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팬 사이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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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캡터 사쿠라 팬클럽 활동기

 

윈도우98의 익숙한 부팅 음을 들은 뒤에, ADSL 접속기를 실행시킨다. CPU를 썬더버드 900으로 업그레이드했는데도, 여전히 부팅이 느리다. 테크노마트에 가서 256mb짜리 램을 하나 더 사던지 해야겠다. 투덜거리며 윈앰프로 MAYA님의 음악방송을 틀어 놓는다. 하마사키 아유미의 ‘Free&Easy’를 들으면서 <카드캡터 체리>의 팬 사이트 ‘사쿠라의 미니 홈’의 게시판에 접속한다. 학교 가기 전에 올린 게시물에 긴 댓글이 달려서 기분이 좋아졌다.

 

SBS에서 방영하는 <카드캡터 체리>의 후반부가 궁금해서, 카방클님이 번역한 대본을 찾았다. 그 와중에 야후 코리아에 많은 카드캡터 체리의 팬 사이트가 등록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사쿠라의 미니 홈’은 특히 수준이 꽤 높은 홈페이지였다. 무의미한 카운터나 눈이 날리는 조잡한 자바 스크립트는 당연히 없었으며, 유행했던 프레임도 사용하지 않았다. 방명록의 작은 버튼에 이르기까지 모든 디자인은 통일성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카드캡터 체리의 고화질의 바탕화면과 모든 O.S.T가 올려져 있었다. 그 홈페이지를 만든 리☆군이 나와 같은 또래의 중학생이라는 것에 놀랐다. 리☆군이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친해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그 게시판에서 자바 스크립트를 악용한 팝업 창을 100번 눌러야 하는 태그(소위 폭탄태그)를 통해 반달리즘을 저질렀다. 그 사건으로 아웅다웅 다투게 되면서 리☆군과 친해졌다. 그녀의 게시판을 통해 다른 팬 사이트 운영자들과도 자연스레 친해졌다. 그들은 , <투 하트>와 같은 미소녀 게임이나 <카드캡터 체리>이외에도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디지 캐럿>과 같은 애니메이션의 팬 사이트를 운영했었다. 나중에는 하루에 10개 정도가 되는 홈페이지 게시판을 순례하면서 무수한 뻘글을 올렸었다. 나중에는 그들과 ICQ메신저 개인번호를 교환하고, 각자의 방명록에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댓글을 확인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1년이 지나니깐 그 홈페이지들은 리뉴얼을 핑계로 결국 방명록만 남게 되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소위 ‘친목질’이었다.

 

BoA의 <ID: Peace B>가 나오고 n세대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시대였지만, 우리는 그것이 가짜 관계라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항상 메신저로 대화할 수 있었지만, 펜으로 직접 쓰는 펜팔을 시작했다. 휴대폰이 없어서 집 전화로 새벽에 몇 시간씩 통화하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은 조심스레 번개 모임을 이야기했었다. 오프라인에서 누군가를 처음 만났던 건 리☆군이었다. 반년 넘게 리☆군과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엄청난 설렘이었다. 그것은 만나지 못한 어떤 내밀한 대상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었다. 우리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어떤 톨스토이의 소설로 서로를 알아보기로 한 것도 아니고(민망하니까), 휴대전화도 없었다. 20분 동안 수원역근처 시네마 타운 앞에서 서로를 ‘맞을까?’ 의심하며 서 있다가, 어색하게 그녀가 처음 말을 걸었던 순간 나는 얼마나 부끄럽던지. 전화 너머 리☆군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를 상상했는데, 은테 안경을 낀 살짝 통통한 보통의 중학생이었다. 뭐, 상관없었지만. 우리는 극장에서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쵸콜릿>을 봤다. <어둠속의 댄서>의 비요크를 좋아했지만 왠지 우울한 영화를 같이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눈 덮인 수원 장안문 주변을 걷고, 음반매장과 서점을 돌아다녔다. 오락실에서 <비트 매니아>와 <타임 크라이시스>를 몇 판 플레이했다. 존댓말을 쓰는 것 이외에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도 다를 게 없었다.

 

이후에 리☆군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고, A.C.A나 코믹월드와 같은 만화행사도 몇 번 가게 되었다. 당시의 코믹은 주로 여의도 중소기업박람회장(일명 리버관)에서 열렸다. 여의도역에 내리자마자 외관이 코믹월드에 온 것이 분명한 학생들이나 코스플레이어들로 북적거렸다. 여의도역 화장실에는 코스튬으로 갈아입으려는 학생들로 가득 찼고, 이 더운 분위기는 리버관의 내부까지 이어졌다. 행사장 내부의 팬시와 동인지를 판매하려는 학생들의 열기는 리버관의 덥고 탁한 공기와 어울려져 나를 지치게 하였다. 그날부터 애니메이션에 관심은 많이 줄었던 거 같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는 건 즐거웠다. 특히 온라인에서 친하게 지내는 누군가와 실제로 만났을 때, 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갭을 좋아했다.

 

<카드캡터 체리>의 SBS 방영이 끝났다. 팬 사이트를 운영하던 그들은 수험생이 되거나, 군인이 되었다. 애니메이션 개인 팬 사이트들은 저작권 문제로 문을 닫거나, ‘하마사키 아유미’나 ‘모닝구 무스메’와 같은 일본 아이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했던 ‘하이홈’, ‘네띠앙’, ‘인터피아98’과 같은 웹 호스팅 업체는 점점 줄어가고 있었다. 입시나 군 생활을 핑계로 방명록만 남았던 홈페이지들은 조금씩 방치되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일부는 네이버나 이글루스에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했다. 개인 홈페이지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고, 나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떨어지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한동안 접었다. 내가 수험생이 되었을 때, 그 사람들과 연락은 거의 끊겼었고, 그럼에도 나는 한동안 방치된 사이트에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만화 <현시연>에서 애니메이션 동아리 ‘현대 시각 연구회’의 회장인 마다라메가 졸업 후에도 동아리방에 들락거리는 장면이 있다. 마다라메가 짝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전형적인 라이트 오타쿠인 그에게 동아리는 평범한 자신을 다른 존재로 있게 했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마다라메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결국 서버에서 전부 사라지고 잊혔다.

 

2년 전에 리☆군은 오랜만에 결혼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5년 만의 연락이었다. 신랑은 회사의 동료라고 한다. 그녀는 막연히 오라고 하는데, 과거의 인터넷 친구인 내가 가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결국은 안 갔다. 너의 결혼식 때 가야만 하는 다른 결혼식이 있다는 아무도 안 믿을 핑계를 댔다. 나는 리☆군의 결혼식 전날에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한다는 텅 빈 축복을 그녀에게 메신저로 보냈다. 그리고 “결혼해도 우리들의 사쿠라짱을 잊지 말아줘”라고 가벼운 농담을 덧붙였다.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 (유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