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019년 7월 13일

오늘의 캐스트
햄릿 역 김영희&김철수


연극 문화를 바꾸는 첫걸음, 캐스팅의 변화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간하는『영화천국』지 67호 ‘키워드로 보는 한국영화의 오늘; 젠더’라는 글은 “예술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인간이 예술보다 우선한다는 당연한 확언을 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정상화가 아직 멀었지만 페미니즘은 영화계의 정상화로 가는 옳은 길이다.”라고 쓰고 있다. 예술 작품은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것이 재생산한 삶은 다시 우리에게 침투한다. 동시대 많은 예술가는 예술가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기대하는 것이 더이상 엄격한 검열이 아닌 응당 고민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고 여긴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어떻게?

 
최근 예술계가 주목하는 키워드는 ‘젠더’다.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서사를 발굴하고 혐오 표현을 지우려는 데에 신경을 기울인다. 주로 연극 대작에서는 남성 주연이 많았다.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주인공의 각성과 성장을 돕는 수단이나 도구처럼 쓰이는 경우가 잦았다.

 
‘젠더 프리 캐스팅’이란 ‘배우의 성별과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을 말한다. 국내에서 최초로 젠더 프리 캐스팅을 한 작품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2015)다. 여성 배우 김영주가 헤롯 왕 역으로 분했다. 역사적 사실 재현을 표방하며 왕 역은 거의 빠짐없이 남배우가 했던 관례를 깼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여성 배우가 무대에 더 많이 올라갈 수 있게, 더 주체적이고 다양한 인물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연극계 미투 이후 남성 중심 연극계는 자기반성과 함께 배우와 관객들의 목소리에 부응하여 다양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최근 1년간 이러한 캐스팅을 했던 공연은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비클래스》 《묵적지수》 《비평가》 △창극 《트로이의 연인들》 △뮤지컬 《광화문 연가》 《에어포트 베이비》 《해적》 《더 데빌》 △어린이극 《로빈슨 크루소》 등이 있었다.


특히 《광화문 연가》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연출한 이지나 연출가는 젠더 프리 캐스팅을 추구하기로 유명한 국내 뮤지컬 연출가다.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는 사랑의 중매꾼인 ‘월하’ 역에 여배우 차지연과 남배우 정성화를 캐스팅했다. 이지나 연출가는 “역사적이거나 실존적인 인물이 아니라면 무성의 존재로 취급하여 역할을 배정한다”라고 했다. 


연극 《묵적지수》는 남성의 전유물이던 전쟁 서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여성, 청소년, 소수자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이래은 연출가가 이 작품을 맡았다. 그는 “여성 배우들이 협소한 배역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기를 하도록 하는 게 미투 이후 창작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하게 됐다.”며 《묵적지수》의 캐스팅 의도를 밝혔다. 《묵적지수》는 배리어 프리 관람을 행하기도 했다. 배리어 프리는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것을 말한다. 


몇몇 작품에서는 성 고정관념에 매여 과장되게 인물을 표현하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려 했다.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작품에서 남성 배우가 여성성을 왜곡하여 표현했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과도한 메이크업, 노출이 심한 옷, 가슴과 엉덩이에 넣는 보형물 등을 사용하여 사회가 여성적이라고 칭한 특징들을 과장하기도 했던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들


예술가들의 이러한 고민은 현대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전극의 각색에 역사적 사실 재현이 목표가 아닐 시는 젠더 프리 캐스팅을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 인물의 언행을 수정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단순히 시류에 부응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현재의 맥락에서 우리에게 더 와닿는 의미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가치를 탐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학교에서 8월에 상연되는 연극 《Voicelog》(인큐베이션 공연)는 시각적인 요소를 배제하여 공연을 진행한다. 이 작품의 연출가 박예림 씨(연극원 전문사)는 “시각이 배제된 연극의 희곡은 사회에서 특정 성별에 부과한 외양 묘사를 처음부터 모두 걷어낼 수 있었다. 머리 길이, 옷차림, ‘여성적’ 제스쳐 모두 지문에서 사라진다. 이로써 성별 구분이 필요 없는 무성적인 인물을 창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외당하고 상처받는 관객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예술계에서는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김가은 기자
kobbaram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