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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형태에 대한 어떤 이야기에서부터

2020년 2월 23일, BBC 뉴스에 한 부고 소식이 업로드되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로켓을 만들어 직접 우주로 비행하고자 했던 마이크 휴즈(Mike Hughes, 64세)가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왜 카메라나 고프로를 하늘에 띄우지 않고 직접 우주에 가고자 하였던 것일까? 휴즈와 같이 평평한 지구설을 믿는 사람들은 지평선이 평평하게 보인다는 것을 근거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곤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독자는 지구 평평설을 믿지 않을 것이다(나 역시도 그러하다. 오해를 피하고자 덧붙이자면 지구 평평설은 앞으로 이야기할 디지털 이미지에 접근하기 위한 구멍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 평평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지평선이 수평하기 때문에 지구는 구형이 아니라 원반의 형태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땅에서 바라보는 지평선 이외에도 상공에서 바라보는 지평선이 평평하다고 증명하여 지구는 평평하다는 논증을 성공시키고자 한다. 그로 인해 지구 평평설과 지구 구형론의 싸움에서 상공에서 보이는 지구 이미지는 증거물로 여겨진다. 지구 평평설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과학과 기술에 대한 불신을 내색하는데 다음과 같은 의견들을 접할 수 있다. 휴즈는 생전에 “기술 분야의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세계는 문제적이다. (I have a problem with the world being run by people in tech.)”라는 말을 영상으로 남겼고 평평설을 지지하는 이들 중 누군가는 고프로와 같은 디바이스를 신뢰하지 못한다. 관련 영상의 댓글에는 고프로의 광각렌즈에 대한 광학적 접근에 따른 댓글뿐만 아니라 고프로가 나사에 의해 지배받을 수 있다는 식의 허구적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혹자는 ‘지구가 둥글다는 거짓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프로에는 원반 형태를 원형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이렇듯 지평선을 보는 관찰자의 위치를 바꾸고자 우주로 날아가려 했던 휴즈 그리고 렌즈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신뢰하지 못하는 누군가는, 눈을 통해 바라보는 광학을 좇으면서도 기계적인 방식으로 얻어지는 이미지는 신뢰하지 못하며 프로그래밍이라는 컴퓨터적인 영역도 신뢰할 수 없는 듯 보인다.

그런데 지평선이란 기하광학의 산물로, 오늘날 과학적 근거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종류의 이미지이다. 지평선은 기하학적 원근법에 따라 설정되는 선으로 보는 주체라는 광학적 가상에 의해 설계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지평선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키틀러에 따르면 이전에 우주론에 가까웠던 광학이 “18세기에는 투시도법, 카메라 옵스큐라, 매직 랜턴을 통해 생산된 데카르트적 주체가 부상하면서, 광학 역시 그런 주체에 관한 학문으로 변모했다. 이제 광학은 광선이 어떻게 각종 반사와 굴절을 거쳐 세계로부터 눈에 이르는지 질문하는 대신에, 눈으로 ‘감각’되는 데이터가 어떻게 재구성되어 광학적으로 주어진 세계를 이루는가 하는 새로운 질문을 제기했다.” 세계에 대한 기하광학적 접근은, 현실이 공식의 도움을 받아 수학적으로 또는 원근법의 도움을 받아 시각적으로 정확하게 재현될 수 있다는 이념을 전제로 삼는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재현의 이념으로서의 광학은 이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18세기의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매체는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보는 주체”라는 관념과 함께, 당대의 지식은 주어진 세계라는 것에 대하여 인간의 눈과 광학을 통한 재현의 문제와 질문으로 뻗어 나갔던 것이지만, 현재 시각적 이미지가 생성되는 방식은 그때와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대상은 인간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지는 컴퓨터, 알고리즘, AI 등등 인간 아닌 여러 대상의 행위를 통해 출현한다. 컴퓨터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자동화된 메커니즘을 통해 독자적인 이미지를 세상에 내놓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지구 평평설과 같이 광학을 말미암아 세계에 대한 실증적 고증을 시도하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일 테다. 그렇다면 왜 현대의 시점에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음모론적인 주장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왜 나사(NASA)와 미국의 우주 수송회사, 스페이스 엑스(SpaceX)가 제공하는 이미지들을 불신하고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애쓰는 것일까?

“원반 형태를 원형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다”는 허구적 주장에 주목해보자. 물론 이 가설은 프로그래밍에 대한 어떤 구체적 증거도 없이 제기된 주장이다. 그렇지만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은 물질적 표면으로 가시화되어 있기보단 수면 아래에 자리한 구조와도 같단 점에서 그 주장은 오늘날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방식과 관련성이 없지 않은 듯하다.

이미지는 가상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을 보여주는 사이트가 이미지를 만들 때 사용하는 생성적 적대신경망, 즉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이라는 기술은 지폐위조범과 같은 생성망이 가짜 데이터를 만들고 경찰과도 같은 판별망이 가짜 데이터와 원본 데이터를 비교하며 더욱 정교하게 가짜를 판별해내는 방법을 개발한다. 경찰이 가짜 지폐를 찾아낼 수록 지폐위조범은 가짜 지폐를 더욱 진짜같이 만들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가짜를 만드는 생성망과 판독하는 판별망이 서로 적대적으로 학습해나감으로써 진짜같은 가짜를 생성해내는 능력을 키워나간다. 사이트에 접속하였을 때 간혹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신경망에 의해 생성된 사람의 초상은 인간의 눈으로 무엇이 가짜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이다. 한편, 어떤 결함이 들춰지기 전까지 카메라와 망원경으로 얻은 영상들은 의심할 나위 없는 데이터로 수용되기도 한다. 평평설이 진짜에 대해 가짜를 의심하는 한 사례라면 앞서 짧게 말한 경우들은 가짜가 진짜가 되려는(/되고자 하는) 사례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의 다층적인 층위가 보여주듯이 진짜와 가짜, 진실과 허구는 이미지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여타의 대상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테크놀로지와 이미지를 둘러싼 불신과 음모론은, 이미지가 과거에 광학이 보증해주었던 ‘시각적 현실을 옮겨오는 지표 자체’로 인식되었던 것과는 다른 국면에 접어 들었기에 파생된 현상의 작은 조각인 듯하다. 

오늘날 디지털 이미지와 디바이스, 테크놀로지의 서로 얽혀 있는 관계성은 이미지의 진실과 허구 사이의 관계와 작동이 관계망의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진실과 허구는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진 심급도 아니고 이미지는 객관적 세계 같은 것을 증보하는 단일한 사물이 아니다. 현실에서 다른 대상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허구의 출현은, 진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단일한 것으로 여겨지던 무언가에 대해 또 다른 접근을 유도하기도 하는 등 이미지에 얽혀 있는 허구와 진실은 (아주 미시적일지언정) 어떤 작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질서와 네트워크를 들여다 보아야 할 때일 지도 모른다.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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