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9년 9월 7일

나의 가장 아름다운 악몽
미드소마(2019)

“온 지구가 하나의 영혼보다 더 큰 고난에 처할 수는 없다. (…) 한 인간이 느끼는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은 느낄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한 인간이 버림받음을 느낀다면, 그것은 최고의 고난이기 때문이다.” (주1)



아리 에스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미드소마>가 지난 7월 11일 개봉한 후, 오는 10월 감독판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드소마>는 가족을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 미국인 여성이 스웨덴의 여름 축제(midsommar)에 참석하게 되는 내용을 담은 공포 영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대니’는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에게 여동생의 연락 두절을 알리며 불안해한다. 크리스티안은 과민반응이라며 귀찮아할 뿐이다. 크리스티안은 대니와의 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들은 그에게 결별을 재촉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니는 여동생이 부모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후 크리스티안은 친구들과 (대니를 제외한) 스웨덴 여행 계획을 세우고, (당연히 자신도 함께 간다고 생각한) 대니는 얼떨결에 합류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핵심이며, 나머지 이야기는 간단하다. 남자는 여자를 배신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복수한다. 둘은 결별한다. 여자는 웃는다.

<Modern Romance>(1981)

다수의 인터뷰에서, 아리 에스터 감독은 <미드소마>가 “결별 영화(breakup movie)”라고 말한 바 있다.(링크) 또한 <미드소마>의 이야기가 고장 난 관계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유 역시, 감독 본인이 멜로드라마 장르의 팬이기 때문이며, <모던 로맨스>(1981) 등의 멜로드라마 영화들을 보는 것이  <미드소마>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미드소마>는 “상대방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혼자가 되어버리는 실존적 상황에 놓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람에게 있어 “세계가 멸망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선 맞기도 하다.” <미드소마>가 누군가에게 실망스러운 공포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미드소마>의 장르는 공포가 아니라 멜로드라마다. 말하자면, 감독이 <미드소마>를 통해 가장 우선적으로 전달하려 한 감각은 ‘공포’가 아닌 ‘카타르시스’다.


<미드소마>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은 관객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서보다는, 어떠한 영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제시된다. 이는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멜로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와 연결된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멜로드라마 영화에서는 “영화의 풍경이 인물의 심리 상태만큼 격렬하게 그려져야” 하며, 보여지고 있는 물질적 현실과 감정적 경험이 서로 결부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미드소마>가 인물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여타 공포 영화와 유사해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만의 ‘집’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미드소마>가 제시하는 장소가 편안한 ‘집’처럼 느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퀴어 저널리스트이자 트랜스 여성인 사만다 알렌(Samantha Allen)은 웹사이트 Them에 <미드소마>에서 트랜스 서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글을 기고했다.(링크) 내가 기고문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미드소마>가 트랜스 서사로 읽히는 방식보다도) 필자가 <미드소마>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굉장히 가깝게 연결지어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미드소마>의 엔딩, 대니가 크리스티안이 불타 죽는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는 장면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매우 아름다운 광경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대니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을 넘어서 영화 속 장소를 함께 경험하고 공유하는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감각은 감독이 본 작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관람 경험을 ‘주입시키며’ 노력한 지점이기도 하다. 어두운 현실과 동떨어진 밝은 세계에 당도한 대니는 반복적으로 트랜스(trance) 상태에 빠진다. (이를 묘사한 영화의 중후반부는 거의 실험 영화처럼 보인다.) 대니는 마약을 하고, 정신을 잃고, 춤을 추고 뛰논다. 환상과 현실은 더 이상 구분될 수 없다. 어두컴컴한 영화관과 빛이 뿜어져 나오는 스크린은 거대한 제단이 된다. 영화는 이 의식에 관객을 기꺼이 끌어들인다.


만약 누군가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면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면, 세계는 그 사람을 위해 과연 뭘 해줄 수 있을까? 대체로 그 정답은 전부 불태워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미드소마>는 대부분의 작품들처럼 그 불길을 파멸로 그려내는 대신, 크고 환한 웃음을 보여준다. 해피엔딩의 탈을 쓴 배드엔딩도 아닌 온전한 희열 그 자체다. 많은 사람이 평가한 것처럼, 또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는 안식의 터전이 되길 자처한다. <미드소마> 속 세계는 악몽 같다. 하지만 망가진 사람이 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악몽이다.



최미리 기자

horoyoigirl@icloud.com



(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 10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