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회로에 균열을 내자—‘개방회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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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5일 한적한 일요일 오후에 ‘개방회로’를 만났다. 개방회로는 김세현, 이예슬, 이현인, 조근하 4명과 지금은 대구에 있는 이주현을 더해 다섯으로 이루어진 모임이자 세운상가 가열 327호에 자리를 튼 공간 이름이다.

 

인터뷰이보다 인터뷰어인 우리가 먼저 왔다. 김세현을 제외하고 조금씩 늦었다. 우리는 선물로 덴마크 과자를 사갔는데 약속이나 한듯 조근하는 커피를, 이현인는 귤을 사왔다.

 

세운상가는 평일 오후 8시 이후와 주말에는 따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지 않으면 전기가 안 들어온다. 건물이 노후해 화재위험을 우려한 탓이다. 몰랐다. 그래서 속기하려고 들고간 노트북 배터리가 없어 큰일이다 싶었는데 마침 건너편 전기상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양해를 구하고 멀티탭을 꽂아 전기를 빌려 썼다.

 

건너집 사장님의 너털 웃음이 좋았다. 먹을 것도 풍성하고 날씨도 좋았다. 마치 소풍 온 기분이었달까. 그런 편한 기분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얼마 전 <한겨레>에 난 개방회로 기사(9월 12일 치 22면 ‘전자부품·비아그라 간판 사이 ‘예술’이 꽃피다’ 참조)를 봤는데 지면이 얼마 안돼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는 지면이 널널하다! 자기소개 해달라.

세현 한예종 예경과 다니고 있다. 관심 있는 분야는 도시와 공간이다.

예슬 한예종 한국예술학과 08학번이다. 지금은 지역재생 일을 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근하와 고등학교 친구라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다. 작년에 근하가 일하고 있던 경기창작센터에 놀러 갔다가 현인 언니를 만났고, 부전공인 예술경영과 수업을 듣다가 세현 오빠를 알게 됐다. 우리 둘은 학교에서 ‘지역’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함께 했었다.

근하 한국예술학과를 2013년에 졸업했다. 아르바이트로 한 대안 미디어 뉴스팀에서 뉴스를 편집하고 업로드하고 있지만 어쨌건 백수다. 지난 1년간 경기창작센터에서 지역 기반 프로젝트 일을 했다. 야심 차게 들어갔는데, 일을 하며 관 주도형 커뮤니티아트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됐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들이 많더라. 남의 돈을 써서 하는 일이라는 게 내 맘대로 안 됐다. 당시 센터에서 함께 근무하던 현인 언니와 지금은 대구에 있는 주현 언니와 얘기하며 혼자 아등바등한다고 안 될 일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내 맘대로 일을 벌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개방회로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맘대로라니?

근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하면서 예술가들의 욕심, 지역주민의 무관심,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알력 다툼이랄까 하는 걸 느꼈다. 게다가 1년 단위 사업으로 지속성 없는 일회성 이벤트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그게 지역기반프로젝트의 현 주소가 아닐까? 구렸다. 그러다보니 지역기반프로젝트가 됐든, 그냥 아트가 됐든, 큰 돈 안 들여도 우리끼리 재미있고 소소한 걸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맘대로!

 

-참, 현인 씨도 자기소개를 해달라.

현인 이현인이라고 한다. 홍대 예술학과 04학번이고 동대학원 예술학과를 수료했다. 시각미술이론을 전공했고 학부 졸업 이후 계속 미술계에서 일을 했다는 점에서, 다른 멤버들과는 기반이 조금 다르다.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시티서울에서 전시 코디네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12월 말까지 계약되어 있다(웃음).

 

-개방회로는 어떻게 결성됐나?

현인 근하와 주현은 경기창작센터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셋의 업무는 달랐지만, 다들 집이 멀어 출퇴근이 힘든 탓에 함께 살았다. 자연스레 얘기를 많이 나누며 서로 처한 상황에 대해 공유했다. 우리끼리 합이 잘 맞았다. 월세를 1/n하려고 멤버들을 모았다. 그래서 원래 이름을 1/n으로 지으려고 했는데, 동명의 잡지가 있어 관뒀다. 하나의 공통된 비전이 있진 않다.

근하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로 함께 가자는 사람들은 아니다(웃음).

 

-이미 만들어진 대안공간에서 시작할 수도 있는데 따로 꾸려 나온 이유는 뭔가?

예슬 나는 지금 현재 주목받고 있는 어떤 대안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과정을 배우고 싶었다. 개방회로는 친구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해본다는 데 의의를 두고 참여했다. 내가 실천적인 사람이 아니라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냈다.

세현 덩치가 큰 조직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지만 딱히 기존 공간에 대해 커다란 반감을 갖고 있진 않다. 이미 체계가 잡혀있는 큰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한들, 그게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서부터 내 힘으로 해보고 싶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은 싸다면 싸지만 비싸다면 비싸다. 다들 벌이도 넉넉하지 않은데 인터넷이 활성화된 요즘, 굳이 돈 들여 물리적인 공간을 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슬 공간이 생기면 책임감도 생겨 스스로 강제하게 된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세운상가 말고 다른 후보 공간은 없었나?

현인 없었다. 내 꿈에 세운상가가 나와서 다른 생각 안 하고 여기로 정했다(웃음). 근하와 처음 세운상가를 방문한 다음 날 바로 공간을 계약했다. 여기가 주상복합이란 얘기를 들었다. 작지만 레지던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운상가는 지대도 싸고, 교통도 편리하다. 청계천이나 을지로에서 재료 구입을 하기에도 굉장히 용이하다. 상가 공간은 작업실 겸 윈도우갤러리로, 아파트는 숙식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면 작가들에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도 세운상가에 작게나마 레지던시를 만들고 싶단 꿈을 꾼다.

