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기록

 ‘여성영상집단 움’의 <이반검열> 연작을 소개하며

2001년 결성된 ‘여성영상집단 움'(이하 움)은 여성주의 다큐멘터리 제작과 미디어 교육에 일조해온 단체이다. 영화와 미디어 교육을 통해 페미니즘을 실천한다는 그들은, 아직 온전한 사회적 성원권을 부여받지 못한 레즈비언들의 삶들 또한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는 데 주력해왔다. 가령 2017년 개봉작 <불온한 당신>에서 움은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와 같은 외래어가 유입되기 이전의 시기를 살아가던 성소수자 ‘이묵’의 삶을 담아낸 바 있다. 

다만 그의 개별적 삶을 충실하게 담아냈다는 점만이 <불온한 당신>의 성과는 아니다. 어느 시점부터 <불온한 당신>은 광장에 모여 소수자들에 대한 폭력을 준동하던 극우 단체의 시위 장면, 일본에서 살아가는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삶을 담아낸 화면들과 이묵의 삶을 교차시키며 소수자들이 주변화된 사회의 다기한 양상을 망라한다. 하나의 시대 안에 공존하는 다양한 이미지들, 그리고 다수의 역사가 누락해왔던 과거의 존재들을 선명한 인과관계 없이 몽타주하며, 움은 쉽사리 표준화될 수 없는 동시대의 젠더적 조건에 대한 사유를 촉발하는 것이다.

(사진)

▲ <Out :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2007) Ⓒ여성영상집단 움

지금 시점에서 떠올리게 되는 움의 또 다른 작품은 약 15년 전 그들이 제작한 <이반검열>(2005)과 <Out :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2007) 다큐멘터리 연작이다. 움의 작업이 언제나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의 이미지들을 재배치하며 우리의 시대를 사유하도록 해왔다면, <이반 검열> 연작 또한 15년이 지난 오늘날의 사회적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해봤을 때 간과할 수 없는 화두를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레즈비언 중고등학생들에게 학내 억압이 가해지던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이 연작은 피사체의 모습을 일방적으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의 통상적 화술을 거부한다. 대신 초이, 천재, 꼬마라는 가명의 레즈비언 학생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학내의 폭력적 상황을 구술하거나, 본인들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각별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두 번째 작품인 <Out :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에 이르면 그렇게 찍힌 영상들을 그들이 감독인 ‘이영’과 함께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연작은 여전히 1인칭 시점의 셀프 카메라라는 주된 형식을 채용한다. 그럼에도 관객은 인물들이 가면을 쓴 채 등장하는 몇몇 장면들을 제외하면 러닝타임 내내 세 주인공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다. 스크린에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은 당시의 강압적이었던 상황에서 신원을 노출하는 위험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개의 경우, 관객에게는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이 허락된다. 동시에 관객은 화자의 주관과는 무관하게 찍힌 사물과 풍경의 무정하기 그지없는 표면을 바라본다.

1인 미디어가 보편화한 오늘, 1인칭 시점을 가용한 영상들을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위와 같은 점이 <이반검열> 연작의 각별함을 구성한다. 브이로그와 SNS를 통해 파급되는 1인칭 영상은 대개 눈에 비치는 세계 자체를 주관적 관점에 종속시키는 바를 지향한다. 시청자는 수 많은 사물들, 풍경과 대면하게 되지만 그들은 촬영자의 주관적 감정에 덧입혀진 수동적 대상들로 호명되는 것이다. 반면, <이반검열> 연작에서 관객은 화자의 목소리와 공존하면서도 그와 거의 무관하게 병치된 세계의 비정한 사물성과 대면하게 된다. 주체가 표상으로서 입장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 서늘한 풍경을 통해, <이반검열> 연작은 스크린에 입회할 수 없었던 인물들의 존재론적 양식을 표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 점만으로 이 연작을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수많은 논점을 함축하고 있을 주체와 사물 간의 이 화해 불가능한 간극이야말로 <이반검열> 연작을 한국 퀴어영화사, 그리고 21세기 디지털 시네마의 기록적인 사건으로 거론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연작의 두 번째 작품인 <Out :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가 제작된 2007년은 국내에서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첫 번째로 발의된 시기임과 동시에, 현재까지도 계류 상태에 놓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기나긴 지연을 알리는 영년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표면에 입장할 수 없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나는 요동의 낌새를 보이는 국면의 동향을(주1) 초조하게 바라본다.

김신 기자

sans_soleil@karts.ac.kr


주1
고희진, 「최영애 “차별금지법, 9월 국회 상정·연내 제정 목표”」, 『경향신문』, 2020.03.09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