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학파와 오늘

2020년 예술교양학부 추계 특강 시리즈 2

지난 8일 우리학교 예술교양학부 주최 ‘문화 예술철학의 산실, 프랑크푸르트학파를 톺다’라는 공통된 주제 아래 문성훈 서울여자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가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오늘’이란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사회는 이인수 예술교양학부 객원교수가 맡았으며, 전부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강의는 △강의자 소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역사 △사회비판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른 각 이론 소개 △질의응답 등의 순이었다. 본 특강은 총 3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의 산실이다. 1930년 호르크하이머로부터 태동한 이래 90년간 3번의 패러다임 전환을 겪는데, 이는 세대교체 시기와도 맞물린다. 이들은 현존사회를 비판하고 대안적 사회를 제시한다는 학문적 전통을 이어나갔다. 

호르크하이머의 전통이론과 비판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태초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으며, 사회비판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앞서 언급한 철학 중심의 학제 간 연구를 통한 현존 사회를 비판하며, 대안 사회를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 제창한 사람이다. 또한 철학의 역할과 학제의 역할이 다름을 역설한다.  철학은 사회비판의 규범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며, 학제는 여타의 학문(사회심리학, 정치경제학, 문화이론)을 비판하는 것이 그 역할이라 논한다. 위 언급된 학문은 인간성은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가, 히틀러를 예로 인간의 개인에 대한 복종성, 엘리트 예술에서 문화산업으로의 대중문화 등을 주된 관심사로 삼는다. 다시 말해 이성과 자유의 관점에서 현존사회를 비판하고 대안 사회를 제시하는 관점이다. 

아도르노와 계몽의 변증법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전체의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된 인간을 역설한다. 동시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며 이제부터 다른 길을 걸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는 사회를 새롭게 설명하고자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나타난 계몽의 변증(역설)법의 부정적 효과 역시 필연적이었다. 

 그가 말한 계몽이란 무엇인가? 이는 인류의 문명화 과정을 의미한다. 그는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호르크하이머 시대와는 달리, 전체주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 해명하고자 했다. 또한, 인류의 문명화가 계몽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동시에 그는 신문명을 받아들이고 과학적 사고와 함께  탈주술화(Entzauberung)를 외쳤다. 

 이 시기에는 생산력을 향상하기 위해 인간을,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문명과 현대사회가 고도로 발전할수록 자연이 지배하던 것을 인간이 지배하고 결국 개개인이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한다. 이를 새로운 야만적 시대라고 부른다.  일은 사회적으로 분업할 때 효율적이다. 사회가 노동 분업체계로 갈수록 개개인을 통제해야 더욱더 효율적이다. 개인의 통제 이후에는 자기 통제만이 남는다. 자기 없는 자기보존, 자기 없는 자기실현이다. 수단이 목적으로 변했기에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사회를 모든 것이 통제되는 총체적 관리사회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 사회를 비판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대안 사회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또한 무엇을 기준으로 현대 사회를 비판했는지 자각하지 못하였으며, 계몽 이전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보는 비관주의로 빠지게 되었다.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은 새로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등장을 막게 된 문제점이며 아직 이를 해결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하버마스와 의사소통 행위이론

하버마스는 문제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안을 제시하려 했으며, 합리성 이론에 주목했다. 계몽의 과정은 동시에 도구적 합리성이 확대되는 과정이라고 보았으며, 자연과 개인을 모두 도구로 보았다.

그는 계몽의 변증법을 개편하고자 도구적 합리성이 몰아낸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되찾는 대안 세계를 제시한다. 계몽의 변증법은 도구적 합리성이 확대되고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줄어드는 과정이었다. 반면 그는 생활 세계의 식민화 공론이 오가면 의사소통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호네트와 인정 투쟁

호네트는 생활 세계와 식민화 같은 학술적 용어를 쓰면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조차 얘기할 수도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문제점이라 논한다. 그는 이 이론을 사회적 저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질적 울분에서 착안하게 되었으며 이를 도덕적 울분이라 칭한다. 사회적 무시가 도덕적 울분을 하게 하고 사회적 저항을 낳게 함을 역설한다. 도덕적 울분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 사회적 울분으로, 상대가 나를 참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욕구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 반면, 남을 파괴하기 위한 저항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지속해서 인정 경험이 축적되어야만 자신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장 과정 동안 지속해서 무시당할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이 쌓이기 마련이다. 적극적인 자아실현을 통한 행복한 삶과 그 인정이야말로 도덕적 행위로의 성립이 가능하다. 결국 호네트는 우리 사회가 사회적 인정을 통해 도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민정 기자

kimj2000@kart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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