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9년 9월 7일

한여름 밤의 꿈을 앓은 소년들; 연극 알앤제이(R&J)


연극 <알앤제이(원제: Shakespeare’s R&J)>는 우리가 잘 아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조 칼라코가 남자 배우 4인극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1997년 뉴욕에서 초연 이후 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었다. 한국에서는 2018년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후, 올해 같은 곳에서 재연한다.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는 카톨릭 학교에 네 명의 소년들이 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이들은 기숙사에서 몰래 빠져나와 비밀의 장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붉은 천에 감싸져 있는 금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꺼내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학생 1, 2, 3, 4가 있다. 인물 개개인의 이름과 설정들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오로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역으로만 구분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이 말하는 대사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뿐이다. 이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주어진 배역은 오로지 ‘학생’이기 때문이다. 종소리가 울리면 학생들은 모두 같은 동작으로 박자에 맞춰 행진하며 수업을 듣고 입을 연다. 개개인의 욕망은 절제되거나 아예 통제된다.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지켜야 할 규율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 것. 역설적으로 그래서 그들의 언어는 오로지 <로미오와 줄리엣> 뿐인 것이다.

“지금은……” 깊은 밤. 학생들은 역할을 부여받았고, 책을 들어 대사를 읊는다. 연극은 막이 올랐다. 이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충실하게 연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직까지 단추까지 꽁꽁 싸맨 교복 자켓마저 벗지 않고 있다. 이들은 ‘사랑’과 관련된 대사나 장면이 나올 때마다 과장된 반응을 보이며, 대사를 읽고 부끄러워한다. 여자 배역을 연기할 때는 ‘여성적’인 연기를 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연기하는 인물은 그저 극 중 배역으로 본인 자신과 분리되어있으며, 완전한 타자이다. 현실과 꿈은 분리되어있다. 학생들은 이 환상이 깨어나면 그만인 꿈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줄리엣이 등장한 순간부터 경계는 흐려진다. 줄리엣 역할을 맡은 학생 2는 줄리엣으로 분하기 직전 교복 자켓을 벗는다. 학생 3, 4는 각각 케퓰렛 부인과 유모 역할을 맡았는데, 이들은 여자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고 인식한 순간부터 그들이 배우고 알고 있는 여자를 연기하기 시작한다. 몸을 한껏 꼬고, 목소리는 지나치게 높으며 손짓과 웃음은 경박스럽다. 하지만 줄리엣, 학생 2는 자신의 목소리 그대로 줄리엣의 대사를 읊는다. 줄리엣은 줄리엣이 아니라 그걸 연기하는 학생 그 자신이 되어간다. 원서 지문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이것은 그에게 게임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꿈은 현실이 되어간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키스한다. 금기는 깨진다. 그 순간부터 극과 그 속의 인물들을 연기하는 본인에 대한 태도가 구분되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며, 이따금 그 둘이 섞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차이를 보인다. 이미 경계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극에 몰입한 학생 1, 2와 달리 학생 3, 4는 저 둘을 떼어놓으려 한다거나, 바깥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등 학교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 어긋난 경계의 충돌은 서약식에서 절정을 맞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성당에서 서약식을 올릴 때, 두 사람은 부러 그들이 대사를 읽지 못하도록 책을 가지고 도망치다 끝내 그 페이지를 찢어서 돌려준다. 순식간에 언어를 잃어버린 무대 위에는 정적만이 흐른다. 그때 입을 여는 것은 학생 1, 로미오다. 로미오는 울먹이면서 <소네트 18번>을 읊기 시작한다. 이것은 대본 바깥에 존재하는, 그가 스스로 만들어냈거나 혹은 찾아낸 언어다. 공연 초반에서 학생 1이 답을 받지 못하고 혼자 공책에 써 내려간 <소네트 147>과는 다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더 이상 단순한 연극이 아닌 학생들의 이야기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직까지 학교 속에 갇혀 있다. 그들이 ‘학생’이라는 사실은 특정한 상황에 대한 반사적인 반응으로 나타난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일시적으로 환상에서 깨어난다. 극 속에서 규율을 상징하는 종소리는 학생들이 “욕망의 노예”가 되는 순간마다 울리며, 무대는 어두워지고 학생들은 모든 행동을 일제히 멈춘다.  귀를 막고 수업 내용만을 중얼거린다. 폭력이 대물림되듯 학교에서 받았을 체벌이 그대로 행동에 투영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극은 중단된다.

