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쉬는 시간이 생기면 종종 인스타그램에 들어간다. 우선 밀린 스토리들을 쭉 확인하고 뭔가 공허한 마음으로 지인의 새 게시글을 보다 보면 어느새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정보들이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인스타그램이 지난해 8월 팔로워들의 게시물 확인 이후 이어지는 ‘추천 게시물’ 업데이트에 많은 이용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금세 불편함의 소리는 작아졌다. 싫어도 무의식적으로 보게 되었던 게시물들을 통해 인스타그램은 더욱 정교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냈고, 알고리즘에는 나의 최근 관심사가 종종 뜨게 됐으니까.

처음 인스타그램에 가입했을 때의 설렘이 생각난다. 물론 어느 정도의 꾸밈이 있을지언정 나만의 취향과 일상을 사진으로 모아 볼 수 있고 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반대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의 피드는 친구를 대신 설명해주는 빌보드 같았다. 매일 연락하고 있진 못하지만 그 친구의 일상, 취향, 사소한 고민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 나에게는 일종의 소통 창구로 느껴졌다. 

그런데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이 과연 온라인상에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접속하면 나도 모르게 보고 있는 게시물들을 통해 알고리즘의 먹잇감이 되어 보다 정교한 광고판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의 자유로운 발언으로 느껴졌던 글귀는 책의 파편이자 출판사의 마케팅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조금 배신감을 느낀다. 한때 불거졌던 광고 논란도 마찬가지다. 광고대행사의 제품을 협찬받아 포스팅하고 돈을 받던 셀럽들이 미운 것은 아니다. 어떤 플랫폼을 가도 광고의 먹잇감이 되는 게 서럽다.

코로나로 인해 활동영역이 제한되면서 새로운 만남과 소통을 찾는 시도가 늘고 있다. 마스크를 모두가 벗게 되더라도 진정한 소통을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이어 또 다른 플랫폼이 등장할 것이고 사람들은 대거 이민할 것이다. 사실 인스타그램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이민자는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이 든다. 과연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 또 어떤 것을 강요할 것인가. 이번 소통은 뭔가 다를까? 그 이후 또 다른 이민은 없겠지? 아니. 이러지 말고 그 어떤 이민에도 끄떡없는 단단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본다. 단단한 사람이라. 주위 사람들의 잘난 일상을 보아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하고, 쿨하게 하트로 응원해줘야 하고, 나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야 하고. 인스타그램이 최근 틱톡을 모방한 릴스를 출시하면서 내걸었던 문구가 “너의 특별함을 보여줘”였다. 뭐 하나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내게는 특별함을 강요하는 이 유토피아는 부담일 뿐이다.

‘행복’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은 가히 병적인 수준이다. 우리에게 행복은 권리일까 의무일까? 현대사회에서 ‘행복’은 ‘의무’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행복이 각자의 의무로 간주되면서 행복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은 무능하고 불행한 인간이 되고 만다. 그는 행복해야 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할 책임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불행감에 사로잡힌다. 자기가 무능한 인간이라 인식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까 두려워 행복한 척 연기하기도 한다.  – 「행복이라는 이름의 형벌」 파스칼 브뤼크네르 

승하민 기자
hamin@kart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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