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상상에 적합한 곳인가?

2010년대의 풍경 재론

▲사랑과 전쟁 / Kurt Kren 38/79 Sentimental Punk Ⓒ 케미티비 / Mezsondra

종합적 직관(1)

예술 작품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진단의의 능력에 비견될 수 있는 어떤 정신적 능력 – ‘종합적 직관이라는 못 미더운 용어 말고는 딱히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 없는 – 이 필요한데, 이는 박식한 학자보다 재능 있는 비전문가에게서 더 잘 발달할 수도 있는 능력이다”. 파노프스키의 말이다. 그런데 파노프스키는 이렇게 말하고 그냥 넘어간다. ​결국 단언으로만 맴돈다. “박식한 학자”와 “재능 있는 비전문가”의 순간을 경험하면, 단언은 이해된 것이다. 내가 단언을 이해했다는 걸 제시할 수 있는 방식은 “2010년대의 풍경(6) 찰리와 제니”에 담긴다.

사적인 문제이고 그렇기에 커뮤니케이션은 어렵지만 이야기와 퍼포먼스는 가능하다. 가령 대중음악 저널 『더콰이어터스』(The Quietus)와의 인터뷰에서 제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LP 열세 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찰리처럼 제니의 이야기에서 팝은 중요한 주제다. 그런데 찰리에게는 떠오르지 않는 주제도 있다. 저자로서의 가수 그리고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나이에 접한 것들.

나로서도 하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겠다. 우리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또 유일하게 행복했던 경험이다. 한 교수님이 할리우드 영화의 이데올로기 어쩌구를 설명하기 위해 <불명예>(Dishonored, 1931)라는 영화를 묘사한 적 있다. 디트리히가 유약하게 재현되며 영화 내내 운다고. 이에 나는 <불명예>에서 디트리히가 한 번도 울지 않는다고, 죽을 때도 울지 않는다고 반박하고는 승리감에 도취할 수 있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접한 것들

<불명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도 나는 지난 몇 년간 <불명예>를 한 번도 안 봤다. <불명예>, <룰루랄라 지옥 간다>(Merrily We Go to Hell, 1932), <그녀를 천국에 둬라>(Leave Her to Heaven, 1945), 테렌스 데이비스, 드니스 포터, 앨런 클락, 등등, 이들에 대한 과거의 경험은 자산 같은 것이 아니라 가능한 미래의 경험과 경험의 기술적(descriptive) 가능성을 아웃소싱한 것에 가깝다. 그 이유는 “2010년대의 풍경(5) 단절의 파도”에서 비롯한다.

양극성 장애 환자는 정상인보다 과일반화된 자서전적 기억을 보인다고 한다. 자서전적 기억이란 일상적인 개인 경험에 대한 기억을 뜻한다. 자서전적 기억의 과일반화란 개인이 기억을 회상할 때 구체적인 삽화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단계인 범주 기억에서 탐색을 멈춘 뒤 다른 범주의 탐색을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양극성 장애 환자인 나는 나처럼 양극성 장애 환자인 친구와 함께 논문에서 제시되는 자서전적 기억 과제를 수행해보기도 했다. 나와 나의 친구의 결과 그리고 논문에 제시된 통계 자료가 전부 일치했다. 약간 웃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서 열거한 것들을 본 기억은 나지만 그래서 그것들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들이 가졌던 의미가 떠오르지 않아, 그것들 없이도 만족하며 살 수 있다. 다시 볼 이유가 없다. 다만 누가 할리우드 영화사상 가장 무서운 클로즈업이 뭐냐는 식으로 물을 때 <룰루랄라 지옥 간다>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답하는 정도가, 소소한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은 죄책감을 동반한다. <룰루랄라 지옥 간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실비아 시드니가 울었다는 것은 기억나지만, 실비아 시드니가 정확히 왜 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또 <불명예>에서 디트리히가 울지 않았다는 것은 기억나지만, 디트리히가 웃은 적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유튜브 웜홀 재론

