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로 만드는 것

ㅡ돈선필 개인전 《포트레이트 피스트(Portrait Fist)》(아트선재센터, 2020.07.23-2020.09.13)

코로나19의 여파로 많은 전시 공간이 문을 닫은 가운데, 종로구의 아트선재센터에서 재미있는 세 개의 개인전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 연재는 세 개의 글을 통해 세 개의 전시 각각을 살피면서 신체와 테크놀로지, 매체의 문제를 어렴풋하게나마 살피고자 한다. 마지막 전시는 돈선필 개인전 《포트레이트 피스트》다.

1층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스물네 개의 얼굴이 있다. 어쨌든 이들에게는 귀와 목으로 추정되는 부분,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머리통이 그런 것처럼 동그란 뒤통수가 있다. 그러나 원래 얼굴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무언가가 있기는 있다. 이목구비가 아니라 얼굴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생각할 수 없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전신 피규어 하나가 얼굴 전체를 차지하거나,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무기나 로봇을 든 캐릭터의 모습, 비교적 대중에게 친근한 세일러문의 머리카락을 포함한 얼굴이 통째로 들어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나마도 이쪽은 조금 나은 편이다. 아예 게임기나 총기 같은 어떤 기계만이 올라가 있거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게 얼굴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은 사물들도 붙어 있다. 이 머리들 사이로 전시장 중앙에 낮게 솟아 있는 단상이 있고, 편안한 소파와 TV가 놓여 있다. TV 뒤에는 돈선필이 그간의 다른 전시에서도 즐겨 사용해 온 유리 진열장이 있는데 그 안은 루팡3세부터 심슨, 소년기사 라무의 히로인 밀크 공주, 데스노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피규어들로 가득하다. TV는 일본 토크쇼 예능의 화면 포맷을 차용한 영상 작업 〈자기소개〉(2020)를 보여 준다. 피규어에 관해 말해 줄 사람은 많은 것 같아 이 영상 작업에 대해 말해 보려 한다.

이 영상의 화면이 구성된 방식은 방금도 짚은 것처럼 일본 토크쇼 예능의 포맷을 따르는데, 이 고유의 포맷이 통용되는 지리적 범위를 반드시 일본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유사한 화면 포맷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보통 화면 중앙에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 하고 있는 MC들과 패널들, 현장 관객들, 그리고 시청자들이 함께 보아야 하는 영상을 띄우고, 화면의 모서리에 조그맣게 띄워진 화면은 스튜디오 현장에서 촬영에 직접 참가하고 있는 MC나 패널들의 얼굴을 보여 준다. 시청자가 봐야 하는 것은 이 화면이 아니라 화면의 중앙, 즉 재연 장면이라든지, 아니면 방송을 위해 특별히 각색한 내용이라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돈선필이 사용하는 것처럼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만들어진 영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얼굴만 비추는 이 작은 화면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화면은 얼굴과 표정을 위한 화면이다. 우리는 이 화면을 통해 지금 화면 중앙에서 송출되는 영상으로부터 우리가 어떤 반응을, 어떤 표정을 짓는 게 좋을지 결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잠정적 선택지를 제공받는다. 표정을 만들 수 있는 눈과 코와 입에 집중된 화면은 아주 작고 미세한 변화도 금세 낚아 채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웃을 때 함께 웃고, 경악할 때 함께 경악하고, 분노할 때 함께 분노한다. 단조롭지만 편안한 톤의 내레이션, 화면의 배경을 차지하고 있는 자연물 배경, 클래식 음악,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시점 등의 요소는 이 영상이 최대한 평이하게 보이도록 애를 쓴다는 인상을 준다. (흥분해서 말하거나 자극을 주는 말하기가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거라는 판단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 평이함 속에서, 다른 말로 하자면 이 평이한 미디어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굴과 표정을 사용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얼굴과 표정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며, 소통을 가능하게 하거나 소통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한 사람이 한 무리에 속해 들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얼굴과 표정은 우리 신체에서도 다른 많은 부분들보다 한 발 쯤 더 사회적인 축에 속한다. 영상 속 내레이션은 얼굴을 가리거나 감춘 사람은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 모호하고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영상의 다른 축은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로서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을 다룬다. 여기에는 오래된 회화부터 일본의 여러 애니메이션, 최첨단 CG로 촬영된 영화, 하츠네 미쿠 피규어를 촬영한 사진, 네모난 픽셀로 구성된 고전 게임, 인터넷을 떠도는 밈까지 다양한 레퍼런스가 동원된다. 전시 서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각주1) 여기서 재현의 대상과 재현의 결과물 사이 관계를 구축하는 리얼리즘이나 재현의 대상이 거주하고 있는 리얼리티가 핵심 문제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이 지면에서는 그 문제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엮어 보려 한다. 

