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9년 7월 13일

폐허의 섬, 희망의 바다로 이어지다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 2019> 여행기


지구 곳곳에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소외되는 공간이 있다. 한 시대에는 북적이던 곳이 시대가 끝나면서 텅 비어버리는 것은 역사 속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일본에는 약 6,852개의 섬이 있다. 이 많은 섬들은 하나하나 고유한 미지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섬의 폐쇄된 교통, 육지로부터 동떨어진 접근성, 풍부한 자원 등의 특징 때문에, 섬은 그 당시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숨겨 놓기 좋은 공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섬이 역사 속에서 그 존재가 지워지곤 한다.


  섬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장소의 고유성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개인에게도, 공동체에도 크나큰 상실의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공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면, 그곳의 고유성을 보존하며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19년 5월 봄에, 이 희망찬 변화를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 봄 세션이 열렸던 섬들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 공식 포스터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세토우치 내해에 예술의 바람이 불다


세토우치는 시코쿠, 혼슈, 규슈를 잇는 내해이다. 세토우치 해상의 섬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오면서 발전하는 공간이었다. 오가며 정착한 주민들의 전통산업으로 발전해오던 이 섬들은 1960년 대대적인 산업화와 공업화로 인해 심각한 환경 오염이 발생했고, 이곳은 꽤 오랫동안 폐허의 공간으로 머물러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책으로 지역예술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90년대부터 진행된 ‘베네세 아트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안도 타다오 등의 건축가들이 나오시마에 자연과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형태의 미술관들을 설계했다. 그리고 쿠사마 야요이의 설치 작품이 섬의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곳곳에 놓이게 되었다.


  섬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미술관으로 바꾸려는 이러한 노력은 테시마와 이누지마 등 인근의 섬에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 개최된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의 기반이 되었다. 올해 4회째를 맞은 예술제는 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예술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예술제 기간이 되면 섬 곳곳에 있는 인구가 줄어들어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집 안에 작품들이 채워진다. 또한 작가들과 섬 주민들이 협업해 섬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아우를 수 있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2019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맞닿는 봄(4월 26일~5월 26일)’, ‘모이는 여름(7월 19일~8월 25일)’, ‘넓어지는 가을(9월 28일~11월 4일)’ 세 세션으로 진행된다.

△나오시마 지추 미술관 전경 ⓒ베네세 예술 재단


나오시마


‘맞닿는 봄’ 시즌은 세토우치 해의 동부에 위치한 섬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카가와 현의 다카마쓰 항구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첫 번째로 방문했던 나오시마는 본래 산업화 시대에 금속 제련업 공장 지대로 쓰였던 섬이었다. 이후 25년에 걸쳐 나오시마를 부흥시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심각하게 오염된 이 섬을 다시 극복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나오시마를 자연의 섬으로 바꾸고 싶다는 베네세 그룹의 목표에 의지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나오시마는 연간 40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현대미술의 성지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지추 미술관은 지하 공간에 있어서, 하늘 위에서 찍은 사진으로 전경을 보면 땅 안에 삼각형과 사각형 모양의 구멍이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술관 내부는 하늘이 그대로 노출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테시마 미술관 내부 ⓒ베네세 예술 재단


  굉장히 넓은 공간에 비해 이 미술관에는 단 세 명의 작가가 전부다. 그리고 각 공간은 오로지 그 작가의 작품 하나를 위해서 설계되어 있다. 가령 모네의 회화가 전시된 공간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흰색의 작은 돌이 깔린 바닥을 밟아야 한다. 윌터 드 마리아의 설치 작업이 놓인 공간은 높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천장이 뚫려 있어 작업의 그림자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바닥의 온도와 질감, 뚫린 천장으로 그대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 지하 공간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울림 등, 시각 이외의 청각, 촉각, 온도 등 다른 감각까지 모조리 그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테시마


나오시마에서 고속선을 타고 20분 정도 왼쪽으로 가면 테시마라는 섬에 다다를 수 있다. 이곳은 다른 섬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수많은 올리브 나무와 넓게 펼쳐진 계단식 논으로 온통 초록색이다. 이곳은 산업 폐기물 불법 투기 사건으로 인해 심하게 오염되었고 몇십 년에 걸쳐 가까스로 자연을 회복했다. 이것은 일본의 폐기물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이곳에 있는 ‘테시마 미술관’은 다른 베네세 아트 프로젝트와는 달리 내부에 별도의 작품이 없다. 화이트 큐브가 아닌 흰 타원 모양의 건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안은 천장에 뚫린 두 개의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고, 차가운 바닥 위로 움직이며 퍼져 나가는 물방울이 안에 있는 것의 전부인 빈 공간이다. 곡선의 비정형 돔으로 되어 있는 공간의 특성과 재질 때문에, 그 안에서 나는 관객의 발소리와 숨소리는 아주 길고 평온한 메아리로 울리게 된다. 요약해 말하면, 이 미술관에는 빛과 물과 소리와 하얀 벽과 바닥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물질적인 설치 작업보다도 더 공간이 가득 차 있는 듯한 독특한 평온을 만끽할 수 있다.

