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2019년 11월 28일

2010년대의 풍경(5) 단절의 파도

지난 글(참고 기사 제317호 “2010년대의 풍경(3) ye 2018-2019”)에서는 칸예를 언급했다. 칸예를 너무 이르게 이야기한 감이 있다. 칸예가 그리는 풍경은 2010년대의 풍경에서 도망칠 때 나타나는 풍경이다. 아니면 2010년대의 풍경 같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방증이다. 칸예를 너무 이르게 이야기한 이유는 나도 칸예처럼 풍경을 떠올릴 수 없거나 풍경에서 도망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풍경은 아무튼 특정 시기나 특정 장소에 대한 풍경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 눈에 시기나 장소 같은 단위가 보이지 않고 기억나지 않는다. 


이유가 궁금해서 정신의학 논문을 찾아본 적 있다. 「양극성 장애 환자의 자서전적 기억」이라는 제목이었다. 양극성 장애 환자는 정상인보다 과일반화된 자서전적 기억을 보인다고 한다. 자서전적 기억이란 일상적인 개인 경험에 대한 기억을 뜻한다. 자서전적 기억의 과일반화란 개인이 기억을 회상할 때 구체적인 삽화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단계인 범주 기억에서 탐색을 멈춘 뒤 다른 범주의 탐색을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양극성 장애 환자인 나는 나처럼 양극성 장애 환자인 친구와 함께 논문에서 제시되는 자서전적 기억 과제를 수행해보기도 했다. 나와 나의 친구의 결과 그리고 논문에 제시된 통계 자료가 전부 일치했다. 약간 웃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칸예를 너무 이르게 이야기한 이유는 2010년대의 풍경 같은 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인지 회의하는 이야기를 해치우고 풍경에 관한 얘기를 두 번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제 뭔 얘기를 할 수 있을까. 2010년대의 풍경이든 그냥 풍경이든 풍경 대신 광경을 떠올릴 수는 있겠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가 떠오른다. 나는 2010년대에 개봉한 일련의 괴수 영화를 웬만하면 싫어하지 않는다. 나름의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가 떠오른 이유는 그런 미덕과 무관하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가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단절의 파도 때문이다. 그게 뭔가?

‘픽시즈'(pixies)라는 8~90년대 록 밴드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부터 말하겠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가 밀리 바비 브라운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픽시즈의 노래를 듣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라는 걸 알았을 때 반갑다는 느낌을 약간 받는 정도로만 마음이 있다. 나는 용산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를 봤다. 용산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 건 처음인데 괴수의 울음이 생각보다 시끄러웠다. 그런데도 잡음은 따로 있었다. 그 소리가 밀리 바비 브라운의 에어팟 너머로 새어 나오던 픽시즈의 노래 “단절의 파도”(Wave of Mutilation)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넷플릭스의 흥행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에서 ‘일레븐’을 연기한 배우다. 일레븐은 노려보거나 소리 지르면 괴물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웃긴 것은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 밀리 바비 브라운이 일레븐의 몸짓을 고스란히 모방한다는 것이다. 맥락이나 인과 없이 그냥 괴수 앞에서 소리 지르면서 손을 뻗는다. 물론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 말고는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는다. 별일인가 싶지만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의 다른 주연 배우 두 명과 이들이 연기하고 제시되는 방식을 떠올리면 정말 웃기다. 


한 명은 <컨저링> 시리즈에서 영매이자 초자연조사관으로 출연하는 배우 베라 파이가다. 파이가는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도 초자연조사관으로 나오며 <컨저링>에서 제시된 방식과 유사하게 하나의 매개인 스크린을 통해 제시된다. 다른 한 명은 <왕좌의 게임>에서 레니스터 가문의 아버지 역으로 등장한 배우 찰스 댄스다. 댄스는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도 현상적으로 레니스터와 겹치는 말버릇과 몸짓을 취한다. 


세 배우가 예시하는 드라마나 프랜차이즈는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 각각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제3의 이미지를 생산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풍경들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단절된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광경을 선사한다. 기억들은 단지 서로 단절된 것만도 아니다. 서로 단절된 기억들이 밀려올 뿐이면 퍽 근사한 광경일 것이다. 기시감을 향수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고 향수에서 비롯하는 새로운 서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억들은 각자의 구체적인 삽화 곧 고유의 문맥과도 단절되어 있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 이러한 기억을 무작정 파도에 몰아넣는 것 다시 말해 인과적인 회상을 강제하는 것은 VFX로 제작된 괴수들과 괴수들의 이야기다. 나머지는 파도에 휩쓸린 것들이다. 이 광경은 답답하다. 부정 감정에 대해 회상하고 말하라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막연하게 부정적인 경험을 선사한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은 떠오르는데 특정 시간과 장소가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한 것과 마찬가지로 답답하다. 


허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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