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예술, 다시 시작하는 논의 (2)

이상(異常·理想·以上)에 관한 3가지 사유, 백남준아트센터 <현실 이상>전

“장르의 경계와 기존의 방식을 넘어, 우리를 고정된 시선에서 끌어내는 작품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운영을 일시 중단했던 백남준아트센터는 9월 29일 다시 문을 열었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는 국내 유일의 미디어 아트 전문 공공미술관으로서 “공동의 삶, 공유의 기술, 매개의 예술”이라는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2020년 9월 24일부터 2021년 1월 31일까지 전시 <현실 이상>이 개최된다. <현실 이상>은 백남준아트센터 내부 2층의 연구도서관, 비디오아카이브, 플럭스룸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제2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기술진보의 과정에서 생략되고 상실된 윤리적 사회적 현안들을 재조명하고, 다양한 질문들을 통해 미래사회에 우리가 함께 존재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하는 시작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전시에는 10명의 참여 작가(팀) △김세진 △김윤철 △매튜 케루비니 △박혜수 △아메리칸 아티스트 △양숙현 △업체(eobchae) △웨슬리 고틀리 △정 승 △차오 페이가 총 14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 중 기술과 정치,사회적 구조와 우리 삶의 연관성을 재인식하는 예술실천에 주목하여 박혜수 작가의<퍼펙트 7>과 양숙현 작가의<OOX에서 온>, 아메리칸 아티스트의<2015>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박혜수, <퍼펙트 7>, 2020, 가상의 생활동반자법 대행회사 ‘퍼펙트7’ 사업 부스, 가상의 생활동반자법 신청서 및 보험약관, 가족협동조합 광고(단채널 영상), 홈페이지, 레고 부품, 가변크기, 사진 현은우

현재여야 했을 미래, 우리의 삶에 부쳐 <퍼펙트 7> 

<현실 이상>이 진행되고 있는 제2전시실에 들어서면 바로 눈이 닿는 곳에 박혜수 작가의 <퍼펙트 7>,2020이 부스의 형태로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2019년에 선보인 가족대여사업 <퍼펙트 패밀리>의 자회사이며, ‘가상의 생활 동반자법 대행회사’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박람회장에서 활용되는 외관과 형식을 차용한 <퍼펙트 7> 사업 부스는 벽면에 △가족협동조합(Family Co-Op)과 △동반자보험에 대한 안내가 빼곡히 적혀 있다. 

가족협동조합은 “강제적인 부계(父系)중심의 가족관계를 폐지하고, 평등하되 친밀관계를 기반으로, 친족 관계가 필수적이지 않은, 자주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가족관계를 대체”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또한 <퍼펙트 7>이 제시하는 △생활동반자 등록 및 보증서비스를 통해서는 이성커플 및 동성커플, 친구가족, 돌봄가족, 1인가족, 가족협동조합도 가족으로 등록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퍼펙트 7>이 2030년의 미래 사회를 가정한 가상의 서비스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현재 당면한 질문과 가족의 형태를 가시화한다는 점이다. 법과 제도의 굴레가 우리의 현재를 미래로 유보하지만, <퍼펙트 7>에서는 2030년이라는 가정과 ‘가상’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명백한 현재를 관객들에게 드러내 보인다. 

▲©양숙현, <OOX에서 온>, 2020, 3D 컴퓨터 그래픽스, 2채널 비디오 인터랙션, 사진 현은우

신체와 데이터 사이에서 지각하는 방식 <OOX에서 온> 

박혜수 작가의 <퍼펙트 7>을 지나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면 양숙현 작가의 <OOX에서 온>, 2020이 있다. 2채널 비디오 인터랙션 작품인 <OOX에서 온>은 둥글게 배치된 좌석 중앙에 놓인 모션인식 센서에 관객이 손을 올려 손바닥을 보이거나 주먹을 쥐면 시작된다. 평상시에는 ‘From the OOX’라는 제목과 암석의 움직임이 화면을 채우지만 모션인식을 통해 화면이 전환될 때에는 관객의 손짓이 ‘OOX’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수신호처럼 기능한다. 