  
카라토 항을 거쳐 섬의 오른쪽 끝에 있는 해변에 가면 그 구석에 작은 나무 건물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심장소리 아카이브>라는 작품이다. 작업 이름 그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심장소리를 녹음해 아카이빙하는 도서관 같은 곳이다. 전시실 내부로 들어가면 심장소리의 음파에 따라 설치 작업의 조명이 쉴 새 없이 작동하고 있다. 퍽 단순한 개념의 작업이지만 이곳이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는 아카이브를 지향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 곳이 시간을 초월하는 것 같다는 오묘한 기분이 든다. 사람들의 존재의 흔적이기도 한 이 소리들이 섬의 풍경과 함께 영구적으로 보존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누지마 제련소 미술관 ⓒ서은수 기자


이누지마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불안정하게 출렁이는 배를 한참 타고 이누지마로 들어갔다. 바람 소리가 다른 모든 소리를 다 침묵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침묵은 채도 낮은 색의 바다와 퍽 어울렸다.


  이누지마는 굉장히 작은 섬이다. 하지만 1900년대 초 제련소가 개설되어 채석업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에는 학교가 개교할 정도로 많은 인구가 몰려들었다. 이후 몇십 년에 걸쳐 매연으로 오염이 심해지고 채석업이 쇠퇴하며 제련소가 문을 닫음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섬을 떠났다. 한때 3000여 명이 살았던 이누지마에는 현재 50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섬의 3분의 1 정도의 면적을 폐허가 된 거대한 제련소 터가 차지하고 있다. 이 중의 일부가 베네세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이누지마 제련소 미술관’으로 개조되었다. 건축가들은 섬의 자연을 이제는 더 이상 해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남아있던 제련소의 굴뚝과 구조들을 그대로 활용했고, 친환경 에너지로 미술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또 내부의 시원한 온도가 자연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제련소 터를 걷다 보면, 덩굴로 덮여 금이 가 있는 거대한 굴뚝과 미로처럼 이어진 벽돌들이 마모된 고대 유적의 흔적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대가 남긴 폐허와 활기를  미술관이 공존하는 풍경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공간을 보듯 아주 생경한 느낌을 준다.


오시마


오시마는 섬 전체를 아울러 국립 요양소가 설립되어 있는 섬이다. 본래 이곳은 ‘나병’, ‘문둥병’이라고도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소였다. 이곳에서는 몇십 년에 걸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인권 탄압이 있었고, 오시마는 육지로부터 한센병 환자를 강제 격리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곳이 국립 요양소로 재개편 되고, 한센병 환자를 보호하는 법률이 제정된 이후에야 폐쇄된 곳에서 존재했던 탄압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풍경은 우리나라의 소록도를 떠오르게 했다. 환자들을 위해 섬세하게 정리된 이 섬은 아주 차분하고,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산책로에는 곳곳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머무는 환자들을 위한 오르골 곡이 섬 전체에 울려퍼진다. 야트막한 산 앞에는 한센병 탄압의 희생자를 위한 추모 공원과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오시마에 있는 예술제 작품들은 이 교회와 현재 운영되는 국립 요양원 병동 사이에 있는, 요양소 개편 이전 한센병 환자들이 머물던 숙소동의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다시마 세이조의 <아오조라 수족관>, 야마카와 후유키가 오시마에 설치한 라디오 스테이션 작업 <Ayumi Kitarite> 등을 볼 수 있다. 국립요양원 카페에 마련된 전시 공간에는 오시마의 역사가 정리된 아카이브를 볼 수 있다.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는 ‘세토우치가 지구상의 모든 지역의 『희망의 바다』가 되기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너무 낭만적이어서 그만큼 불안하기도 했다. 공간의 겉표면만이 화려한 예술의 색으로 칠해진 채로, 안은 여전히 폐허로 남아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다가 여행의 마지막에 들렸던 오기지마에서, 예술제를 맞이해 새로이 커다란 하늘색 벽화가 그려진 중학교 외벽을 보았다. 2014년, 예술제를 계기로 오기지마로 돌아오는 주민들의 수가 늘어났고, 휴교 상태였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골목으로 이어져 있는 벽화를 보며 이곳이 희망의 바다라는 걸 믿게 되었다. 자연과 인간이 교착하여 공생하는 풍경이 이 섬들에서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앞으로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서은수 기자
3unwa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