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9년 11월 28일

잊혀져왔던 악기, 하프시코드를 아시나요?

하프시코드, 그 역사와 방향성


피아노를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이면 한 번쯤 이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테크닉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데 피아노 전공 말고 하프시코드나 오르간으로 전공을 바꾸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니?” 오르간은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자주 접했을 법하고,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라는 곡으로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악기이다. 그와 달리 피아노와 비슷한 외관, 그러나 그와는 달리 건반의 흑백이 뒤바뀐, 페달이 없고 음색의 측면에서도 차이가 확연하게 나는 하프시코드라는 악기는 듣는이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하프시코드, 그게 뭔데?

영어로 하프시코드(harpsichord), 독일어로 쳄발로(cembalo), 불어로 클라브생(clavecin)이라는 여러 명칭을 가진 이 악기는 이름의 개수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해머를 이용해 현을 두드려 소리 내는 타현악기인 피아노와 달리,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어서 소리 내는 발현악기이다. 이는 14세기경 이탈리아 또는 플랑드르 지역에서 고안된 악기로,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이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독주 및 합주 악기였다.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하프시코드는 피아노보다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에 비해 피아노는 공방에서 수공업으로 생산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공장에서의 기계 작업 공정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또한 하프시코드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유지비용이 문제였고,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피아노의 등장과 함께 하프시코드는 18세기부터 점점 그 입지가 좁아졌다. 19세기에 하프시코드는 박물관에 진열된 고악기로서 잔존하였고, 피아니스트들이 기획한 고음악 연주회에서 산발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본다면 엄밀한 의미의 멸종은 아니지만, 하프시코드를 위한 곡이 더는 작곡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멸종한 것이었다.


-하프시코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경로는?

하프시코드의 부활은 19세기 후반 음악학의 역사주의적 경향과 맥을 같이 하였다. 고음악의 낭만주의적인 해석에 대한 반감과 함께 편집자의 주관성을 배제한 원전 악보들이 편찬되었고 고음악 레퍼토리가 늘어났으며 악보 해석법과 연주 실제의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고음악을 고악기로 연주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학자들과 악기 제작자들은 박물관에 소장된 고악기들의 구조와 재료를 보다 과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역사적인 복원을 추진하였고, 이 역사적 악기들은 1970년대 유럽과 미국의 라디오 방송과 음반 시장을 발판 삼은 고음악 운동의 붐을 타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며 오늘에 이르렀다. 한편 고음악 운동의 붐과 함께 부활한 하프시코드의 위상은 그것이 역사적 정통성과 별개로 음색의 참신성에 있어서 작곡가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로써도 확인된다. 일차적으로 예전의 작품들, 특히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을 연주하는 악기로 간주하였으나 곧 새로운 음원으로서 현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악기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하프시코드를 위해 150여 곡이 작곡되었는데, 하프시코드는 20세기 작곡가들의 독창성을 발현하는 매개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앞으로의 방향성?

이러한 작곡가들의 최근 경향을 따라, 지난 10월 6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우리학교 이병무 교수(음악원 작곡과)의 하프시코드 창작곡(“Le Mélange opaque for harpsichord and live-electronics”)이 한지연 교수의 독주회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하프시코드의 소리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아우라의 견고함을 깨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리를 음향 그 자체로 받아들여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하프시코드의 특징적인 소리와 풍부한 배음에서 착안하여 현대적인 작곡 방법과 첨단 음향 기술과의 접목으로 새로운 음악적 시너지가 발생하도록 의도해 작곡한 곡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연주하는 작품이 과거의 것인 이상, 항상 자신이 놓여있는 현재와 작품의 탄생한 시기 사이에서 오는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긴 음악 역사에서 한 시대를 도려내 바로크로 레퍼토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닌, 역사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요구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더 나은 연주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과거의 취향을 이해하고 개발해나가며 현대사회에서의 음악을 향한 접근 방식을 재확인하는 것이 현시대 음악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김민정 기자

kimj2000@kart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