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오루크-기능? (III)

§3 교환과 강탈 사이에서

교환이야말로 모더니즘의 제1 규칙이다. 예컨대 서브라임 프리퀀시스(sublime frequencies)에서 유통된 태국의 대중음악은 모더니즘이 강제한 ‘작품’ 단위 안으로 편재되는데, 이러한 규칙 내에서 이 음악은 내게 감흥을 줄 수 있다. 마치 온스, kg 같은 단위가 무게를 재는 단위로써, 해당 내용의 규격을 성립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모더니즘 체제 내부에서 교환이라고 간주했던 행위가 실상 강탈이자 부채일 때 발생한다. 이는 음악을 제 사고의 근원으로 삼는 작가들에게 서구 보편성의 균열을 지시하는 촉매로 인식된다. 한 작품과 다른 작품의 자리바꿈, 비교, 교환에는 짐승이 도살장으로 질질 끌려가면서 흘린 피와 오물과 닮은 흔적이 남는다. 이들은 보편성의 폭력에 대해 윤리적 성찰을 수행하길 거부하고, 작품과 작품이 교환되는 모더니즘의 장(field) 내부의 균열을 집요하게 드러내는 데 관심을 가진다. 이 균열을 응시할 수 있게 만드는 특권적 위치에 바로 ’덥'(dub)이라는 음악장르가 자리한다.

더블. 도플갱어. 이중인화, 그림자가 나를 대신하고, 나와 당신이 맺은 약속은 유예된다. 영국의 비평가 마크 피셔는 베리얼(burial)의 데뷔앨범을 음향적 혼톨로지의 정전이라 일컬으며, 베리얼의 음악에서 잃어버린 미래의 지평을 발견한다. 피셔는 베리얼의 주술을 덥이 지니고 있는 권능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데, 그는 음악 평론가 이언 펜먼에게서 덥-레코딩이 모더니즘이 기저 논리가 되어 작동하는 교환 시스템을 오염시킨다는 주장을 빌려온다.

“베리얼은 소리의 우발적인 물질성을 억제하기보다는, 소리의 갈라진 틈에서 오디오-유령을 강신시킨다. (…) 다시 펜먼에 따르면 덥은 ‘자신의 것이 아닌 불법 점유된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 녹음기의 숨겨진 회로를 통해 우회된 스튜디오의 ‘재re-‘ 소유물” 

(마크 피셔 「레이브 이후의 런던, London After the Rave」)

“덥의 음속보다 느린 에코 사운드는 단순한 특수효과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어떤 주관적인 관점의 적절한 효과이다: 라스타의 허깨비적 세계관에 대한 어두운 음향적 거울상. 덥 버전은 공연 실황의 매개되지 않은 재현으로서, 기술의 확실성을 깎는 것이다. 덥은 우리가 듣고 즐길 수 있도록 녹음의 이음매를 내부에서 뒤집었으므로 획기적이었다. (…) 덥은 부패하지 않은 시간성의 개념을 통해 거대한 시간을 엉망으로 만든다. 미래도 과거도 아닌 이 두 시간성의 더블 페이스를 착용한, 덥은 과거이자 미래의 흔적이 된다. 덥은 기억 혹은 미래성이자, 진정한 감정과 기술적 기생충으로서의 음악이다. 덥의 술책학은 사람들을 실제로 사라지게 하는 마법의 한 형태이며, 그들의 맥락, 흔적, 윤곽만 남겨둔다.”

(이언 펜먼 「검고 비밀스러운 술책학, BLACK SECRET TRICKNOLOGY」)

펜먼과 피셔는 공히 덥이 이미 사라져 버린 유령적 목소리를 강신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덥 레코딩은 사운드스케이프 전체를 울려퍼지게 만들며 청각적 공간의 부피감을 지속적으로 확장시킨다. 이렇게 부풀어 오른 사운드스케이프에 에코가 끊임없이 메아리치며 청취자와 사운드 사이의 청각적 거리가 딜레이된다. 이와 같은 사운드 스케이프 내에서 절단된 작품의 조각은 자율성을 얻는다(보통 레코드의 b-side로 들어있는 덥 버전을 상기해보자). 원래 노래에 속해 있던 구절은 늘어나고 확장되면서 자율성을 얻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후렴구의 목소리는 자율신경만 존재하는 시체의 사지처럼 제 의지가 아니라 이미 사라져 버린 주인의 충동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모더니즘이 관리했던 시간의 체제엔 분열이 일어난다. 연대기적 시간을 ‘현재’ 내부로 끌어들이며 역사의 저개발 지대를 파괴시키던 모더니즘의 교환 기능에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오로지 교환기능이 선재함에 따라 교환기능에 오류가 (당연하지만 또한 역설적이게도) 발생한다. 바이러스의 전제조건이 숙주인 것처럼, 오류의 전제조건은 시스템이다. 서구 제국주의의 폭력이 없다면 덥도 존재할 수 없다. 덥은 모더니즘의 교환 시스템을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다. 스티브 굿맨(aka Kode 9)은 이 같은 이언 펜먼의 관점을 ‘바이러스학’이라 지칭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펜먼에게 덥 바이러스는 식민지 이후의 문명 충돌에 연장된 시간대로 작동하는데, 이 기간 동안 노예와 강제 이주의 유령이 유럽 정신을 괴롭히게 된다. 제국의 식민지는 음향적이고 바이러스적인 침투를 통한 스텔스 모드로 반격한다. (…) 어떻게 자메이카의 덥처럼 지역적이고 특수한 것이 그처럼 일반적인 방식으로 접근 가능하고, 인용에 순응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처럼 굿맨 역시 자메이카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탄생한 덥이 어떻게 대중음악 내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자문한다. 덥을 보편적으로 만든 힘이란 무엇일까? 덥은 모더니즘이 수행하는 교환(혹은 착취, 당신이 뭐라 불러도 좋다)체계를 균열시킨다. 그러나 덥은 이때 특수성의 일부로서 모더니즘의 보편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덥은 보편성이 놓여 있는 위상 자체를 오염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굿맨은 코토 에슌의 음향적 모험을 따라간다. 덥의 추상화. 개념과 동등한 위상에서 사고하는 음악. 디지털 사운드를 좀먹는 덥의 바이러스는 디트로이트 테크노로 이어져 언더그라운드 댄스음악 내부로 비밀스럽게 잠입한다. 코토 에슌은 인류의 신경체계 내부로 덥 바이러스가 침투한다고 쓴다. 에슌의 주장대로 덥은 유전적 형질이자 밈(MEME)으로서 리듬과 박자를 통해 신경체계 내부에 자신의 흔적을 깊숙이 박아 넣는다. 덥은 인간이 당면한 보편적 현실 혹은 인간이 파묻혀 있는 세계를, 즉 우리의 “음향적 현실을 다시 디자인”한다. 덥이 일으키는 변종과 오염, 감염은 모두 음향적 현실을 재규정하는 추상적 과정으로서 발생한다.