과거의 나에게서 비롯하는 죄책감을 해소하는 방안으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령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 ‘무비’(MUBI)에 게시된 ‘트로마’(TROMA)라는 전설적인 독립 제작/배급사의 영화 여섯 편, 언젠가 이미 본 이 영화들을 다시 보면서 과거의 나를 모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평생 안 보면서 돈만 내는 MUBI 구독을 드디어 끊고 유튜브 자동재생이 매개하는 세상으로 나를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조울증 환자의 순환을 관념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유튜브 자동재생이 매개하는 세상을 프랭크 오션의 명명에 따라 “유튜브 웜홀”이라고 부르고, 이 “웜홀”을 부정성의 일종으로 가정한 적 있다. “2010년대의 풍경(2) 유튜브 웜홀”이라는 글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가운데 갑자기 울컥하는 영상, 예컨대 “Young Marble Giants- Wurlitzer Jukebox”를 접하게 된다. 2013년에 업로드된 영상으로, 이 영상을 처음 본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상 안팎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갑자기 너무 완벽하게 다가온다. “나는 그에게 질문한다 / 그는 듣지 않는다 / 월리처 주크 박스”. 그러고는 다시 모든 과정이 반복된다. 그 사이에 나는 유튜브에 업로드된 <사랑과 전쟁>이나 <연애의 참견>의 에피소드를 전부 보았고, 유튜브는 이 영상들을 다시 추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케미티비’에서 업로드한 <사랑과 전쟁> 첫 번째 시즌을 보니, 이런 가정은 잘못된 것이었다. <사랑과 전쟁>의 첫 번째 시즌이 나머지 두 시즌에 비해 지루했기 때문이다. 쓰레기 영상과 내가 즐기는 영상은 구분될 수 있다. “웜홀”에 빠진 내가 아무거나 붙잡으려는 상황은 성립한 적 없다. 이처럼 <사랑과 전쟁>의 첫 번째 시즌과 나머지 두 시즌을 구분 짓는 차이, 이런 차이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웜홀”이 폐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웜홀”이 핵심이다. “웜홀”은 이제 공간적, 물질적 개념은 아니지만 시간적인 환경이다. <사랑과 전쟁>(1999)과 가령 <38/79: 감성적 펑크>(1979)를 “사랑과 전쟁”([…])과 “Kurt Kren 38/79 Sentimental Punk”([…])로 변환하는 것이 “웜홀”이다.

종합적 직관(2)

즉각성을 강조하며 장난삼아 “([…])”에 욕토초(yoctosecond)를 기입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장난에 그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지각할 수 없는 단위, 예컨대 욕토초로 기술된 “([…])”이란, 아마추어리즘과 강경한 형식주의만을 허락하고, 아마추어리즘과 강경한 형식주의에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문학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이유는 “포장용영화[?](1985)”에서 비롯한다.

가령, 나는 ‘썬샷’이라는 유튜버의 14시간짜리 ‘동물의 숲’ 영상을 보면서 앤 아버 영화제 측에서 임철민 감독의 <야광>(2018)을 공개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야광>을 봤다. 그런데 두 영상이 실상 동일하게 기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야광>을 기술할 적에 사용되는 영화학의 개념 전부가 썬샷의 동물의 숲 영상에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세계가 변한다”라는 식의 말을 몇 분간 반복하는 장면과, 원하는 지형을 얻기 위해 게임을 몇 시간 동안 껐다 켜는 영상을 비교하면, 어느 한쪽에 더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기도 하다.

이는 <야광>에 대한 미적 평가가 아니다. 단지 장난삼아 “([…])”에 욕토초를 기입하는 경우, 가능한 모든 즉각성을 온전히 수용하는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상인가? 현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장난일 수 있다. 다만 이 장난은 앞서 내가 상실했다고 말한 경험의 기술적 가능성의 계기다. 멍청한 장난이 기술적 가능성의 계기가 되어, 나는, “진단의의 능력에 비견될 수 있는 어떤 정신적 능력 (…) 비전문가에게서 더 잘 발달할 수도 있는 능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집에 가서, 상상하도록 노력하세요!”

허애리 기자

evermore99@karts.ac.kr

참고기사

“2010년대의 풍경(2) 유튜브 웜홀”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2019.10.14.

“2010년대의 풍경(5) 단절의 파도”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2019.11.25.

“2010년대의 풍경(6) 찰리와 제니”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2019.12.16.

“포장용영화[?](1985)”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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