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음악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

오르페오 음악박물관 관람기

경기도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한 박물관. 그 지하로 내려가면 선조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여러 악기, 악보, 문헌 등을 볼 수 있다. 대학생 시절 작곡을 전공한 디렉터 신 모 씨는 악기수집에 관심을 가지게 된 후부터 음악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을 하나씩 모으다 이렇게 박물관을 차리게 되었다. 물론 아직 정식 음악박물관으로 승인되지 않았지만, 그는 오늘도 국내 최대 규모의 악기 박물관 건립을 꿈꾸고 있다.

필자는 방문 전 전화 예약을 통해 맞춤형 큐레이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큐레이팅 내내 악기는 문화의 산물임을 강조했다. 당시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지녔는지, 시대적 상황이 어떠했는지가 악기에 반영된 양상을 설명했다. 그 예로 미국이 합중국이 되기 전의 기타에는 별 12개짜리 성조기가 그려져 있었다. 또한 동양은 음양 사상으로 0과 1이 중요했기에 이러한 동양 사상을 기반으로 만든 현악기는 홀이 하나밖에 없음을 직접 보여주었다. 반면 서양은 로마숫자에 0 자체가 없기에 1과 2가 중요한 개념이라 현악기에 홀이 2개 파인 형태로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이 외에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전문 서적에서만 볼 수 있었던 12세기 양피지로 만든 네우마 악보였다. 그 외에도 전 세계에 세 대밖에 없는, 베토벤이 소유했던 피아노 모델(Broadwood사, 1819년 제작)과 같은 모델이 이곳에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평소 좋아하던 음악가들이 살던 시대에 함께 숨을 쉬며 그 역사의 발자취를 함께했을 악기들을 직접 접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12세기 네우마 악보
▲ 베토벤이 소유했던 피아노와 같은 모델의 피아노
(Broadwood사, 1819년 제작)

향후 정식 박물관으로의 건립을 위한 아이디어를 자주 구상한다는 신 씨는 본인의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박물관에 대한 생각은 늘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음악박물관을 건립한다 한들 전문 ‘음악’ 큐레이터가 없어 한편으로 걱정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적으로 시행되는 큐레이터 자격증 제도가 없을뿐더러 ‘미술’ 분야에 한정되었기에 그 실정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악기를 수집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가 수집한 악기들을 끊임없이 연구하였으며, 그 목적은 소리 내는 방법에 대한 탐구, 악기 부속품과 소리의 연관성 등 다양했다. 실제로 그는 바로크 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첼로 엔드핀을 모두 갖고 있으며 엔드핀의 재질과 강도, 높이에 따른 첼로 소리 변화에 대한 상당한 연구를 마친 상태라고 한다. 

 이어 그의 박물관 이름을 딴 일명 ‘오르페오 앙상블’을 설립하여 꾸준한 연주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고음악(이를테면 르네상스~바로크 시기)을 원전 연주로 연주하기 위해 사용되는 박물관에 있는 고악기들을 렌트해주기도 한다. 이곳만큼 현악기, 건반악기를 가리지 않고 여러 고악기를 한 곳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서 유일무이하다. 또한 그는 악기 제작 사업을 한 적도 있다. 기존 4현 체계의 우쿨렐레에서 간단한 코드만 익히면 쉽게 연주를 할 수 있게끔 3현 체계의 우쿨렐레를 손수 제작해 보급했다고 한다. 어린이를 위한 색깔별 운지법을 도입해 더욱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보급형 오카리나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기존 서양의 박물관이 수행하던 역할을 이어나갈 수 있게끔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국내 악기 연구에 대한 세 가지 논점을 제시하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우선 우리나라에서의 학위 논문들은 기존 해외 논문들의 짜집기에 불과한 것이 한계점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유럽의 고악기 연구와 같은,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심층적 연구가 불가능한 경우를 언급했다. 실물악기 관련한 1차 문헌들이 모두 해외에 있기에 직접 경험하며 연구할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음악학도들이 이곳의 악기와 문헌 등으로 국내에서도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나라에서 악기 분류학이라는 학문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음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남북이 통일되었을 때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음악이 가장 다가가기 쉬운 예라고 역설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기억을 담은 글자(Andenken an den Weltkrieg)가 새겨진 기타를 보여주며 우리 선조들의 분단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끔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남북의 악기가 이곳에 모여 역사를 써나갈 상황을 고대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kimj2000@kart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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