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2019년 10월 17일

나만의 독서방법 찾기

다시 읽기와 깊이 읽기에 대하여


독서의 중요성은 누구나 강조하지만 꾸준히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3년 전부터 나는 매일 책을 읽어오고 있다. 독서 습관이 하루아침에 생기지는 않았다. 규칙적인 독서 습관을 들이기까지 거의 백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독서는 근육 운동과 비슷하게 기초 근육을 만들면 그 다음부터는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나만의 몇 가지 유용한 독서 방법을 습득하게 되었다. 독서 방법이란 반드시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에게 맞는 독서 방법을 찾는 것이 독서 습관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나의 경우는 다시 읽기, 빠르게 읽기, 깊이 읽기라는 세 가지 방법을 혼용하며 책을 읽는다.    


중·고등학교 때 유일한 문화생활은 영화 보기였다. 지정좌석제가 없던 그 시절, 영화 한 편을 두 세 번씩 연달아 보았다. 같은 영화를 지겨워서 어떻게 두세 번을 보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연속해서 몇 번을 봐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 이유는 처음 볼 때 줄거리에 몰입해 보다가 놓쳤던 장면을 볼 수 있고, 좋았던 대사를 다시 음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인상적이거나 좋았던 책들, 여운이 오래 남았던 책들은 다시 읽는다. 좋은 책들은 여러 번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느끼게 한다.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간격이 길수록 다시 읽는 즐거움도 커진다. 물론 짧아도 상관없지만 확실한 느낌을 얻으려면 일 년 이후가 더 좋았다. 시간 간격의 차이는 처음 책을 읽었던 나와 지금 책을 읽는 나가 달라졌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준다. 이전의 독서에서 내가 알고 있지 못했던 작품이나 작가들, 여러 지식들은 그 사이에 앎의 경계가 더 넓어져있음을 깨닫게 된다. 정신의 새 그물은 새로운 내용을 길어 올린다. 얼마 전부터 재독을 하게 되면 처음 읽고 썼던 후기를 읽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와  다르게 느낀 점을 찾아본다. 별반 달라지지 않은 책도 있고, 느낌이 확 달라진 책도 있다. 재독했을 때는 훨씬 더 구체적으로 후기를 남긴다. 두 번이나 읽었으니 다르게 느꼈던 지점에 대한 서술도 빼놓지 않는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첫 번째 읽었을 때보다 재독할 때가 더 좋았다. 기대가 크면 책이 가지고 있는 진가를 알아보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신간을 읽을 때는 빠르게 읽기와 깊이 읽기를 병행한다. 모든 책을 다 빠르게 읽는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읽는 책들을 다 깊이 읽지는 않는다. 빠르게 읽는 책과 깊이 읽는 책이 따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그 기준을 명확하게 나눌만한 확고한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읽기를 하는 이유는 깊이 읽기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단계라고 볼 수 있다. 크라센은 『읽기 혁명』에서 “가벼운 책 읽기는 더 깊이 있는 책 읽기로 가는 교량 역할을 하고, 더 많은 책을 읽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더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언어 능력을 키워준다.” 라고 말한다. 폭넓은 자율 독서를 하며 다양한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서서히 독서의 관심 분야는 넓어질 수밖에 없다. 편향된 독서를 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책을 읽는 방법으로 빠르게 읽기를 즐겨한다. 하지만 빠르게 읽기만 반복한다면 독서의 즐거움과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그래서 깊이 읽기의 단계로 나아가야만 한다.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에서 아이들의 깊이 읽기 능력을 어떻게 길러줄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디지털 읽기 중심의 ‘가볍게 읽기’ 에 더 편중되면서 읽기 능력이 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손잡이 읽기 뇌’를 구축해주는 것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인쇄물로 깊이 읽기 능력을 만들어준 후 양쪽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함을 역설한다. 


미래는 우리 삶에서 깊이 읽기의 역할과 좋은 독자의 진정한 가치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깊이 읽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정립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 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문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