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무대를 올리자, FDSC STAGE

지난 20일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가 줌(Zoom)을 이용해 온라인 컨퍼런스 ‘FDSC STAGE’(이하 페스테)를 성황리에 마쳤다. 페스테는 동시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디자이너들이 이야기를 펼치는 장이다. 페스테의 첫 번째 무대 ‘Launching Programs’에서는 다양한 업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디자이너가 각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업무 툴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첫 번째 연사는 현재 ‘블랭크코퍼레이션’ 브랜드 디자이너 최보리였다. 최보리는 2013년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이에 따라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으로 노동법의 기본을 익히고, 노무사를 만나 실질적인 도움을 얻었다. 직접 사직서를 쓰지 않는 한 회사에서 해고를 하기란 굉장히 어렵다는 노무사의 말에, 이직을 준비하는 동시에 아주 기본적인 업무만 하며 버텼다. 회사 내에서는 ‘독한 년’이라고 소문이 돌았지만,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보리는 결국 ‘보리’처럼 버티며 이직할 회사와 연봉 협상을 완전히 마무리 짓고 나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인생에서 회사가 사라지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생계를 책임지는 나’, ‘자연인’, ‘이상적인 나(작업)’로 자아를 나누었다.

  최보리의 런칭 프로그램은 ‘노동법’과 ‘카카오톡’이다. 노동법을 잘 익혀두어 정리해고에도 무너지지 않고 이직을 잘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카카오톡은 수많은 자료 수집과 현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빠릿빠릿하게 진행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며, 특히 ‘나와의 채팅’을 메모장처럼 잘 이용한다고 최보리는 전했다.

다음은 김리원 디자이너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는 최근 1인 스튜디오 ‘RE01’을 설립하여 작업자에서 관리자로 전환할 수 있는 작업환경 설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디자이너 일을 시작했지만, 애정을 쏟은 작업의 크레딧이 스튜디오로 귀속되는 것을 보며 진짜 ‘내 작업’이 맞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판단한 김리원은 퇴사 이후 지인과 작업실을 구해 독립했다. 인하우스 디자이너일 땐 작업자로서의 고민만 있었다면, 독립 후엔 행정 업무를 모두 자신이 감당해야 했다. 작업자에서 관리자로 스탠스를 바꿔야 했다는 말이다.

  그는 우선 번아웃 탈출을 위해 스스로와 약속했다. ‘웃으면서 대할 필요 없다’, ‘존중 없는 일을 할 시간에 자기계발’, ‘모든 일은 과정일 뿐’. 생활습관도 더 건강하게 바꾸고 디자인 구상을 꼼꼼히 기록해 자신에게 부여하는 디렉션을 명확하게 하고자 했다고 김리원은 전했다.

이어 김소미 ‘눈디자인 스튜디오’ 실장이 연사로 나섰다. ‘나랏일 하는 디자이너’ 김소미는 국가 공공기관의 디자인 의뢰를 받는다. 국가기관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공문의 세세한 구분 등 제약이 많아 까다롭다. 다른 디자이너들과 달리 김소미에겐 나라장터와 ‘hwp’(아래한글)가 익숙하다. 이 과정을 지배하는 수많은 법률과 알기 어려운 거대한 시스템의 존재는 김소미의 ‘주인의식’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제 영역 밖의 거대한 체계가 계속 의식되었다. 김소미는 게임 <벽부수기>를 인용하며 전했다. 그 체계가 아무리 노력해도 금도 가지 않는 거대한 벽 같다고.

  이에 김소미는 주인의식이 아니라 ‘책임의식’에 주목했다. 일의 위나 아래가 아니라 한가운데에 위치해서 문제를 직면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워크 플로우 차트를 만들어 클라이언트와 원활한 소통을 이루어, ‘어떻게든 한다’는 일념으로 임하면서 말이다. 국가 계약 수칙은 복잡하고 양은 방대하며 용어는 까다롭다. 김소미는 이에 질식할 뻔 했지만, 꾸준히 민원을 넣어 결국 자신의 요청 사항이 수칙에 적용되게끔 변화를 유도했다. 개탄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네 번째 발표는 전 ‘디스트릭트’ UX 디자이너 이지혜가 맡았다. 이지혜는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넓고 얉게 탐구한다. 그는 디스트릭트에서 기획자로 근무하며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업이 잘 이루어지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기에 ‘파워포인트’와 ‘메일’을 가장 많이 쓴다. 디지털 미디어 에이전시로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각 제작 팀의 소통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기획팀에서 ‘뭔가 풍성하게 팡팡 터지는 느낌’을 원하면 그 요구를 개발팀에게는 ‘파티클 수량 4배’로 전달해주는 식의 소통법이다. 다양한 관심사를 지닌 개인적 특성과 기획자로서의 자질이 만나, 이지혜의 리서치는 풍부하다. 이때 사용한 프로그램이 ‘노션 팀 페이지’다. 자료를 모을 땐 ‘왜 찾았는지, 어떤 포인트가 의미가 있는지’를 함께 기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브랜딩 스튜디오 ‘CFC’ 대표 전채리 디자이너가 무대에 섰다. 전채리는 아이덴티티 디자인 분야에서 14년간 종사했다. 2013년에 CFC를 설립하며 아트디렉터와 매니징 디렉터로서의 자아를 확장시켰다. 강연 스크린에 띄워진 전채리의 뇌구조 그림에는 글귀가 빼곡했다. 브랜딩 작업 자체에 대한 고민,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수정 사항을 직원들에게 잘 전달할 방법, 동료와 직원들의 장점 부각과 단점 개선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방법 등 끊임없는 노력이 지금의 전채리를 만들었다. 작업과 관리를 병행해야하는 그는 스스로의 역할 분리부터 용도별로 메일을 따로 만들기까지 효율적인 업무를 위한 분류에 능해보였다. 전채리는 지속가능한 스튜디오 운영에 필요한 자세 7가지를 전하며 강연을 마쳤다.

 “1. 재능보다는 노력이라는 믿음 2. 계약할 땐 보수적으로, 계약 후엔 최선의 결과를 최우선으로 3. 언제나 우리가 옳은 건 아니다 4. 숲과 나무를 번갈아보기 5.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 고민 6. 오늘만 하고 끝낼 디자인이 아니다. 길게 보자. 7. 업앤다운의 흐름을 익히기

총 455명이 참가한 대규모 온라인 세미나였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네트워크는 물론 비디오와 사운드를  꼼꼼히 체크하여 시청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FDSC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사교 모임’으로서 디자인 업계에서 사라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만들어졌다. 서로의 연대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개최한 행사인 만큼, 행사 중 채팅장에서도 반응과 응원이 뜨거웠다. 관객들은 연사들의 과거 상사가 했다던 모욕적인 발언에 깊은 탄식을 보이거나, 지혜로운 실무 팁에 이모티콘을 연신 날리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쉬는 시간엔 ‘어서 허리 펴세요 여러분. 척추수술 1700만원’ 처럼 재치있는 댓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또 FDSC는 ‘디자인 FM’이라는 팟캐스트를 만들었다. 시즌 1은 최고의 팟캐스트 순위에 올랐고, 열렬한 성원에 6월 24일에 ‘디자인 FM 시즌 2’가 시작된다. 

김가은 기자

gaeun0826@kart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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