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듯 예술하기: 『빅매직』

▲『빅매직』 Ⓒ민음사

예술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사람들을 이토록 괴롭게 할까. 예술가들이 예술에 접근하는 태도는 다양하다. 어떤 예술가는 고흐처럼 예술하기를 꿈꾼다.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정신과 몸을 불살라 예술에 전념한다. 다른 예술가는 직업처럼 예술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도박 빚 갚느라 소설을 썼다. 『빅매직』의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예술하기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길버트는 말한다. “그저 내가 그걸 좋아해서 하는 거라고.” 

『빅매직』의 예술은 연애와 비슷하다. 예술과 같은 창조적 행위에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농경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1만 년밖에 되지 않았다. 한편, 예술 행위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4만 년이나 되었다. ‘창조적 사람’이라는 말은 불필요한 중복이다. 인류 자체가 호기심과 창조성을 갖도록 태어났다. 예술하는 건 당연하다. 외부의 허락은 필요 없다. 타인과 사랑할 때 누구의 허락도 필요치 않은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남의 연애에 있어선 냉철한 지식인들이다. 친구가 연애에 허우적거리며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잃고, 그에게 많은 것을 위탁하고 식음을 전폐할 때면 우리는 짜증을 숨기며 걱정스럽게 말한다. “네가 행복한 연애를 해야지! 아니면 헤어져!” 길버트는 바로 그런 예술을 권한다. 연애를 행복하게 해야하는 것처럼 예술도 즐겁게 해야한다. 하지만 예술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옛날 애인과 다르게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반려이다. 길버트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집필한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그는 소설 쓰기 대신 다른 일을 시작했다. 정원 가꾸기였다. 길버트는 어릴 적 어깨너머로 배운 정원 가꾸기를 한 해 두 해 이어가며 즐겼다. 문득 정원에 핀 꽃과 나무가 어디서 왔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개나리는 일본에서, 붓꽃은 시리아에서 왔단다. 길버트는 여러 식물의 계보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차기작이 탄생했다. 식물 탐험가 가족이 등장하는 『모든 것의 이름으로』였다. 길버트는 멀어진 애인(글쓰기)과 잠시 헤어지고 재회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더는 착상을 붙잡는 게 괴롭지 않았기에, 호기심이 생겼기에.

완벽한 연애가 없는 것처럼 완벽한 예술도 없다. 길버트는 로마의 마지막 오현제이자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일기를 인용한다. “어서 서둘러서 진행이라도 하자. 플라톤의 『국가』 수준의 작품이 나올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말자. 가장 작은 발전으로도 만족하고(…)”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써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열망했던 황제마저 플라톤과 자신을 비교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완벽함을 추구하려 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하는 예술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되 예술과도 완벽한 연애를 하려고 애쓰지 말 것. 사랑하면 만나보면 된다. 그와 헤어질 것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예술이 우리를 사랑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연애할 때 갖는 믿음과 유사하다. 내가 그를 사랑하듯 그도 나를 사랑할 거라 믿는다. 그 기대가 없으면 어떤 연애도 시작할 수 없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와 사귀는 그가 나에게 물질적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을 수 있다. 사랑은 사랑일뿐이다. 예술은 나를 책임질 필요 없다. 그는 반려이지,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은 행복과 만족, 또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무엇이다. 연애할 때 우리가 느끼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하물며,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길버트는 순교자가 되는 대신 재간꾼이 되라고 한다. 중독적이고 자기 파괴적으로 예술하는 순교자가 아닌, 재밌고 매력적이고 전복적인 재간꾼. 순교적 연애의 대표적인 표상은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파괴적인 그들의 열렬하고 어린 사랑은 5일 만에 끝난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재간꾼이었다면 어땠을까? 캐풀렛가의 가족들은 줄리엣이 로미오와 연애 중인 걸 알게 된다. 헤어지라는 말에, 줄리엣은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뒤로 만난다. 또 걸린다. 헤어졌다고 한다. 더 은밀히 만난다. 또다시 걸리고 말자 머리가 깎인 채 감금되거나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것을 종용받는다. 정말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 후, 부모님의 신임을 얻고, 또 만난다. 이 사랑은 얼마나 오래갈까? 아마 5일보다는 길 것이다. 재간꾼의 사랑은 오래간다. 하지만 결국 개개인의 선택이다. 예술에 대한 열렬함을 5일 만에 불태워버릴지, 예술과 함께 몇십 년간 동고동락할지는. 물론 현대인들은 100년을 산다. 

강진솔 기자

Kandersol@kart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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