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학술·비평
2019년 11월 28일

버티고 늙다가 쏴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사라 코너와 <할로윈>(2018)의 로리 스트로드


지난 10월 30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가 개봉했다. 1984년도에 개봉하여 SF 액션 장르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터미네이터>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제작으로, 시리즈 주연 배우들인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사라 코너’가 참여하였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의도는 명확하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는 원작의 명대사인 “돌아오겠다(I’ll be back)”를 “돌아오지 않겠다(I won’t be back)”로 바꿔 선언하는 장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사실상 프랜차이즈의 전부인 간판 캐릭터를 죽이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그 형상을 인간 여성으로 제시한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를 감상한 많은 이들이 <할로윈>(2018)과의 유사성을 이야기한 바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할로윈” 시리즈를 비교해보자. <터미네이터>(1984)는 SF 액션 장르, <할로윈>(1978)은 슬래셔 호러 장르의 가장 대표적인 흥행작이 되며 여태까지 수많은 후속작을 배출해왔다. 둘 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는 살인 기계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이 있고, 할로윈 시리즈에는 가면을 쓴 싸이코 연쇄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가 있다. 이 둘을 묶어 괴물로 칭하겠다. 그리고 그에 쫓기며 목숨을 위협당하는 인간 여성이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는 ‘사라 코너’, 할로윈 시리즈에서는 ‘로리 스트로드’가 그 역할을 맡는다.


할로윈 시리즈와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2010년대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내린 결정은 이러하다. 우선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작품(할로윈 시리즈는 첫 번째 작품, 터미네이터는 첫 번째 작품과 두 번째 작품까지)을 제외한 나머지 후속작들(할로윈 2, 3, 4, 5 등과 터미네이터 3, 4, 5)을 폐기한다. 그러니까, ‘없었던 일’로 한다. 그렇기에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 2>에서, <할로윈>(2018)은 <할로윈>(1978)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1991년과 2019년, 1978년과 2018년간의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 된다면, 자연스레 그 시간은 아주 긴 공백으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그 오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남성-괴물들은 쉬고 있었다. (마이클 마이어스는 40년 동안 병원에 수감되어 있었고, T-800은 인간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숨어 살았다.) 여성-인간들은? 목숨을 위협당하고, 친구와 가족이 살해당한 이후 2010년대의 마지막이 도래할 때까지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할로윈>(2018)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 따르면 그들은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사회와 고립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와 <할로윈>(2018)에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시대적 상징으로 기능했던 두 괴물의 죽음, 그리고 이후에 남겨지는 인간 여성(들)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사라 코너의 아들을 죽인 것을 속죄하며 스스로 몸을 던지고, 마이클 마이어스는 로리 스트로드와 그녀의 딸에 의해 불타 죽는다. 이때 남성 괴물은 하강하(며 불에 타오르고)고, 인간 여성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상승하는 이미지로 제시된다. 이런 측면에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와 <할로윈>(2018)의 구조와 형식은 완전히 동일해보이기까지 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흔히 람보 시리즈 등과 함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 강인한 신체의 남성 표상을 필요로 했던 미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징후로서 읽히곤 했다. 이와 같은 70-80년대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가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괴물들을 폐기하기로 결정하고, 백발의 여성 노인들이 차세대를 대표하는 보다 젊은 여성을 수호하며 살아남는 형상을 제시하는 것은 시사적인 일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할로윈” 시리즈뿐만이 아니다. 과거의 남성 주연을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폐기하고 차세대 여성 주역을 내세우는 것은, 동시대 할리우드에 나타난 전반적인 흐름이다. 1977년도 개봉하여 엄청난 흥행과 함께 SF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스타워즈”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2015년부터 <깨어난 포스>라는 작품과 함께 새로운 시퀄 3부작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2017년도에 개봉한 <라스트 제다이>에서는 시리즈의 주역인 ‘루크 스카이워커’를 죽이고 그 주연 자리를 (누구의 딸도 아닌) ‘레이’라는 독립된 여성 인물로 계승시킨 바 있다. 이러한 양상의 죽음과 생존, 폐기와 계승은 2010년대 후반부터 하나의 거대한 경향으로서 가시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남성-괴물과 남성-영웅의 죽음은 분명한 변화를 지시한다. 내게는 스크린상에서 살아남는 여성이 보인다.


최미리 기자

horoyoi@kart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