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9년 9월 26일

이렇게 문학하면 안 되겠죠?

어쩌다, 마음의 병을 얻었습니다

ⓒ심유선


고등학생 때 나는 이런 대학 생활을 상상했었다. 그러니까 연극원 서사창작학과에서의 일상이 이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입학한 해에 따라 구분되는 선후배 위계를 구분하겠지. 19기. 20기처럼. 선배라고 부르게 될까. 선배’님’이라고 부르게 될까. 방학 기간 동안 읽어야 할 독서 목록이 있겠지. 선생님들은 방학 숙제처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겐 학점에서 불이익을 줄 거야. 교수 한 명이 다섯 명을 가르치는 강의실은 어떤 풍경일까. 선생님들이 학생들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는 그건 즐거운 일일 거야.


이 글은 예전의 꿈과 한예종에서의 현실이 얼마나 달랐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꿈에 대해선 이쯤 얘기하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내 심리 기저에는 ‘(합격생인) 나는 특별하다’라는 생각이 똬리를 틀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한예종은 천재들만 가나요?’라는 질문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았는데 나는 ‘천재’라는 언표에 반대하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 천재는 아닌데요. 외부인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개성을 지닌 집단인 건 맞습니다.’라고 (속으로) 답했다는 말이다. 


그때 나는 학교가 나의 개성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로 느꼈다. 하지만 부모님 경제력으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처지에 방금 말한 개성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개성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개성, 이까짓게 도대체 뭐길래?’하고 퍼포먼스 하듯 벗어 던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몇몇 친구들 말처럼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버리고 떠날’지 몰랐다. 실제로 언론고시나 변호사 시험을 보는 사례를 들으며 나도 놓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건 내 마음의 힘이었다. 이전의 개성을 버리고 다른 형태의 인간으로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개성을 버리고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고로 나는 강하다.’ 엄청난 비약 논리지만 나는 그렇게 믿었다. 강하다는 건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여름 방학 나는 문학을 완전히 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한예종에 온 것도 대단한 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한예종에서 했던 일들은 문학과 결이 많이 달랐다지만 결국 나는 문학을 할 사람이었다. 문학을 한다는 건 내겐 글을 읽고 쓰는 일 이상이 아니었다. 한국어를 근원으로 하며 내 영혼의 기저에 민족애와 애국심이 있다는 걸 절절하게 확인시켜주는 일이었다. 글을 읽고 쓰지 않는 나는 껍데기에 불과했고, 그런 맥락에서 나는 벌거 벗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자존심을 전부 버렸으니 제발 문학하게 해주세요.’ 구걸하는 중이다. 진부한 말지만 문학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만 버렸던 것이 아니었다. 반복해서 손상되는 타박상에 무감해지는 연습도 했다. 똑같은 부위를 계속 맞다보면 얼굴이 초연해진다. “아, 또 맞았구나. 왜 자꾸 여길 맞는 걸까?”하는 인식까지 생긴다. 성장통이라는 아름답지만 추상적인 단어 대신 구체적인 예로 설명하자면 최근 ‘지젤’ 공연으로 은퇴한 김지영 발레리나를 예로 들고 싶다. 김지영 발레리나는 경향신문과의 오피니언에서 ‘쉬는 날 뭐하세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재활 치료라고 답했다. 예전에는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재활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주 1) 예술의 전당에서의 그 세 시간 공연을 위해 평생 꾸준히 재활 치료를 받는 삶은 어떨까 종종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 김지영 발레리나의 사례와 조현병 증세로 앞으로 꾸준히 약물 치료를 받게 된 나의 사례에 어떤 공통점은 없는지 질문해본다. 


어떤 계기로 나는 망상에 빠지고 환청을 듣게 되었다. (나는 무교지만) 이 조현병이 신이 내린 벌이라면 나의 죄는 종이 위가 아닌 평범한 내 일상에 문학을 끌고온 것일테다. 문제의 시간 동안 일상과 이야기를 분리하지 않았다. 애정했던 누군가의 마음이 듣고 싶었고 그 듣고 싶은 누군가의 마음을 내 안에서 찾았다. 바로 이렇게.


-상어야


-응?

 
-너 그때 왜 그랬어?


-그때 언제?


이런 식으로 나눈 대화가 나중에 환청이 되었다. 때로 환청은 내 삶을 고대 그리스에 뿌리를 둔 전통적인 극적 장치로 엉성하게 편집했다. 


하지만 은퇴 무대를 아름답게 마치기까지 신체 치료를 감수한 발레리나와 이제 막 첫 점프를 시도했다가 발목을 접질린 사회초년생을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지금도 조현병을 겪고 있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에 슬프다. 또 어쩔 때 통제되지 않는 나 자신이 두렵다. 처음 겪는 일이라 실수를 하게 되고, 때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날도 있다. 만약 나에게 십년 이상의 경력이 있다면 내 가장 가까운 가족의 불안을 잠재워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조현병이 때때로 나를 나약하게 하지만, 나는 강하니까 이겨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를 믿어주세요.’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텐데. 내가 나를 믿어도 된다는 물증이 하나도 없는 이 세계에선 여느 때보다 타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때론 가족의 말을 듣고, 또 때론 전문가인 의사 말을 들어야 한다. 잠들기 직전마다 문학이 무의식 속에 있으며, 그 무의식 속에 접속하는 데 처방 받은 약물이 방해된다는 환청이 들리지만, 거의 떼 쓰듯이 ‘먹지 말고 나랑 놀자’ 외치지만 외면해야 한다.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문학이 내 직업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직업이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주차장에 쪼그려 앉아 저 멀리 강아지에게 나직한 노래를 불러주는 시간처럼. 노래를 들은 강아지가 내 품에 달려 오면 그게 또 행복할 것 같다. 문학도 행복하자고 하는 걸텐데 핵심을 자꾸 잊는 것 같다.


하소연


(주 1)
[여적]발레리나 김지영의 새로운 시작,경향신문, 김민아 논설위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