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절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화예술계 권력형 성폭력

활동 재개한 가해자, 방송영상과 H 교수

 교내 성폭력으로 물의를 빚은 H 교수가 재차 구설에 올랐다. 지난 달 23일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권력형 성폭력 근절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서 게재한 대자보에 따르면 H 교수는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2020 서울문화재단 온라인미디어 예술활동지원 <ART MUST GO ON_창작준비형>’ 사업 공모전의 심의위원으로 참여했다. 본 사업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에게 제작비와 창작 사례비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진행되었고, 총 30억 원가량을 지원할 계획이었다.

 방송영상과 H 교수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은 2019년 봄 학기에 가시화되었다. 한 학기 누적 피해자 22명과 피해 사례 신고 44건에 달한 이 사건은 교내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인권침해 증언에도 H 교수는 공식 입장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이에 맞서 비대위는 H 교수의 해임과 파면을 요구했지만, H 교수는 3개월 정직과 2년 수업 배제 처분만을 받았다. 실효성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을 피해 갈 수 없는 조치였지만, H 교수의 징계는 ‘중징계’라며 학교 본부는 상황을 일단락했다. 비대위는 학교 본부가 학생 보호 의무와 책임을 방임한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약 일 년이 지난 2020년 9월 28일, 서울문화재단은 공모전 참가자로부터 심의위원 H 교수의 결격사유를 제보받았다. 재단은 내부 조사 끝에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재심의를 진행했다. 원 결과의 공지는 급히 중단되었다. 하지만 이미 결과를 조회했던 많은 예술인과 예술 단체의 입장에서는 활동 지원이 하루아침에 번복된 셈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은 심의위원의 결격사유가 발견되어 재심의를 진행한다고 급히 참가자에게 통보했지만,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자세한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재심의 결과 당초 없던 29건이 선정, 79건 동일, 31건이 탈락했고, 재심의 결과로 순위가 변동된 예술가에게도 같은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성폭력 재발 방지에 관한 언급은 전무했다.

 서울문화재단 측은 인사 과정에서 신문 기사와 같은 공식 자료로 결격사유를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방송영상과 H 교수의 성폭력 논란은 많은 기사를 포함해 2019년 10월 2일 열린 김봉렬 총장의 국정감사에 언급되었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건이었음에도 이 과정에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절차의 실효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직무유기 사례였다.

 어느새 권력형 성폭력은 반복되는 문화예술계의 재앙이 되었다. 서울문화재단은 이미 올해 2월, 재단 산하 프로젝트 <콜렉티브 충정로>에서 ‘미술계 Y 성희롱 사건’을 경험한 바 있다. ‘미술계 Y 성희롱 사건‘은 사업의 기획 및 운영 감독으로 활동하던 Y가 젊은 여성 예술인을 성희롱하고 부적절한 사적 만남을 제안한 사건이다. 본 사건은 H 교수 사건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성폭력 사례였다. 서울문화재단은 조처가 미흡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고, 피해자 권리 보호와 구조화된 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 및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발생한 H 교수 사건으로 재단은 문화예술계 권력형 성폭력의 심각성을 재차 묵인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문화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어디에서도 실질적인 제도의 개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비대위에 따르면 서울문화재단은 성폭력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심의위원이 조사에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약만 작성했을 뿐, 후보의 성폭력 전력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소속 학교에서 중징계를 받은 H 교수는 아무 저항 없이 외부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비대위는 학교 본부에 서울문화재단 사업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공식 입장을 요구했으나, 아직 학교 측은 묵묵부답이다.

 H 교수는 2021년 가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단에 복귀할 자격이 주어진다. 인권 보호에 앞장서지 않는 낡은 제도는 문화예술계 적폐의 존속을 방관하기 마련이다. 예술계에 가해자가 설 자리는 없다. 하지만 예술인을 육성하는 학교부터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문화예술계 권력형 성폭력은 앞으로도 사회에 머무를 전망이다. 학생의 안위에 책임을 다해야 할 이곳에서 더 많은 인권이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만 한다. 

정인우 기자

inwoo@kart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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