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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적 오류와 추상성 그리고 양가적 인덱스로서의 글리치 (2)

최종적으로 산출된 글리치 이미지와 그것의 추상성만을 놓고 본다면 회화나 여타의 매체에서의 실패의 활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각주1 하지만 글리치 이미지는 컴퓨터를 통한 연산과 기술적 메커니즘의 실패와 오류 그리고 메커니즘이 지닌 우연성이 얽혀있다는 점에서 글리치는 양가적으로 인식된다. 

글리치 : 실패와 오류 : 우연

글리치의 오류와 실패에서 우연은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1) 데이터모싱과 데이터벤딩 등의 기법, 툴을 활용해 의도적으로 작업화해내는 경우, 이때의 실패는 의도된 우연과 의도된 실패로 ‘실패’, ‘우연’이라는 용어가 연상시키는 본래의 관념과는 다른 맥락을 띈다. (2) 컴퓨터의 오류로 인해 알 수 없던 블랙박스가 열리는 우연.

우선, 후자의 사례로는 우리가 컴퓨터 시스템, 게임 소프트웨어, 음악 파일 등을 사용할 때 겪었을(/겪어 본 적 없을) 경험을 떠올려볼 수 있다.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파일을 전자 디바이스로 감상할 때, 과부하 등의 원인으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깨진 픽셀이 나타나는 등 동영상을 적절히 재생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이에 해당한다. 닌텐도의 게임 《포켓몬스터 적·녹》에서 ‘글리치 포켓몬’이라고도 불리는, 미싱노(MissingNo.)는 글리치의 예시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미싱노는 (프로그래밍의 맥락에서) 버그의 일종이다. 하지만 미싱노에 대한 반응은 (비록 과거의 반응으로 현재와 거리가 있으나) 글리치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참조점이 될 수 있는데 게임에 대해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는 알렉스 피쉘(Alex Pieschel)은 어린 시절 《포켓몬스터》를 플레이했던 경험이 있다고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통의 인터넷 명명법(nomenclature)에서, “버그”와 “글리치” 모두 저자(author) 의도에 반대되는 오류를 가리키지만, “버그”는 종종 더 무겁고 더 비난받을 만한 경멸적인 것으로 사용되는 반면, “글리치”는 코드의 영역 바깥에 입력이나 요소에 의해 가해진 더 미스테리하고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암시한다.” “내가 발견한 각각이 경험되는 방식을 강조하며 가장 유용한 구분법은, 버그는 프로그래머(저자)가 찾고 고치는 반면에, 글리치는 플레이어(관객)에 의해 경험되거나 개척된다(exploited)는 것이다.”각주2 

△미싱노 포켓몬을 맞닥뜨린 플레이어

미싱노는 초기 개발자들이 190종의 포켓몬을 기획했으나 저장 용량의 제약으로 인해 40마리의 포켓몬을 삭제했던 일에서 비롯되었다. 40마리의 포켓몬은 만들어졌다가 삭제된 것으로 완전 제거가 아니었기에 플레이어들이 게임 내의 이벤트들을 거침으로써 불완전하게 삭제되었던 미싱노 포켓몬들이 출현할 수 있었다. 번호를 잃어버린, 알 수 없는 포켓몬으로서의 미싱노는 괴담처럼 이야기되기도 하였으며 플레이어에게 미스테리한 경험의 출현을 가져다주었다. 그로 인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미싱노를 잡기 위한 공략법과 도감이 유통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게임의 그래픽들이 일시적으로 오류가 일어나는 경우들이 글리치의 예시로 회자되곤 하는데, 대개 캐릭터가 화면 위의 이상한 위치에 있다던가, NPC의 얼굴이 괴이하게 깨져 나타나는 경우들이 인터넷상에서 떠돌아다닌다. 

이런 경험의 사례가 보여주듯 글리치는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경험으로 느껴진다. 설계된 메커니즘과 구조를 가진 컴퓨터 등의 블랙박스는 오류와 같은 우연적 계기를 통해 경험되고 그 내부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기에 낯섦의 감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때의 글리치는 플레이어에게 그가 보고 있는 이미지와 연관되는 관계망들, 영역들에 대한 인덱스가 될 수 있다. 이는 플레이어가 그것을 (의미론적인 맥락에서, 특히 무엇에 관한) 인덱스로 인식하는지와는 별개로 글리치는 게임 혹은 테크놀로지 네트워크와 출력된 이미지의 관계‐인접적인 이벤트들‐에 따르기 때문이다.

