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9년 9월 7일

요절하기엔 너무 늙음(2019)

13시간짜리 영화를 위한 드라마, 2분짜리 클립을 위한 드라마

<Too Old to Die Young> 1×06


<드라이브>(2011)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은 덴마크 출신 영화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온리 갓 포기브스>(2013)와 <네온 데몬>(2016)을 거하게 말아먹었다. <투 올드 투 다이 영>(2019)은 그의 새로운 10부작 드라마로,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볼 수 있다. 레픈은 다음처럼 덧붙였다.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쭉 볼 필요는 없고, 선별적으로 보면 된다. 그게 스트리밍 서비스의 미래다.”


이야기는 30대 경찰이 미성년자와 사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다이에나 드영'(지나 말론)에게 죄를 사할 기회를 구하다가 거짓말을 하고, ‘죽음의 여사제’라고 불릴 ‘야리차'(크리스티나 로들로)의 눈앞에서 처형된다. 그리고 다이에나는 VR 기계를 착용한 채로 수음하고, 외계인에 대한 웃긴 뉴스를 보고, 웃고, 춤을 추고, 세계에 관해 중얼거린다. 다른 한편 죽음의 여사제는 자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듣고, 술집에 있는 모든 남자를 죽인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호주의 영화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링크)도 위와 유사하게 <투 올드 투 다이 영>의 이야기를 요약한다. 대신 조소하는 어투다. “오, 내가 야리차가 자신이 죽음의 여사제라고 불리기를 원한다는 걸 언급했었나?”

<Twin Peaks: The Return>3×12

이어지는 리뷰에서 마틴은 <투 올드 투 다이 영>을 데이비드 린치의 실험적 드라마 <트윈 픽스: 더 리턴>(2017)과 비교한 다음, “적어도, 경외심을 갖게 만든다”라고 결론 지으면서 (5점 만점에) 3점이라는 어정쩡한 별점을 남겼다. 마틴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레픈이 사용하는 레퍼런스 가운데 ‘로베르 브레송’이라는 영화감독의 ‘모델론’이 ‘소시오패스적인 심리’로 압축되었다는 것으로, 쉽게 말해 레픈이 브레송의 미학을 멋모르고 썼고, 따라서 <투 올드 투 다이 영>은 꽤 신기한 드라마지만,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레픈이 브레송과 관계를 맺는다면 그 관계는 ‘모델론’ 보다는 각색의 방법론에 따른 것이다. 브레송의 각색론을 다루는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의 오래된 글인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와 로베르 브레송의 스타일」을 돌아보자. 브레송은 자신의 특유한 소설 각색을 통해서 추상적인 텍스트와 구체적인 이미지를 어느 한쪽의 체계로도 편입시키지 않는 ‘변증법’에 주목한다. 거칠게 풀어 쓰면, 여러 계열의 매체들을 부딪치게 만든 다음 거기서 발생하는 이질감에 주목하는 것이다. 


전작 <드라이브> 개봉 당시에도 범죄 작가 제임스 셀리스의 원작 소설 『Drive』(2005) 그리고 각본가 호세인 아미니가 원작 소설과 부합하는 각색을 위해 들인 노력을 지적한 평자는 적었다. 돌이켜보면 레픈의 현란한 스타일이 공허해 보인 것은 항상 레픈 스스로가 이야기를 통해 적극적인 표현을 시도했을 때이기도 하다. 가령 <네온 데몬>은 레픈 자신의 이야기에 기초한 영화였고, <온리 갓 포기브스>는 레픈이 혼자서 쓴 각본에 기초한 영화였다. 반면 <투 올드 투 다이 영>은 HBO 시리즈 <웨스트 월드>로 유명한 각본가 에드 브루베이커와 공동 각본으로 작업한 것이다. 이 각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위해서 쓰인 각본보다는 그 자체로 단일한 범죄극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레픈이 언급한 “스트리밍 서비스의 미래”는 <투 올드 투 다이 영>을 제작한 동기보다는 결과나 효과에 가깝다. 레픈은 린치와 다르게 영화 예술의 새로운 척도나 이를 위한 터전을 개척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다만 일상의 영역에 ‘이야기-영상’이라는 체계를 다시, 새롭게 끌어들이는 방법을 모색한다. 가령, 유튜브나 비메오에는 <투 올드 투 다이 영>의 클립들이 분산적으로 올라와 있는데, 이들은 단지 클립이 아니라 각각 근사한 단편영화로 기능한다. 여기서 <투 올드 투 다이 영>의 몇몇 시청자들은 “지루해 죽겠는데 가끔 돋보이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음미하는 경험을 공유한다. <트윈 픽스: 더 리턴>에 비해 <투 올드 투 다이 영>이 모호하게 전위적이라는 평가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드라마와 이를 둘러싼 플랫폼, 대중문화로서의 영화 예술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성찰을 유도하는 쪽은 <투 올드 투 다이 영>으로 보인다. 레픈의 역작이다. 



장유비 기자

jangjangyubyub@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