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9년 10월 15일

무대미술과 어경준 교수 인터뷰

“창작자들이 사업적인 관점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어경준 선생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학교 무대미술과에서 무대 설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술감독을 하며 무대 장치나 기계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학부 때 전공은 영화였지만, 그 과가 연극과 영화를 함께 가르치는 곳이라서 연극과 항상 연관되어 있었어요. 무대 제작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면서 연극과 무대 기술에 관심이 생겼고, 계속해서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신임 교원 되신 것 정말 축하드려요, 학교는 이번이 첫학기신 건가요?


아뇨, 사실 강사로 출근한 지 5년 돼서 지금 졸업생들도 아는 사이죠. 아무래도 강사일 때는 제 수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봤다면 지금은 좀 더 큰 범위로 보게 된 것 같아요. 특히 학과 교육 방향이라든지 연극원의 교육 방향이 어떤지 파악하는 중입니다.


다른 인터뷰를 찾아보니, 분업에 관한 말씀이 꽤 많으셨어요. 각자의 책임 영역이 명확해지는 ‘전문인력’에 관한 중요성을 역설하셨는데 ‘전문인력’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개인의 작업 태도나 산업환경의 차원에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은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것이 산업성, 경제성이라고 생각해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책에서 사피엔스가 진화 과정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이유가 추상성을 개발하는 능력이라고 해요. 추상성을 통해서 사람들이 연대하고 조직하지만 분쟁하기도 하잖아요. 종교, 국가, 민족의 개념을 생각해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이 뭐냐, ‘돈’이다. 과거부터 우리가 예술을 하면서 갖게 된 문제점이 ‘작가주의에 기반한 권위주의’인데요. 그래서 지나치게 작가주의에 의존하다 보니 작가 개인에게 집중하게 되고 그게 예술 권력이 되는 경우가 있고, 프로덕션 과정에서 다른 역할들은 무시되고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자본이 들어오면서 그게 좀 해체되는 양상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투자 대비 효율성을 따져야 하니, 돈이 왜 거기에 쓰여야 하는지 매번 질문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런 작가주의가 무너지겠죠. 아이러니하게도 왜 우리가 이걸 선택하고 표현해야 하는지가 주가 되면서 다 같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예술 분야의 산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넷플릭스가 경제적인 성장을 하고 있음에도 주류 스튜디오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지엽적이고 작은 테마를 만들 수 있는 건 어마어마한 경제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예술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미래의 예술 문화 환경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와닿는 말이네요. ‘예술을 업으로 삼아야지’라는 관점에서 굉장히 도움이 되는 말씀이에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한 분야도 프로덕션 매니지먼트인데, 현장 일만 계속해왔던 저에게는 그때 배운 게 되게 충격이었어요. 매니지먼트는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할건지 그리고 각자의 파트가 골고루 통용되어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한 거예요. 시스템을 조직해주는 일종의 경영인 거죠. 프로덕션에서 각자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충돌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 자본을 생각하면 조금 다른 관점으로 예술적인 선택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게 되죠. 그래서 예술가 자신의 에고(Ego)로 싸우는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자기주장을 설득시키게 되는 여건이 되는 거죠.


그럼 예술을 교육하는 기관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시는 건 무엇인가요?


인터뷰 전 학생과 면담을 했는데, 나눈 얘기가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바라던 것이기도 해요. 학교를 졸업했을 때 얼마나 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생계의 문제를 떠나서 예술가로서 혹은 예술적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질문인 거 같거든요. 지금처럼 상당히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예술가들도 어떤 예술가의 상이 필요한지에 대한 공감대가 교육자들 사이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것을 통해 수업이 설계되고 교육이 짜여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후 구분 없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제일 갈증이 많았던 게 전문인력이에요. 개척되지 않은 분야에서 고군분투 하다 보니까 도와줄 수 있는 인력이 너무 갈급했고, 팀을 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을 키우는 것이 제 화두가 되다 보니까 교육에 관심이 커졌어요. 그래서 아마 그런 관점으로 다시 교육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현장의 추이에 아주 민감한 경영학과나 이런 과들을 중심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거든요. 과거 패키지 커리큘럼으로 이뤄지는 교육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요. 단위 지식으로 쪼개져서 학생들이 각자 스스로 조합하도록 하는 그런 움직임이 조금씩 생기는데, 그게 예술 분야에서 좋은 방향을 제시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받은 교육은 과거의 교육인데 그것을 기반으로 현재의 학생들에게 응용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의 가르침이 미래에 대비할 만한 건지는 스스로의 검증이 필요할 것 같아요.


희곡이나 대본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랑 회의하신 후에 기계를 설계하는 것이 선생님의 일이시잖아요. 글과 말로만 컨셉을 잡았던 것을 기계라는 실물로 구현할 때 영감을 얻는 과정이나 그 구현에 도움이 되는 사고방식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지금 제가 고민하고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해야 할까. 대유적으로 표현해서 ‘창작’과 ‘기술’로 나누어 생각하자면 사실 모든 게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연기, 촬영, 편집 같은 ‘기술’이라고 하는 것들이 창작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보는 것은 기술, 그러니까 형식이잖아요. 기계라는 것도 표현의 형식을 만드는 건데 그러다 보면 이 형식의 기준이 필요하겠죠. 거기에 들어가는 질문은 왜 이게 필요한지에서부터 왜 그렇게 움직여야 하는지까지 그런 맥락을 만들어가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기계장치를 설계하다 보면 물리적 환경의 지배를 받아요. 특히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예를 들어 아주 넓은 폭의 힘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현해야 하는 기계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 에너지를 커버하는 건 결국 돈이거든요. 그렇기에 우리가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왜 꼭 필요한지를 토론하고 필요하지 않은 건 쳐내는 것이죠. 우리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를 맞추는 게 프로덕션 단계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프로덕션이 아주 잘 되어있을 때야 가능하고, 사실은 많이 낭비되는 경우가 꽤 있죠.


무대미술 전공을 가르치고 계신데, 선생님께서 작업하시거나 학생들을 가르치실 때 깨달은 점을 무대미술 전공 외 다른 전공인 학생들이 알게 된다면 좋겠다 싶은 게 있으실까요?


‘통섭, 융합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지금의 문화 소비자들의 요구 자체가 점점 진화하고 있잖아요. 새로운 수단, 새로운 표현을 계속 갈구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창작자도 틀의 바깥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움직임이 생깁니다. 그런 움직임은 눈에 보이는, 표현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이 되지만 경영 관리 면에서도 도움이 돼요. 이런 관점에서 법률 지식이 창작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죠. 지금은 독립적인 작업자라는 인식과 문화가 발달하면서 각자의 일의 범위를 생각하고 상대와 협상할지를 스스로 챙겨야 하니까요. 작품 자체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찾아야 할 권리를 주장하는 법을 익혔으면 좋겠어요.


미래 사회는 글을 쓰는 사람이 평생 글을 써야 하는 게 아니고, 미술을 하는 사람이 평생 미술만 하는 건 아닐 거로 생각해요. 요즘에 오리지널 창작자들이 나중에는 제작자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가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을 다른 역할을 통해서 마련하는 거죠. 창작자들이 사업적인 관점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경제적인 플랫폼을 잘 인식하는 것도요. 그렇게 다른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있었던 현장에서 다른 이들과 원활한 소통을 했었고, 각자의 역할이 작품에 미치는 역량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다양한 역할을 넘나 들을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창작자들이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그런 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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