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k Debt’, 우리가 마더(오브 네이처)에게 지고 있는 빚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 있는 ’18th Streets Arts Center’에서 패티 창의 솔로 전시인 ‘Milk Debt’이 지난 10월 19일부터 내년 1월 22일까지 진행된다. ‘Milk Debt’는 미국 여성 예술가 패티 창(Patty Chang)과 전 세계 각지에 있는 많은 여성들이 함께한 프로젝트다. 원래는 올해 5월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5개월이 지난 후에야 관객 앞에 모습을 보인다. 

 ‘Milk Debt’라는 제목은 중국 불교의 개념에서 착안했다. 어머니가 모유로 자식을 먹이고 키운 은혜를 자식이 다 갚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Milk Debt’는 수유를 하는 9명의 여성 퍼포머들이 서로 다른 지역 공동체에서 쓰인 ‘Lists of Fears’를 낭독하면서 모유를 짜는 5개의 멀티채널 영상들로 구성되어있다. 패티 창은 지역 사회의 여러 여성들에게서 ‘Fear List’를 수집했다. 그리고 그것을 대본으로 만들어 모유를 짜는 퍼포머가 읽었다. 공포 리스트는 퍼포머에 의해 읽히지만,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더 큰 공동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한 영상은 퍼포머와의 줌 미팅을 녹화한 것이다. ‘Fear List’를 9분간 롤링 크레딧으로 보여주고, 젖을 짜는 퍼포머의 낭독이 10여 분간 이루어진다. 해당 영상은 ’18th Street Arts Center’의 비메오 채널에 게시되어 있다. 이 영상에서, 낭독되는 두려움은 일상 속 사소한 걱정으로 시작해 점점 고조되어 실존적 우려까지 도달한다. 패티 창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감의 행위가 어떤 의미이며 지금의 어두운 시기에 우리가 공유하는 숨겨진 두려움을 어떻게 보이게 할지를 탐구한다. 이 두려움의 형태와 단계는 관계적 불안과 사적인 공포에서 시스템적 억압과 집단적 외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프로젝트는 패티 창의 환경에 대한 불안에서 생겨났다. 그는 몸과 땅의 관계를 재고하기 위한 페미니스트적 전략을 모색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압도적인 두려움은 국제적 불안, 변화하는 지형도, 무너지는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남긴 미래에 대한 무수한 걱정을 일으켰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내부적·비가시적인 것을 보이게 하고 사랑과 공감의 행위가 어떻게 우리를 넘어서 더 넓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패티 창은 말한다. “모유와 젖을 생산하는 행위는 공감하는 행위라고 믿는다. 생물학적으로 모유는 신체가 프로락틴과 옥시토신의 호르몬을 생산하기 시작할 때 만들어진다. 옥시토신은 누군가가 사랑에 빠졌을 때 생성되는 호르몬이다. 모유를 생산하는 행위는 여성이 이러한 상태에 참여하게끔 한다. 이 행위는 더 연결되고, 더 개방적이고, 자신만 먼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할 것이다.”

 ‘Fear list’에는 각 공동체 내에서 여성 또는 이민자로서의 공포가 적혀있다. 리스트는 영어로 작성되었는데, 그 중에는 한글 텍스트도 있다. “섹스를 하는 것. 임신하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것.” “한국인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미국인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L.A.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Not being accepted as Korean. Not being accepted as American. Not being accepted as in L.A.)” 범죄의 희생양이 될까 하는 우려나 사생활 안에서 여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 수행에 관한 공포다. 문정희의 시 ‘유방’이 떠오른다. 

“ (…)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 꼭꼭 싸매놓은 유방 /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 깊이 숨겨놨던 유방 / 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 / 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주셨듯이 /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 /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 오랜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 ” 

 목록화된 공포는 개인의 얼굴을 지우고 그저 텍스트로만 남는 듯해 보이지만 그것을 낭독하는 화자가 수유하는 여성이라면 맥락이 달라진다. 목록화는 명명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두려움을 가시화하기 위함이고, 착유 퍼포먼스는 생명을 만들고 양육하는 힘이 제 몸에서 나오는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보여주며 공포를 넘어서서 새로운 희망의 탄생을 몸소 느끼게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유방은 가부장제의 맥락에서 진정 본인 것이 아니게 된다. ‘Milk Debt’의 착유 퍼포먼스는 여성의 유방이 성적인 상징물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 부위이며 특정한 시기에는 특별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라는 인상을 준다. 굉장히 생산적이고 생명력이 가득하다는. 

 공포 리스트 중 ‘섹스를 하는 것. 임신하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는 대목은 여성의 고유한 능력이 여성을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둔다는 것을 방증한다. 패티 창은 이러한 모순을 공포의 목록과 젖을 짜는 행위를 병렬함으로써 표현했다. 냉담하고 황량한 낭독을 들으며 착유되는 모유를 보고 있으면 여성이 사회 속에서 겪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패티 창은 비관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어머니, 나아가 자연에게까지 진 빚을 상기시키며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계속해서 희망과 사랑을 품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김가은 기자

gaeun0826@karts.ac.kr 

참고기사

“Patty Chang’s Affecting Videos and Photographs Find Emotion in Breast Milk, Death, and More”, 『ARTnews』, 2020.10.23.

18th street arts center 전시 소개글 https://18thstreet.org/event/patty-chang-milk-de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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