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20년 1월 4일

2010년대의 출판계 키워드

나를 비롯해, 나와 깊은 친밀감을 나누는 사람들은 대부분 20대다. 우리에게 2010년대란 미숙하고 단란했던 사춘기를 보낸 시기다. 나는 경북 칠곡군 북삼읍에서 2010년대를 보냈다. 그런 내가 어려서부터 동경하던 커뮤니티가 있다. 문인들의 세계, 출판계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당신께서 알고 지내는 시인은 술자리에서 술 한잔마다 시조 한 수를 읊는다고. 나는 그 고상하고 활기찬 세상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내가 존경하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 강연을 다니고 책을 샀다. 그리고 2010년대의 축복인 유튜브와 SNS 덕분에 그 작가들의 작고 큰 공적인 행사를 비롯해 사소한 일상까지 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본 2010년대의 출판계의 방점은 이렇다.


“페미니즘” “구독 서비스” “장르 문학”


어떤 서점 브랜드든,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매대의 상위권에는 여성학 책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페미니즘 서적은 주로 2015년 이후에 판매량이 급증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며,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게 커졌다. 2015년, 내가 고등학생일 때다. 매일 닭장같은 자습실에서 문제집에 파묻혀 있던 때다. 그때 나에게 페미니즘은 미국 대학의 한 수강과목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던 중 2017년,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독립서점에 갔다. 어느 독립서점이든 꼭 한 구석엔 페미니즘 책들이 빼곡히 차있었고, 강렬한 제목에 이끌려 펼쳐본 책들에는 통쾌하고 슬픈 문장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속이 메슥거렸던 일들의 이유, 구조적이고 맥락적인 그 이유를 명확하고 정교한 언어로 설명해주는 책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신기하고 조금 소름끼치는 기능이 있다. 내가 네이버에 여러 번 검색하거나 카톡에서 얘기한 것들을 광고나 돋보기(팔로우하지 않은 여러 계정을 볼 수 있는 피드/내 관심을 반영함)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여러 페미니스트들의 계정을 팔로우할 수 있었다. 그러다 탄탄한 몸과 아주 짧은 머리에 노브라인 어떤 여자의 사진이 돋보기에 떴다. 그리고 우연히 그 여자의 수필을 구독해서 읽고 있다는 후기도 보게 되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이슬아’다. 많은 언론에서 ‘출판계의 문익점’이자 ‘연재노동자’라고 자주 소개되는. 이슬아 작가는 그녀의 만화가 친구인 ‘잇선’의 아이디어에서 ‘일간 이슬아’라는 프로젝트를 착안했다. ‘일간 이슬아’는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수필을 보내는 구독 서비스로, 출판계의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그녀의 도전은 젊은 작가의 패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신선한 수단과 훌륭한 컨텐츠를 모두 갖춘 그녀는 출판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성공한다는 것, 그러니까 등단을 하거나 문학상을 받는 것 외에도 독자들의 사랑과 공공연한 인정을 받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최근, 2019년도의 ‘일간 이슬아’를 엮은 책들이 세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 중 인터뷰집인 ‘깨끗한 존경’을 읽다 보면 매일 마음을 세수하는 기분이 든다. 사람을 더 사랑하고 존경해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장르 문학은 몇 주전에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어 좀 조심스럽다. 장르 문학이란 스릴러,호러, SF 등의 장르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문학으로 흔히 우리가 말하는 순수문학이나 본격문학과 구별된다. 한국 출판계에 척박했던 ‘장르 문학’이 최근 들어 풍요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일 밤 내가 듣는 팟캐스트에서 들었다. Yes24에서 만드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이다. (특히 책읽아웃의 서브코너 ‘삼천포 책방’을 듣다보면 명절에 이모들이 도란도란 얘기하는 걸 엿들으면서 스르르 잠드는 기분이 들어서, 적적한 밤을 보내는 학우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읽아웃의 코너 ‘김하나의 측면돌파’에 출연한 정세랑 작가의 인터뷰를 듣다가 알게 되었다. 정세랑 작가는 <피프티 피플>, <옥상에서 만나요>, <지구에서 한아뿐> 을 쓴 탁월한 SF 소설가다. 부끄럽게도 아직 그녀의 저작을 다 읽어보진 않았고, 최근에 김초엽 작가의 글을 읽었다. ‘한국과학문학상’으로 등단한 김초엽 작가는 화학을 전공했다. 벌써부터 매력적이다. 화학과를 나온 소설가라니. 해당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소설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SF 소설을 처음으로 읽은 나같은 사람도 단번에 좋아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모든 SF 소설이 <스타워즈>같지 않아도 된다는 자못 당연한 사실을, <관내분실>의 마지막 쪽을 읽다 눈물을 글썽이며 알게 되었다.


책을 사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 않는 사람들, 나같은 사람들. 나는 책을 인테리어용으로만 쓸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않다. 다만 내 습관적인 게으름을 잊을 만큼의 기대가, 서점에 갈 때마다 생기는 것이다. 이 한 권을 사면, 내가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 사실 책을 소품으로만 구매한다 해도 크게 비난할 수는 없다. 만 원대의 소품이 소유자의 지성과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치를 여실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가은 기자

gaeun0826@kart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