보편성에 오염이 생기면 원근법적 균형을 이끌던 아르키메데스의 점이 무너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우리의 시선은 갈 곳을 잃어버린다. 음악가이자 저술가인 데이빗 툽은 덥을 통해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을 동시에 껴안은 ‘자아의 내성’에 접근한다. 주체의 위치는 오염된 보편성의 회로에서 불확실해지고 불안정성 안으로 휘말리게 된다. 툽은 덥의 꿈(dub dream)을 꾼다. 툽은 스크래치 리 페리(그는 덥의 왕이자 귀신이고, 광인이자…)의 녹음실은 상상력과 비의로 가득한 비밀 실험실로 바뀐다고 지적한다. 덥은 우리가 속한 현실 자체를 뒤집고, 덥이 행하는 마술은 우리를 최면에 걸리게 만든다. 그 방법은 에코, 노이즈, 딜레이로 음향적 리얼리티를 변조시키는 것이다. 툽에 따르면 덥은 음악을 상업적 영역에서 해방시키고, 시간의 지도를 뒤집어 지금 이곳과 복제된 평행우주를 산출한다. 덥으로 인해 시간성의 이음매가 어긋나면서, 현실을 지탱하던 시간들이 뒤엉킨다. 폭파된 댐에서 시간이 방출되면서 현실은 점차 내부의 균형을 잃기 시작한다. 시간의 급류에 휩쓸린 우리는 우리와 꼭 닮았지만, 더 사악하고 공포스러운 도플갱어-세계로 흘러 들어간다. 내가 듣고 있는 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소리인가?

취향에 의거해 자신을 산산조각 내는 짐 오루크-기능은 보편성 전체를 오염시키는 덥의 기능과 긴밀히 연결된다. 덥이 행하는 기능이 보편성의 회로를 바이러스로 감염시킨다면, 짐 오루크-기능은 보편성의 폭력에 의거해서 나 자신을 붕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교환체제에 일어나는 이러한 오류들은, 시스템 자체를 뒤바꿀 뿐 아니라,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는 ‘나 자신’의 시점을 뒤흔든다. 동시에 나 자신의 위치가 불확실함에 따라 일어나는 이중 구속적 상황은, 음악을 합성하는 청취자의 역량을 시험대에 오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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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Kodwo eshun, 『More Brilliant Than the Sun : Adventures in Sonic Fiction』, (Quartet Books, 1999), pp64~65 

“스크레치 리 페리는 홀거 추카이(크라우트 록 밴드 캔(Can)의 멤버)가 라디오를 활용하는 방식처럼, 노래 안에서 또 다른 시간대를 연다. 그는 안테나를 통해 신호를 노래로 끌어내리듯, TV를 샘플링한다. 공간은 장소들을 바꾼다. 현실은 그 자체로 뒤집힌다. 유리가 박살나며 폭발하고, 아이들이 우글거리고, 물이 흘러내리고, 변기가 콸콸거리며, 바스락거리는 바람이 폭발하고, 노래는 바람에 흩어진다.(…) 리 페리의 블랙아크 스튜디오는 기술-마법적인 불연속화 방식으로 전환한다. 믹싱 데스크를 작동시키려면, 변화하는 공간의 네트워크를 살펴봐야 한다. 페리는 유령적인 차원을 가로질러서, 청각적 건축의 시간의 미로를 걷는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유령 분대에 합류해 있었고, 유령들은 나를 그들의 대장으로 알아챘다. 나는 유령들의 대장이다.‘” 

Steve Goodman, 『Sonic Warfare: Sound, Affect, and the Ecology of Fear』, (MIT PRESS, 2009) 

David Toop, 『Ocean of sound : Aether Talk, Ambient Sound and Imaginary Worlds』, (Serpent’s Tail, 2001) 

Mark Fisher, 『K-PUNK: The Collected and Unpublished Writings of Mark Fisher (2004-2016)』, (Repeater books, 2017) 

Simon Reynolds, 『Bring the Noise: 20 Years of Writing about Hip Rock and Hip Hop』, (Faber & Faber,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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