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9년 6월 17일

지나친 매끄러움
영화 <기생충>

▲<기생충> ⓒCJ 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2012)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9년 만에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받게 된 최고상이다. <기생충>을 관람하기 전, 나는 이 영화를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생충>을 관람한 후, 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기생충>에 대한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할 수 없었다. 영화가 좋았기 때문도, 싫었기 때문도 아니다. 영화가 너무나 잘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그리고 지나치게 매끄러운 영화였다. 그 기이할 정도로 지나친 매끄러움이 이 영화에 대해 아무 의견도 제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상영이 끝난 후 극장을 벗어나며 다른 관객들의 다양한 의견을 엿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굉장히 잘 만들어졌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다른 이는 이 영화가 지루하고, 개연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나는 영화가 끝난 후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불특정 다수의 일차적인 감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편인데, 이 영화에 한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정확하게 영화를 독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딱 그 정도의 독해 방식이 이 영화에 걸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군가는 <기생충>을 보며 김기영, 이마무라 쇼헤이, 구로사와 기요시 등의 이름을 생각해낼 수 있고, 각종 영화사적 레퍼런스와 기념비적 성취에 대한 헌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모든 것들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 이외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발견하고,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기생충>은 빈부격차를 주요 소재로 사용한다.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의 삶은 우연하게도 뒤엉키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기생충>이 스크린에서 상영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영화관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몰렸기 때문인지, 극장 직원은 미처 끝내지 못한 상영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또 다른 직원은 족해도 2~3시간은 걸릴 듯한 양의 쓰레기를 밖에서 혼자 치우고 있었다. 난 귀가하기 전 편의점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컵라면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난 짜파게티를 샀고 집에 와서 혼자 먹었다. 자취방에 쌓여있는 쓰레기들이 보였고 이내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만일 <기생충>이 고도의 메타 영화였다면, 놀라운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아니며, 이 영화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은 개봉 11일 만에 누적 7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극장에 간다. 그리고 관람이 끝난 후엔, 아마도 (나처럼) 짜파게티를 살 것이다.

 
나는 <기생충>을 관람한 후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고, 나름의 고민 끝에 이 영화에 실제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의 실제성이란 라캉의 실재(實在)일 수도 있고, 바쟁의 리얼리즘일 수도 있으며, 일상 용어로서의 리얼리티일 수도 있다. <기생충>이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 최고상을 받았기에, 그 사실을 대통령이 SNS를 통해 축하했기에, 국무총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기생충>의 수상을 ‘한국 영화 최고의 영예’로 여기고 있기에, <기생충>을 둘러싼 관람 경험은 특수할 수밖에 없다. 극장 앞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난 옆에 있던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그렇게 된 거야?” “왜냐하면, 돈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무시했잖아. 깔본 거지. ‘기생충’처럼.” 그리고 그들은 만족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타당하다. <기생충>은 그러한 깨달음을 준다.


최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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