한편, 글리치 이미지는 이미지의 생성 과정에 대한 물질적 인덱스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정상적으로 재생되는 동영상에서는 보이지 않고 정보적 차원에 지나지 않았던 데이터들이 이미지-표면으로, 이미지 자체가 되어 출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동영상이 데이터모싱을 거침으로써 동영상 파일과 감상자에게 정보 값에 지나지 않던(/않았을) 아이-프레임, 비-프레임 등이 드러나게 되고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모습에 가려진 것들, 디지털 공정, 컴퓨터의 구조 등등이 표면에 나타나게 된다. 

글리치 : 인덱스

때로는 블랙박스에 대한 경험을 가능케 해주는 글리치는 디지털 이미지의 물리적 관계에 대한 인덱스가 되기도 하지만 출현의 상황에 따라 감상자에게 이미지 자체로는 어떠한 것도 가리키지 못해 인덱스가 무(효)화되고 비주얼 혹은 미감의 차원으로 남기도 한다. 이는 글리치 이미지가 인덱스로 존재하고자 할 때 제기되는 질문, “디지털 이미지의 표피를 감상자는 분간해낼 재주가 없는가?”와 직결된다. 

앞서 말했던 (2)의 경우와 같은 경험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미감과 비주얼에 지나지 않는) 표피로서의 글리치. 글리치가 표피가 되는 상황은 컴퓨터, 디지털 디바이스, 접속 서버와 같은 여러 매체의 “환경”과 다시 관계한다. 가령 유사-글리치의 형태로 만들어진 디지털 이미지들이 떠돌아다니는 환경에서 본래 매체와 디지털 이미지가 투명하지 않음을 노출하던 글리치는 그 자체로 표피가 되어 지표적인 연결들은 흐려지고 (불)투명성의 논리에 대한 어떠한 것도 대리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에 놓인다. 쉬운 예시로는 인스타그램 필터, 브이로그 영상 인트로 등에 사용되는 글리치 효과를 떠올려 보면 글리치의 추상이 어떤 지표적인 역할을 구실하기 보단 단순효과로 기능함을 알 수 있다. 

컴퓨터 하드웨어, (버그의 원인이 되는) 소프트웨어, 인터넷 속도, 회로 등의 개발은 글리치를 점점 더 상쇄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미래에 유저(감상자)의 고사양화된 기기와 게임 프로그램, 동영상 플랫폼의 서버 사이에는 서로가 가지는 시차가 여전히 있어 그때의 글리치는 과거의(또는 기존의) 오류와 다른 문제로 인해 나타나겠지만 대체로 (버그를 포함해) 글리치는 제거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어쩌면 플레이 도중에 글리치를 보게 되는 것은 더욱더 희귀해지고 무(효)화된 인덱스로서의 글리치만이 떠돌아다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덱스로서의 글리치는 감상자와 플레이어로 하여금 다른 행위를 요구하기도 하며 정상적인 것으로서의 이미지와는 다른 형태의 이미지와 경험을 제공한다. 표피에 가려진 것들을 보여주는 글리치들. 그러한 글리치들을 긍정하기. 

이상희

각주1 예를 들어, 폴록의 추상회화처럼 우연의 메커니즘을 끌어들여 (회화라는) 매체를 탐구하려는 경우, 이때의 우연은 우연적 절차라고 칭해질 수 없다. 폴록의 붓에서 페인트가 떨어지고 붓질의 자발성이 증가함에 따라 캔버스 화면에는 우발적이거나 예기치 않은 추상이 펼쳐지지만, 이는 우리가 우연을 감지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는 폴록의 붓으로부터 떨어지는 페인트가 어떤 형태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알 수 없는 형태가 나올 것임을 알고 있다. 그의 회화는 우연을 활용해 회화를 실험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의 회화에서 우연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단순 효과로서의 글리치 이미지를 얻고자 활용하는 양상들의 경우, 감상자에게 글리치가 우연의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다는 점에서는 폴록의 추상회화와 유사점을 공유한다.

각주2 https://web.archive.org/web/20160812024715/http://www.arcadereview.net/published/2014/11/7/glitches-a-kind-of-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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