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9년 7월 13일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VR 특별전
체험기


VR 문외한이 난생처음 VR 영화를 보다

ⓒ최미리 기자


지난 6월 27일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SF’를 주제로 삼은 이번 행사는 ‘로봇 특별전’, ‘지구 정복 괴수전’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중 가장 돋보인 프로그램은 VR 상영·전시 특별전 ‘Beyond Reality’였다. 각국의 VR 큐레이터들이 컨퍼런스에 참여했으며, 40여 편의 VR 작품이 상영되었다. 나는 VR에 대한 전문 지식 없이 크리스 래비스·매시액 슈져보우스키 감독의 <짐나지아>(Gymnasia), 클레어 드니 감독의 <하이 라이프>(High Life), 가엘 무어 감독의 <메커니컬 소울>(Mechanical Souls) 그리고 위멍두 감독의 <에브리띵 플로우즈>(Everything Flows)를 감상했다. 

  
<짐나지아>는 텅 빈 체육관, 음침한 합창단, 부서진 아기 인형 등을 소재로 삼은 공포물이다. VR 기기를 쓴 채 고개를 돌렸을 때 살벌한 인형을 발견하는 순간은 꽤 놀라웠다. 그러나 공포스러운 장치에도 불구하고 VR이 주는 효과가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결혼식 들러리 AI가 자신의 목적을 자각하는 내용의 <메커니컬 소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들러리 AI는 <짐나지아>의 인형처럼 경험자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렇지만 작품 속 인물이 경험자를 인지할 때의 충격은 이미 다양한 매체에서 자주 사용됐으며, VR 기기가 그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VR의 핵심은 완전 몰입과 상호작용에 있다. <짐나지아>, <메커니컬 소울> 모두 (시선 처리가 자유로운 VR의 특성상) 필요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경험자의 시점과 장면 전환을 유도하는 연극적 장치(푸른 나비와 진행자)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서사를 매끄럽게 이끌어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처럼 보였으며,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경험자가 (가상) 현실을 온전히 체험하고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VR의 방점인데, 정해진 서사를 진행시키기 위해 경험자의 자유도를 제한했기에 집중이 어려웠다.

  
<하이 라이프>는 동명 영화의 제작 과정을 VR로 촬영한 작품이고, <에브리띵 플로우즈>는 감독이자 주인공이 상기하는 고향의 모습을 다양한 질감의 그림, 사진,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영화와 달리, <하이 라이프>와 <에브리띵 플로우즈>는 특정 대상을 통해 경험자의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대신 영화 제작 환경, 그리고 기억 속 도시라는 풍경을 자유롭게 유영하기를 바란다. <하이 라이프>에서는 감독이 우주 공간에 등장해 영화와 관련된, 혹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를 나열하곤 하는데, 나는 자막이 지나치게 흐릿했던 탓에 감독의 프랑스어를 멍하니 경청했다. 그러자 그 순간만큼은 정보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듯했다.

  
<에브리띵 플로우즈>에서는 주변의 경치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나, 이는 서사의 진행을 위한 것보다는 감독 본인의 기억 속 불완전한, 무정형의 도시를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경험자의 시선 이동을 유도한다. 중년 여성의 품에 안긴 한 어린아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부분이며, 흐릿하고 난잡한 주변 풍경과 달리 뚜렷한 실사 영상이 등장한다. 경험자는 자연스레 그 아이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 푸른 수족관에 담긴 붉은 잉어를 발견한다. 경험자가 수족관을 발견하자 도시는 어둠에 잠긴다. 그리고 붉은 잉어만이 남는다. 그 순간 경험자는 감독의 흐릿하고도 초현실적인 도시 속에서 유일하게 잊히지 않은 것, 왜곡되지 않은 것, 기억되는 것과 함께하게 된다. 

  
VR은 종종 미래의 영화, 또는 영화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VR 영화는 바디 트래킹(사용자의 몸 움직임을 추적하는 기술) 기능까지 탑재한 게임과 달리 360도로 넓어진 시야각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며, VR 전용 기기(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없이는 온전히 몰입하기 힘들다. VR 기술이 영화의 경계를 확장시킬지, 혹은 영화와 전혀 다른 것이 될지는 판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에브리띵 플로우즈>의 마지막 장면은 이 행사에서 겪은 가장 근사한 경험이자, 누군가의 가상 현실에 ‘관람자’가 아닌 ‘경험자’로서 기꺼이 함께하고픈 순간이었다.



최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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