, 심지어 미술가의 인격적 가치는 그가 만든 미술품의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기도 하였다. 한편, 근대 이전 미술의 주제는 주로 신화와 종교, 역사 등 초월적이었다. 미술을 즐긴 후원자들은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유한계급이었고, 자연스럽게 이들은 일상적인 주제보다 초월적 주제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초월적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신화와 종교, 역사 등에 대한 상당한 인문학적 교양과 지식을 요구했기 때문에 미술은 가장 고상한 취미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 고상한 취미는 왕실과 귀족이 자기 가문의 역사적 전통과 현재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의도와도 부합했다.

[근대 초기]

근대사회가 탄생하고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중산층이 등장했다. 이들은 미술가를 후원할 만큼 막대한 부를 형성하지는 못하였으나, 미술의 주요한 소비자로 자리매김하며 미술 활동의 기반을 후원제도에서 시장제도로 이양시켰다. 자연스럽게 근대의 미술가들은 특정 후원자들에게 구속되어 후원자의 취향에 따라 미술품을 제작하는 장인이 아닌, 자신의 주관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는 자유로운 생산자로 거듭났다. 그러나 서로 잘 아는 사이였던 근대 미술 생산자, 소비자와 달리, 중산층과 자유로운 미술가라는 불특정 다수의 미술 생산자, 소비자 사이에는 개인적인 관계가 단절되었다. 이러한 단절은 미술을 중개하는 매체를 발달시켰다. 미술상과 경매회사, 미술관, 전시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매체는 미술 소비자에 대해서는 공급자의 역할을 하였고, 미술 생산자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취향을 대변하며 미술시장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근대 이전의 후원자들과 달리 생산 활동에 종사했던 중산층은 신화와 종교, 역사 같은 초월적 주제와 과시적인 용도의 미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자기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둘 수 있는 작은 크기에, 이해하기 쉬운 일상적인 주제들(풍경과 풍속, 정물 등)을 다룬 그림을 요구했다.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미술가들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중산층의 선호에 맞춰 일상적인 주제의 작은 그림들을 그려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선호는 유행에 따라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루벤스와 같은 소수의 천재 미술가만이 미술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모더니즘 시대]

인상주의 등장 이후 시작된 모더니즘 미술은 이전의 상업성을 배제하고 오로지 순수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미술적 경향을 띠었다. 미술가들은 다른 어떤 목적과 결부되지 않는 미술의 순수한 자율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미술의 자율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모더니즘 미술가들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없는 순수한 추상미술을 탄생시켰고, 이는 대상이 현실에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모두 구체적인 대상을 묘사하고 재현하는 이전의 모든 미술과 구별되는 것이었다. 추상미술로 대변되는 모더니즘 미술의 실험정신은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의 예술적 혁신으로 이어졌으나 너무나 앞서 나갔고, 미술가를 일반 대중에게 멀리 떨어져 나가도록 했다. 또한 많은 모더니즘 미술가는 대중문화를 문화산업으로 간주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고수했으며, 이들은 스스로 순수미술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신들을 고립시켰다. 당연하게도 모더니즘 미술과 일반 대중은 소통이 어려웠고, 순수미술에 대한 시장은 이전의 활기를 띠지 못했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후원자와 같이 모더니즘 미술을 옹호한 소수의 엘리트 수요자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이들에게 모더니즘 미술은 자신의 교양과 시대를 앞선 취향을 입증하는 상징물이었다. 특히 미국의 중산층 대부호들, 그 부인과 자녀들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시장 가치가 폭락한 유럽 미술의 주요 수집가로 활동하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수순 미술가들은 미술학교 교수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보헤미안으로서 가난한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소수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순수미술은 20세기 중반부터 일반 대중에게까지 관심을 받았다. 이 시기에도 미술품 구매자로서는 대부호가 중요하기 했으나, 고등교육의 확대로 순수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와 참여가 점점 확산되었고, 미술의 소비 방식은 소유부터 관람까지 다양해졌다. 더 이상 미술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대중 수요자가 늘어남에 따라 미술의 주제도 변화했다. 엘리트 수요자들은 순수미술과 대중문화를 엄격히 구분하고 대중문화를 차별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대중문화에 노출되고, 대중매체와 함께 성장한 대중 소비자들에게 순수미술과 대중문화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술가들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 후반부터 대중문화 종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이 대중문화에 충원되면서, 순수미술 생산자와 대중문화 생산자의 사회적 지위에 차이를 둘 마땅한 근거가 사라졌다.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바탕 위에 팝아트를 기원으로 삼으며 시작된 포스트모던 미술은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여러 예술 장르를 융합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또한 모더니즘 미술가에게 대중을 즐겁게 하는 오락적 측면은 진지하지 못한 비예술적 요소서 금기시되었지만, 포스트모던 미술의 도래 이후 순수미술에서는 오락적 측면이 부각되고, 대중문화 스타와 비슷한 모습의 스타 작가들이 (제프 쿤스나 데미안 허스트 등) 탄생했다. (1)

미술 시장의 변화가 시사하는 점들

미술 시장의 등장은 단순히 미술품 거래 방식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시대 맞춰 미술 소비자의 요구는 변화하였다. 그리고 미술가 소비자의 요구를 수용하기도, 요구에 저항기도 하면서 미술로써 살아가려 했다. 또한 미술에 대한 취향과 소비 방식(전시와 경매, 아트페어 등)의 다양화는 미술 생산의 다양화로 이어졌고,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미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미술 발전의 역사가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미술을 향유했던 수많은 사람에 의해 쓰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 미술 시장의 탄생 이후 미술 시장에는 언제나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이 이루어졌으며, 그 수요마저 소수의 천재/스타 작가가 독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미술품 구매에 있어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미술품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투기를 위해 미술품을 구매하는 세력도 언제나 존재했다. 이러한 상업화의 부작용에 맞서 미술 시장을 거부하는 대지 미술이나 개념 미술, 퍼포먼스 등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미술시장은 미술에 대한 기록과 개념까지 거래하였다. 시장이 시장을 향한 미술의 거부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제 미술의 상업화는 막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창랑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술 시장이 야기한 문제점을 외면하고 미술의 비상업화를 외치기보다, 미술 시장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점을 바로잡아 건전한 미술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몇 가지 질문들이 머리를 스친다. 건전한 미술 시장은 무엇인가? 미술품 과잉공급은 왜 해결되지 않는가? 인간에게 예술을 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 있는가?

(1) 이재희, 《미술경제학》, 탑북스, 2012, pp. 16-32

오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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