이렇게 시작된 영상은 알고리즘으로 구축한 ‘비인간’이 알 수 없는 몸짓을 반복하는 장면과 인공위성이 촬영한 지구의 지형 이미지, 3D 그래픽 전문 쇼핑몰에서 얻은 데이터를 혼합한 세계를 그려낸다. 2채널로 구성된 이 영상의 한 편에서는 비인간이라 칭해진 인간의 외피를 쓴 형상들이 파종, 전투, 절하기, 춤추기 등의 행위를 모방하며, 위와 같이 인간이 지속해온 오래된 행위들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활용하는 오토-리깅(auto-rigging)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성되고 또다시 재해석 된다. 동시에 영상의 다른 한 편에서는 인공위성을 통해 촬영된 지구의 표면을 포토그래메트리(Photogrammetry)기술로 변환한 지형 이미지가 드러난다. 

관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면이 인간의 시야를 벗어나 기계의 시점에서 포착되고 평면 이미지에서 다시 입체 모델로 변환되는 현장을 목격한다. 우리를 닮은 형상과 행위가 개연성 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OOX’의 현장 앞에서, 스스로 자각하는 세계와 <OOX에서 온> 데이터 사이의 변조를 인식한다. 양숙현 작가가 주목한 ‘글리치(glitch)’ 즉, 인간이 지각하는 물리적인 감각의 세계가 컴퓨터가 지각하는 데이터 세계로 들어올 때 나타나는 변칙적 요소들은 작품과 관객 사이의 수신호처럼, 인간과 기술을 연결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생성하는 구조 사이의 여과를 시사할 것이다.

▲©아메리칸 아티스트 <2015>, 2019, 단채널 비디오 21분 56초, 사진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데이터-인공지능-시스템, 그 불완전성의 발로 <2015> 

아메리칸 아티스트의 <2015>, 2019는 전시장의 끝에서 오른편의 긴 통로로 걸어 들어가면 볼 수 있다. 통로의 막다른 곳에 가까워질수록 영상에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가 크게 다가온다. 비로소 영상과 마주하면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자동차 앞유리 너머로 주거지역의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이 화면의 중심에는 과녁처럼 표시된 지도가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 길가에 보이는 주민들은 나타나는 동시에 네모난 표식 안에 포획된다.

일상적인 풍경 위로 겹쳐지는 낯선 레이어는 미국에서 2015년부터 경찰의 순찰 차량에 도입하여 운영 중인 ‘예측순찰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시스템은 과거의 범죄 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토대로 만들어졌지만, <2015>에서는 시스템에 대해 우리가 간과한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 바로 시스템은 학습된 데이터의 산물이고, 인간의 편견까지도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경찰이 이 예측순찰시스템을 이용하여 백인 밀집 주거지역보다 흑인과 소수인종이 사는 주거지역을 더 자주 순찰하며 불법 검문을 벌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관객의 귓가에 지속해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는 “CRIME DETERRED”라는 글자와 함께 잦아든다. 그러나 경찰차의 유리창 너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특정한 인종과 사회계층에 편향된 시스템만이 관객의 앞에 목격될 뿐이다. 이제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이 어떤 구조로, 어떤 주체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현실 이상>과 관련하여, 조권진(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기획자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전시를 기획할 때에 “참여, 소통, 공공의 문제 등 개인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주제들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답했다. “작품 선정에 있어서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를 중점적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다양한 분야의 경계와 기존의 방식을 넘어 우리를 고정된 시선에서 끌어내는 작품들에 주목한다.”고 말하며,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질문하고 각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전시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도현

본 기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공연전시센터 ‘케이아츠온로드(KartsOnRoad)’사업의 지원을 받아 리서치 부문 당선 프로젝트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대표자 이도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사진 현은우, 백남준 아트센터 제공

참고 자료

http://perfectfamily.co.kr/page_iiLv92

<북해에서의 항해> 로잘린드 크라우스 

<뉴미디어 아트, 매체를 넘어서> 도메니코 콰란타 

<라운드 테이블, 1989년 이후 동시대 미술 현장을 이야기하다> 알렉산더 덤베이즈, 수잰 허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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