하지만 이들을 다시 극 속으로 이끄는 것은 사랑이다. 사실상 모든 욕망의 궁극적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든 일이 사랑을 향한 적극적인 행동들로 일어난 것처럼, 학생들은 극을 통해 무엇을 사랑하고 그리하여 욕망하는 법을 알아나간다. 물론 금기를 깨뜨리는 행동은 곧 규율로 세워진 자신의 일부를 깨뜨리는 것임을 학생들은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사랑으로 생긴 균열을 다시 사랑으로 채운다. 체벌 장면 직후 학생의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의 극 중 이름을 불러 다시 극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면서 균열에서 오는 필연적인 진동을 견디고자 한다.

혹자는 연극 관람을 한 세계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행위에 비유해 말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끝끝내 수업 시간에 배운 라틴어를 외치며 교복을 벗어 던진다. “Amo, Amas, Amat, Amamus, Amantis, Amant.” 나는 사랑한다, 너는 사랑한다, 그/그녀는 사랑한다, 우리는 사랑한다, 너희는 사랑한다, 그들은 사랑한다. 성차별적인 계명이 적힌 페이지를 찢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꺼낸 바로 그 구덩이에 던져넣는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처럼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교복을 벗고, 쏟아지는 비를 맞는 장면에서 은유 되는 학생들의 탈출은 그리하여 경이롭고, 힘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로만 이루어진 텍스트 속에서,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오히려 이 깨뜨리려 하는 세계에 존재하는 학생들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실은 꿈이 될 수 없다. 아무리 해를 감춘다 해도 아침은 찾아오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과 함께 날은 밝고, 어김없이 종소리는 울린다. 학생 1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재빠르게 교복을 챙겨입고 다시 규율 속으로 들어간다. 학생들에게는 맞서는 것보다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 한여름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학생 1은 친구들을 잡아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혼자 남은 학생 1은 사라진 환상을 붙잡고, 현실은 너무나도 단단한 벽임에 분노하는 동시에 좌절하며 중얼거린다. “나 어젯밤에 꿈을 꿨어. 어젯밤에, 꿈을 꿨어. 어젯밤에, 꿈을, 꿨어…….”

무대 한가운데에 혼자 쓰러져있는 학생 1에게 다시 환상처럼 학생 2, 3, 4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가 무대를 채우고, 처음에 연극의 시작을 알렸던 학생 4의 “북을 쳐!”를 시작으로 뒤편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들을 보면서 학생 1은 희미하게 웃는다. 그는 금기이자, 욕망의 상징이었던 붉은 천을 들고 제일 높은 테이블 위에 이르러 “마침내 감옥에서 탈출한 죄수처럼” 그 천을 공중에 내던지며 외친다. “어젯밤에, 꿈을 꿨어!”

그 밤들은 모두 꿈이었을까. 학생 2, 3, 4는 학생 1에게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이것도 한낱 꿈에 불과할까. 붉은 천을 던짐으로써 죽음에서, 규율에서, 혹은 환상에서 벗어나는 듯한 결말은 배우의 해석에 따라, 그날 전체적인 분위기와 노선에 따라 꽉 닫힌 비극으로도 혹은 약간의 희망을 남겨놓은 결말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따금 두 가문의 화해로 결말을 맺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장 희극적인 비극이라 칭하기도 한다. 공연이 모두 끝난 후 커튼콜에서 학생들은 자켓을 벗고,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서로의 눈을 마주하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퇴장한다.

이 이야기는 비극인가? 관객은 이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은 이제 그 여름날의 열병을 앓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Nothing will ever be same.”



이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