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고 정성철 소방려의 자녀 정비담 씨
소방공무원 국가직 촉구 1인시위

 

지난 9월 27일 한 청년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복을 입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청년은 지난 7월 광주에서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 정성철 소방령의 아들 정비담(연극원 연극학과 예술경영 11) 씨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정비담씨를 5일에 만났다. 정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SNS를 통해서 여러 소방공무원분들에게서 힘을 얻게 되었다. 그분들이 아버지처럼 느껴졌고 남은 아버지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시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자신의 시위 동기를 밝혔다.

 

강원도 소방본부에서 근무하던 정 씨의 아버지는 사고 당시 진도군 팽목항에서 세월호 수색 지원 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순직했다. 정 씨는 “지방직이라면 그 지역에서만 업무를 해야 하는데, 통솔 체계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소방공무원들의 구조활동이 광범위해진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방공무원은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이원화 되어있는 기형적 구조이기 때문에 지휘체계가 명료하지 않다. 긴급하게 출동해야 할 소방 헬기들이 지자체장들의 전용 헬기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휘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 씨는 “지자체 예산이 다르다 보니 구조 서비스에도 차별이 생긴다. 평소 아버지는 소방장갑도 아웃도어 매장에서 직접 사셨다”고 말하며 지방 재정자립도의 차이에서 나오는 장비 지원 문제도 지적했다. 실제 소방방재청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착용하는 필수 장비 대다수가 노후률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전라북도의 경우 가장 필수적인 장비라고 할 수 있는 공기호흡기 1,865개 가운데 1,117개가 내구연한이 지난 것으로 드러났다.

 

근무 환경 문제도 다르지 않았다. 정 씨는 “아버지의 관물대를 본 적이 있었다. 라면 두 봉지가 나오더라. 평소 교대 환경이 좋지 않아서 식사도 제대로 하기 힘드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소방관 1명이 담당하는 시민 수치는 약 1400명이다. 이는 일본의 2배, 프랑스와 미국에 비해 7배 정도 많은 숫자로 소방공무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보여준다.

 

하지만 안전행정부는 이원화되어 있는 현재의 지휘체계가 구조활동에 더 유리하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여전히 미루고 있다. 정 씨는 이에 대해 “안전행정부의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세월호 사건도 소방이나 경찰 쪽에서 단독으로 지휘를 맡았으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고 동의하지 않았다. 안전행정부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예산 문제이다. 하지만 국가직으로 일원화되더라도 실제로 추가되는 예산은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더 많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일원화 될 경우 자신들의 권력이 분산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와 소방헬기 추락사건 발생 후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일원화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져가는 추세이다. 정 씨는 “혼자 시위를 할 때 아무 말없이 따듯하게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음료수나 떡을 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소방공무원들은 아직 시도지사에 소속되어 있다보니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시위에 나가기 힘들다고 들었다. 그들을 대신에서 나간 것에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며 1인 시위에 나갔던 소감을 밝혔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진 전환에 대한 언론의 관심 역시 높아졌다. 정 씨 역시 1인 시위 이후 여러 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이에 대해 정 씨는 “10군데 정도의 언론에서 인터뷰를 한 것 같다. 하지만 더는 언론에 나가고 싶지는 않다. 계속 노출될 경우에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나서는 정 씨에게 얼굴이 노출되는 것이 꺼리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기보다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가 말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나의 모습을 최대한 가리기 위해서 마스크를 쓰고 아버지의 정복을 입었다”고 말했다. 정 씨의 행동을 비하하는 일부 네티즌의 글들도 있었다. 정 씨는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글이 올라와 있는 게시판에 신상 공개를 하고 직접 나를 찾아와서 말하라고 했지만 정작 그 글에는 댓글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인 정 씨는 “올해 예술경영전공으로 전과를 했다. 학업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케줄이 없는 날에만 1인 시위에 나갈 생각이다. 시위를 나갈 때는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평소에는 그냥 정비담이라고 생각하고 싶다”고 말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