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가 대작(代作)인가

대법원, 조영남 사기 혐의에 무죄 확정

지난 5월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가수 조영남 씨의 공개변론. 이번 재판은 ‘미술의 기준’이 무엇인지 사법부에서 판단하게 되는 첫 재판이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小部)에서 공개 변론이 열린 최초의 사례이다.(각주1) 그만큼 현장에는 많은 취재진들과 미술계 인사들, 그리고 재판을 참관하러 온 대학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처럼 4년간 대중의 관심을 모았던 이 사건의 시작은 20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인 송모 씨에게 그림 한 점당 10여만 원의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그려오게 하였다. 또한,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한 다음 송 씨가 임의대로 표현하게 하거나, 자신의 기존 그림 그대로 그려달라는 등의 작업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조 씨는 송모 씨에게 7년 동안 200여 점의 그림을 받아 배경색을 조금 덧칠하는 등 경미한 작업만 추가하여 자신의 서명을 남기고 다른 사람이 그렸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마치 자신이 그린 것처럼 그림을 판매해 1억 5천300여만 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 2심은 무죄

조 씨의 본 혐의에 대해 2017년 10월 18일 1심 재판부는 △국내 미술 시장 혼란 초래 △작가로서 신뢰성 하락 △조수의 노력과 노동에 대한 가치 무시 △대부분 피해자와 명시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음 △책임 있는 자세와 반성 부족 등을 이유로 조 씨에게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018년 8월 17일 항소심 재판부는 △화투 소재의 작품은 조 씨의 고유한 아이디어 △대작 화가들은 기술 보조에 불과 △조 씨의 친작(親作)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 볼 수 없음 △미술사적으로도 조수가 제작을 보조하는 방식은 널리 알려진 사실 △구매자들에게 ‘조수’를 사용한 사실을 통보해야 할 의무 없음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1심과 2심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만큼 이번 대법원판결에 미술계 이목이 쏠렸다.

대법원 공개 변론 현장

이번 재판의 쟁점은 지난 재판과 같이 ‘미술 작품 제작에 제삼자가 참여한 경우 이를 작품 구매자에게 알릴 의무의 여부’였다. 검찰 측은 조 씨의 작품 <꽃과 콜라>, <항상 영광>을 제시하며 “이 작품에서 조 씨가 한 것은 알파벳 길이 연장, 배경 덧칠, 서명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검찰 측 참고인인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 신제남은 “조수의 사용은 미술계의 관행이 아니며 손을 쓰지 못하는 화가들도 입이나 발을 사용해서라도 직접 그림을 그린다며 대작 화가의 그림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조금만 손보고 사인하는 것은 작가의 양심이 결여된 행위”라고 말했다.

  반면 조 씨의 변호인은 “미술계에서 조수의 사용은 관행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과 데미안 허스트 등도 조수를 썼고, 만약 조영남 씨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들이 우리나라에선 사기꾼이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조 씨는 방송에서 조수의 존재를 숨김없이 밝혔고 조수의 존재가 구매자들에게 필수적인 정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거래에 있어 매도인이 거래 목적물에 대해 그 사실을 안다면 매수자가 매수행위를 하지 않았을 사실에 대해 고지하지 않는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인은 조 씨가 사기죄에 해당한다면 사기행위를 도운 송 씨 또한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 참고인인 전 한국화랑협회 회장인 표미선 은 “본인의 생각을 그려 넣은 작품이기 때문에 조 씨 본인의 작품이며 물리적인 제작과정을 모두 작가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현대미술계에서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공개 변론을 직접 지켜본 한 학생은 변호인 측의 참고인 선택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이 재판은 결국 ‘미술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를 사법부에서 판단하는 것인데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판매하는 사람인화랑 협회 회장이 나와서 하는 말에 과연 신빙성이 있는가? 화랑 주인이라면 당연히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좋은 말만 할 것이다. 내가 화랑 주인이라도 작품에 대해 안 좋은 말은 굳이 안 하고 좋은 말만 할 것 같다”며 “검사 측 참고인처럼 미술을 하는 사람이 나와서 같은 말을 했다면 훨씬 신빙성 있었을 것”이라 덧붙였다.  

결국 무죄 확정

결국 6월 25일, 조 씨의 ‘그림 대작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되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은 사기죄로 기소된 것이지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이 아니고, 미술 작품의 거래에서 그 작품의 친작 여부가 작품 구매자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이 이 사건 작품을 피고인 조영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네티즌은 “만약 조영남이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고 아이디어를 준 것만으로 그 작품의 작가가 된다면 몽유도원도의 작가는 안견이 아니라 안평대군”이라며 판결을 비판했다.

  검찰의 기소 적용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술원의 한 학생은 “검찰이 차라리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했다면 조 씨가 유죄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재판의 결과와 별개로 작품 당 10만 원을 줬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고 최저시급도 안되는 돈을 받고 판 자신의 그림이 10배, 100배의 가격으로 팔린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송 씨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미술계 등 예술계에 많은 숙제와 논쟁 거리를 던진다. 작품 제작에 조수가 참여했다는 것을 고지할 의무가 없다는 판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자칫 조수에게 몇 가지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대작을 시켜 자신의 작품인 양 발표하는 행태가 법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사기죄 여부를 떠나 ‘예술가의 양심’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미술계 스스로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다.

  한편 조 씨는 전시회와 책 출판 등 예술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 밝혔다.

정윤서 기자

angelina0501@karts.ac.kr

각주1) 전원합의체(全員合議體):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합의체이다.

           소부(小部):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합의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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