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의 풍경(6) 찰리와 제니


지난 글(참고 기사 제318호 “2010년대의 풍경(5) 단절의 파도”)에서 허애리 기자는 답답하다고 썼다. 풍경이 보이지 않으며 광경만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광경만 말하는데 이런 모든 과정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풍경과 광경이 어떻게 다른 건지 모르겠다. 사전에 따르면 광경과 다르게 풍경이란 자연의 모습에 중점을 두는 명사다. 동시에 풍경은 자연의 경치를 그리는 그림을 뜻한다. 반면 광경은 벌어진 사건의 형편과 모양에 그친다. 그런데도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좋은 구분이 아니다. 


이에 찰리(Charli XCX)가 도움을 줄 것이다. 1992년생 찰리는 작년 봄에 ‘1999’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다. ‘1999’에서 찰리는 그냥 1999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1999년에는 더 단순했다는 이유다. 맞는 말이다. 나를 예로 들면 나는 1999년 여름에 태어났고 1999년 봄에는 내가 없었다. 그리고 그편이 더 단순하다. 더 나은 것은 물론이다. 올해 국역된 데이비드 베너타 교수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에는 관련된 논증이 있다. 


다만 원래 물음과 무관하기 때문에 넘어가겠다. 내가 묻는 것은 풍경과 광경이라는 구분이다. 대중음악 저널 「타이니믹스테잎스」(tinymixtapes)의 필자 팻 빈(PAT BEANE)은 ‘1999’가 네 번째 트랙으로 재배치된 앨범 <찰리>(Charli, 2019)에서 유비(類比)를 찾기도 한다. 찰리가 [찰리]의 첫 트랙과 네 번째 트랙을 각각 이렇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 돌아보지 않아”(I never look back, ‘Next Level Charli’)… “나는 그냥 돌아가고 싶어”(I just wanna go back, ‘1999’) 


그런데 여기서 찰리가 절대 돌아보지 않는 찰리와 그냥 돌아가고 싶은 찰리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찰리는 절대 돌아보지 않겠다고 말하는 동시에 그냥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든 90년대 팝의 특정적인 요소에 취해버리지 않은 채로 90년대 팝의 골자를 취하고 싶을 수 있다는 말이다. 대신 그러고 싶기에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있다면 그 노래에는 90년대 팝의 특정 인물들이 의도한 바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보이고 들리는 것은 망각과 망각된 부분을 채우는 몽상이다. 몽상하면서 찰리는 “미래, 미래, 미래”(future, future, future, ‘2099 (Feat. Troye Sivan’)를 노래할 체력을 다진다.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그냥 돌아가고 싶다’의 한 버전이 찰리인 셈이다. 찰리는 폐허를 보면서 체력을 다진다. 허 기자라면 찰리가 바라보는 폐허를 풍경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다른 버전도 있다. <찰리>가 공개된 8월 13일에 자신의 새 앨범 <사랑의 실천>(The Practice of Love)을 공개한 제니(Jenny Hval)를 예로 들겠다.(주1) 제니는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그냥 돌아가고 싶다’에서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와 ‘그냥 돌아가고 싶다’의 순서를 바꾼다. 이런 식이다. ‘제니는 그냥 돌아가고 싶다-그런데 절대 돌아보지는 않는다.’ 


여기서 찰리와 다르게 제니에게는 왜 그런(데라는 접속 부사가 필요한) 것인지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제니는 답을 할 수 없다. 적어도 말로는 할 수 없다. 사적인 문제이고 그렇기에 커뮤니케이션은 어렵지만 이야기와 퍼포먼스는 가능하다. 가령 대중음악 저널 「더콰이어터스」(The Quietus)와의 인터뷰에서 제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LP 열세 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찰리처럼 제니의 이야기에서 팝은 중요한 주제다. 그런데 찰리에게는 떠오른 적 없는 주제도 있다. 저자로서의 가수 그리고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나이에 접한 것들.


4년 전 인터뷰다. 혼란에 사로잡힌 의식이 거기 있었다. 제니는 유머의 오랜 전통인 조롱을 던지면서 거기 있었다. 제니의 가장 유명한 노래 가운데 하나인 ‘Kingsize’(2015)의 질문을 예로 들면 “부드러운 자지 록(soft dick rock)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2010년대의 막바지에 공개된 <사랑의 실천>에는 더 이상 제니 특유의 유머 감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최미리 기자가 썼던 것(참고 기사 제 317호 “2010년대의 풍경(4) 코미디는 가능한가?”)처럼 지치면 농담을 회의하기 마련이다. 아니면 농담 때문에 지치거나.


그렇다면 “나는 그냥 사고/우연이었다”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 제니는 선공개된 <사랑의 실천> 수록곡 ‘Accident’에서 그렇게 말한다. 제니가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 ‘Accident’ 뮤직비디오에는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지아 앵거’의 어머니 ‘바바라 앵거’가 등장한다. 다음 문장이 화면에 떠오른다. “제니에게,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어.” 바바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편지가 작성되던 노트북 화면에 바바라의 퍼포먼스가 담긴다. 10여 년간 제작된 제니의 뮤직비디오들이 빠른 속도로 몽타주된다. “사랑을 담아, 지아가”라는 인사말이 떠오른다. 허 기자가 광경이라고 부른 것은 바바라의 인사말을 읽던 사람이 제니일 경우 그 사람의 눈에 비치는 것이다.


장유비 기자

evermore99@karts.ac.kr


주 (1)
“제니”를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제니는 노르웨이인이다. 그래서 노르웨이어식으로 읽으면 “예니”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에서는 “제니”라고 하든 “제니 흐발”이라고 말하든 신경 안 쓰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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