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2019년 9월 26일

2010년대의 풍경 (1)
온라인 필름아카이브와 영화학과 학부생

온라인 필름 아카이브 ‘레어필름’(rarefilmm: The Cave of Forgotten Films)


https://rarefilmm.com/


존(Jon)은 웹사이트 운영자다. 나이, 인종, 학력 모두 불확실하다. 아마 30대일 것이다. 80년대의 ‘티비 영화’(TV Film)에 관심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 백인일 것이다. ‘잊혀진 영화들’은 그에게 즐거움의 원천으로 보이는데, 그가 이처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그 스스로 즐거움 이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그는 영화학을 공부해본 적 있을 것이다. 영화사를 공부한 적 없지만 영화를 막연히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프리코드’(Pre-Code, 주1)를 영화장르로 전제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존이 현재 영화학과 석/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존은 2017년도부터 오늘날까지 자신의 홈페이지 ‘레어필름’(rarefilmm: The Cave of Forgotten films)을 누구보다 바쁘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어필름’은, 예술/고전영화 전문 DVD/블루레이 회사인 ‘크라이테리온 컬렉션’(Criterion Collection)의 SNS 페이지보다 전문적이다. 또한, 예술/고전영화 전문 스트리밍서비스인 ‘무비’(MUBI)보다 도발적이다. 게다가 영화 요청 페이지에 달리는 댓글에 답하는 존의 모습을 보면 겸손하기까지 하다. 존은 공무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존은 한 사람이 아닐 테다.


다만 요청 페이지의 조건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블라드’(Vlad)라는 유저가 끼어들 것이다. 저작권법에 걸릴만한 영화는 요청하지 말고, 이미 업로드된 영화를 신청하지 말라는 조건이다. 물론 존 역시 그 영화들을 불법적인 공동체에서 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그가 자기 자신에 관해 한 얘기로는 “지금 사이드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 업로드가 늦을지도 모른다”라는 양해의 말 정도가 전부라서, 정확히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시네필의 불법 공동체에 관해서는 <오큘로> 1호에 수록된 ‘조각난 시네필리아에 관한 메모’라는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대신, 우리학교 독자들은 보다 세속적인 방식으로 존의 웹사이트를 음미해볼 수 있다.


10대 시절, 광적으로 영화를 많이 본 지방 출신의 영화학과 학부생을 가정해보자. 그는 2010년대 중후반에 입학했다. 그가 살던 지방에는 영화사를 (편파적일지라도) 조목조목 소개하는 프로그래머가 없었거나 시네마테크 자체가 없었다. 혹은 부산에 살았을 경우,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가 제공하는 영화사를 배웠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서울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그의 영화사 교재는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과 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평론가들이다. 그는 이에 따라 영화를 무작정 봤다. 그는 자신이 국내 영화학과가 학부 과정에서 가르치는 영화사를 전부 익히고도 남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입학했다. 그는 불안하다. 청소년기에 무작정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만으로 충분할 리가 없는데, 전공 수업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업을 위해서 봐야 하는 영화를 찾다가 정신을 차리니 도착한 곳은 존의 웹사이트다. 보통 이런 식으로 무료 스트리밍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는 보통 광고이거나 결제를 요구한다. 그런데 레어필름은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는 <위험에 할당된>(Assigned to Danger, 1948)이라는 누아르 영화를 본다. <위험에 할당된>은 ‘오스카 보티커’라는 감독이 ‘버드 보티커’라고 불리기 전에 만든 영화다. 그는 2014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버드 보티커 특별전 – 싸울 준비가 됐다”가 개최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웹사이트와 블로그에는 각각 버드의 서부극으로 이루어진 상영작 리스트와 ‘폴 슈레이더’라는 영화감독 ⠂평론가가 버드의 서부극을 중심으로 쓴 글이 올라와 있었다. 당시에 그는 “서울에 살았다면 이것들을 필름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상영작 파일을 구하러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그러고는 만족했다. 


서울에 왔는데도 서울아트시네마, 한국영상자료원,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 상영관 등은 그에게 여전히 너무 멀다. 서울에는 사람도 너무 많다. 그는 항상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시달려왔다. 하지만 그는 이제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과 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평론가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을 정당화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열심히 듣지는 않겠지만, 그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떨어지는 학점과 함께 진학할 수 있는 대학원의 수도 줄어들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그 편이 차라리 낫다고 판단한다. 사실 그는 교육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허애리

HuhEerie@gmail.com

주1

PCA(Production Code Administration)가 설립된 1934년 이전까지 영화의 선정성은 현지법, 스튜디오 관계 위원회와 스튜디오 사이의 협상, 대중에 의견에 의해 느슨하게 제한되었다. 그 결과로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 사이에 제작된 일부 선정적인 영화들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