근하 세운상가에 자리 잡기 전에 ‘300/20’이라는 팀이 여기 들어와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흘려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현인 언니가 꿈에 세운상가가 나왔다며 가보자고 했다. 종로는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길이라 세운상가라는 곳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혼자 들어오기 무서운 공간이라 안 와봤다. 죽어 있는 공간일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 열심히들 일하고 있더라.

 

– 개방회로가 세운상가에서 받은 인상은?

세현 인상을 받고 있는 중이다. 세운상가가 역사적인 맥락이 굉장히 많은데 거기에 대해 체감하는 바는 별로 없다. 그냥 종로 한복판에 있는 의외로 오래된 건물이고 조용하다는 게 다다.

 

-개방회로가 세운상가에서 대안적인 공간으로 자생할 수 있다고 보나?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 목표 중 하나인가?

세현 평소 안에 들어가서 너무 주도적이고 의욕적으로 해야 한다거나 자리를 잡고 뭔가 보여줘야한다는 생각이 폐해의 원인이라 느꼈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 싶었다. 계시는 분들은 계시는 대로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할 거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뉴스기사 덕인지 부쩍 세운상가를 둘러보러 오는 사람이 늘었다. 지대가 싸고, 매력 있는 공간으로 주목을 받고 있기에 앞으로 확장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한다. 다만, 빨간날과 평일 밤 8시 이후로 전기가 끊긴다거나, 주변부에 말끔한 시설이 들어오기에 제한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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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회로는 첫 사업으로 일본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올타(OLTA)의 드로잉 전시를 했다.

현인 미디어시티서울 참여 작가 중 타무라 유이치로 씨의 리서치 어시스턴트로 근하를 추천했고, 올 4월부터 각종 자료 조사를 도와주게 되었다. 그 와중에 올타라는 그룹이 한국에 와있었다.

근하 올타와 타무라 씨는 ‘도쿄원더사이트’라는 레지던시에서 서로 알게 된 사이다. 둘 모두 지금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올타는 타무라 씨와 저녁자리에 우연히 동석하게 되어 알게 됐다. 알고보니 올타는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있어 작가 유병서 씨와 아는 사이였는데 나는 유병서 씨가 연출로 있는 ‘미완성프로젝트’ 단원’이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퍼포먼스 그룹인 올타가 드로잉부터 시작을 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런데 이게 발표되는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드로잉 전시를 해보지 않을래?”하고 제안을 했다.

 

-기획하고 있는 전시가 있나?

세현 한겨레에 대안공간이라고 소개되었지만, 우리 스스로 대안공간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한편 우리가 또 전시만을 위한 공간도 아니다. 지금은 미술 쪽만 다뤄왔지만, 애니메이션 작업과 전통 공연을 준비 중이다.

우리는 자생적인 움직임에 관심이 많다. 요즘 ‘사업자 모임’이라는 걸 갖고 있다. 초우상회, 그로우딥, 현대쎈타, 타투이스트 황인찬, 소설가 전영조, 디자이너 윤덕준 등이 함께 하고 있다. 덕준 씨가 같이 술 한잔 먹자길래 편하게 갔는데, 서로 뭘 해보면 재밌을 거 같다는 좋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가보다. 지금은 각자 분산되어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묶이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방회로가 추구하는 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현인 누군가 우리보고 정체성이 없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런 애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 잘 안 나왔다. 말로 정리를 한다고 정체성이 되는 건 아니지만. 미션과 방향성을 정해야 하는가 고민도 많이 했는데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근하 미션과 방향성이 모아지지 않지만, 추구하는 바는 분명 있다.

예슬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다보니 공동체라는 키워드에 관심 갖게 되었다. 자연스레 연대라는 키워드도 생각하고 있다.

현인 지금은 한 명이 잘나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거 같다. 각자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다. 서로 조금씩 도와가는 게 필요하다.

 

-개방회로를 하나의 공동체라 불러도 될까?

세현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면 공동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방회로를 예로 들자면, “이걸 향해서 가자!”는 건 없지만, 함께 공유하며 추구하는 가치가 분명 있다. 의견 차이가 있어도 이를 해결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면 공동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개방회로는 무엇을 공유하나?

세현 개방회로라는 이름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여기는 CCTV 점포였다. CCTV는 폐쇄회로티브이의 줄임말인데, 여기서 개방회로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그 의미를 생각해봤다. 폐쇄회로는 스위치가 켜진 상태로, 말하자면 작동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개방회로는 스위치가 꺼진 상태로,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폐쇄회로가 지금 작동하고 있는 체제나 기존의 것을 의미한다면, 대안 혹은 할 수 없는 것과 못하는 것으로 큰 방향을 잡자고 멤버끼리 합의를 했다. 얽매이진 않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최대한 이를 염두에 둔다.

현인 요즘 젊은 사람들이 ‘스위치 오프(off)’ 상태가 아닐까한다. 자기 에너지는 없이 꺼진 상태로 기존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것을 좇아 억지로 살고 있다. 우리 공간과 팀 이름이 너무 부정적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그래도 그게 지금의 나이자 우리인 것 같아서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기로 했다.

예슬 로고 모양은 옴 기호(Ω)를 닮았는데, 저항이란 뜻이다.

세현 우리끼리 “폐쇄회로에 균열을 낼 거야!”라고 자주 말한다.

근하 말만 급진적이다(웃음). (인터뷰 윤희지, 박이현/ 사진 오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