얼굴과 표정의 문제는 특히 신체를 가지게 된 AI나 딥페이크 같은 최신의 테크놀로지와 맞물리며 중요해진다. 이러한 테크놀로지가 얼굴과 표정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테크놀로지가 등장함으로써 우리가 얼굴과 표정을 더욱 조작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어 간다는 점에 있다. 특히 〈자기소개〉가 배우와 캐릭터, 그리고 연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지점을 명시적으로 다룬다. 재현의 결과물과 재현을 수행하는 주체 사이의 구분은 늘 문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살인마를 연기하는 한 배우를 생각해 보자. 이 배우는 영화 속에서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는 배우와 캐릭터 사이에 존재하는 명확한 경계를 기반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 배우가 자신이 재현하는 캐릭터와 자기 자신을 구분할 수 없고 배우의 개인적인 윤리가 그가 연기로 재현하는 캐릭터에게까지 적용된다면 그는 누군가를 살해할 수 없다. (이 선을 가능한 한 얇게 만드는 게 메소드 연기가 아닐까.) 배우의 얼굴은 관객의 완전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해당 배우가 완전히 그 캐릭터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배우가 수행하는 연기는 어디까지나 리얼리즘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하고, 결코 리얼리티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근래에도 막장 드라마의 (주로 여자인) 악역 배우를 우연히 마주치면 물을 뿌리며 욕을 하는 관객들이 존재한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출연했던 배우 박해준과 이태오 사이의 간격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분석은 물론 포스트-진실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시뮬라크르’, ‘하이퍼리얼리티’ 같은 개념어로 묶기에 용이하지만, 쉬운 길은 재미가 없다.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조작하고 스스로를 연출하는 것이 가능해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배우가 살인마 연기를 위해 미간에 주름 몇 개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연출한다. 예컨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훌륭하게 연기하기 위한 훈련 과정이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교직 과목을 이수해야 하고, 임용 고시를 치고, 교생 실습을 나가야 한다. 이러한 (연기) 훈련 과정을 통해 선생님을 희망하는 자는 서서히 선생님에 가까워진다. 특정 직업군을 떠올릴 때 특정 이미지가 떠오르는 현상, 스포츠 선수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 트레이닝, 생생하게 꿈꾸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뜻의 ‘R=VD’ 같은 공식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자신이 상정한 스스로의 이미지, 즉 재현될 이미지를 향해 자기 자신을 조정하고 연출한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들 또한 나를 연출하는 하나의 무대 공간으로 기능한다. 결국 우리 시대에 나를 나로 완성하는 것은 나 자신과 나 자신의 연출, 그리고 그 연출을 보는 관객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재현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영상 작업에 삽입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는 회사의 광고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영상으로 우리의 주장에 유머를 더한다. 우선 이 광고는 회사를 소개하는 영상이면서 동시에 브랜드 아이덴티티, 회사 로고, 슬로건 등과 같이 회사의 얼굴 혹은 표정으로 작동한다. 특유의 간결함으로 고민의 여지를 줄이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홈페이지(각주2)에 방문하면 회사 소개란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각종 규칙들이 적혀 있다. 이 규칙들은 도무지 현실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을 일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런 게 어떻게 회사의 규칙이 될 수 있고, 회사를 소개하는 데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규칙과 광고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홍보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정의한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규칙으로 한정되고, 회사의 이미지 또한 광고를 통해 한정된다. 이러한 재현을 경유할 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비로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된다.

김얼터

각주1 돈선필 개인전 《포트레이트 피스트》 서문. http://www.artsonje.org/portrait-fist/ (11월 29일 검색)

각주2 민구홍 매뉴팩처링 홈페이지. https://minguhongmfg.com (11월 29일 검색)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를 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