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019년 6월 17일

여러분, 아싸여도 괜찮아

“인싸 되는 법”이 되어버린 한국의 대중예술

▲“성차별 저항 여성 대법관 영화 포스터에 웬 얼평?”, 국민일보, 2019.5.29


지난 5월 28일 CGV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연방 대법원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홍보 포스터를 공개했다. 포스터는 공개와 함께 논란을 빚었는데, 여성 비하적인 문구 때문이었다. 원본의 ‘justice(정의)’, ‘activist(행동가)’, ‘leader(지도자)’ 등을 ‘핵인싸’, ‘데일리룩’, ‘꾸,안,꾸’, ‘러블리한 날’ 등으로 오역한 것이다. 또한 성별에 근거한 차별을 철폐한 인물을 오롯이 외모로 대상화하여 영화의 본질마저 흐렸다는 점, 그리고 오역된 단어들로 인해 포스터 중앙에 배치된 배우의 얼굴이 주목받게 되었다는 점도 지적됐다. 왜 유독 포스터가 ‘한국’에서만 오역이 되어 배포되는지는 모를 일이다. 우선 오늘날 일상적으로 쓰이는 ‘인싸’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자.


인싸란,

‘인싸’란 무엇일까. ‘인싸’란 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로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며 항상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확장어로 ‘인싸템’,  ‘인싸포즈’, ‘인싸패션’, ‘인싸드립’ 등이 있다. 요즘엔 ‘펭귄 문제’(SNS에 유행하던 넌센스 퀴즈로, 정답을 맞추지 못할시 SNS 프로필 사진을 펭귄 사진으로 업로드해야 한다)가 ‘인싸 문제’로 인기를 끌면서 또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유행한 신조어들 가운데 ‘인싸’와 같은 뜻을 가진 단어들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중반기부터 유행한 ‘인싸’는 아직도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미디어, 광고, SNS 등에서 숱하게 보인다. 왜 유독 ‘인싸’ 만 오래 살아남는 것일까.

본래 인싸보다 먼저 유행한 단어는 ‘아싸’다. ‘아싸’의 반의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 ‘인싸’의 유래로 보인다. 아싸는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줄임말로 조직이나 무리의 중심부에 속하지 않고 단체생활에 잘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외향인과 내향인이라는 동의어와 달리, ‘인싸’와 ‘아싸’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즉, ‘아싸’ 성향에 부정적인 함의가 담기는 것이 문제다.

 왜 우리는 ‘아싸’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걸까. ‘인싸’ 신드롬에선 소속된 집단의 핵심부로 다가가려는 열망, 혼자 남기 싫다는 두려움, 그리고 유행에 뒤처지기 싫다는 욕망이 읽힌다. 학교나 직장 등 조직 내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심리도 느껴진다. 나아가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한국에서만 특별히 나타나는 생존 본능으로 볼 수도 있겠다. 가령, ‘인싸’ 문화의 주된 소비층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고 조직의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기피하는 10·20대다.


인싸와 SNS, 그리고 시장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건강하게 해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10·20대는 외모, 재산, 문화 소비와 같이 물질로 환원 가능한 것을 통해 인정 욕구를 충족한다. 이러한 물질적인 기준으로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자신의 시간과 재화를 소비한다. 이는 인간 본능의 문제에 가깝다. 문제는 시장이 ‘인싸’ 현상을 광고에 적용하여 소비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인싸템 아직도 없는 사람 없지?’ ‘인싸 되는 아이템’ ‘이거 없으면 아싸다’ 등의 획일적인 문구는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현대인은 SNS에 사진을 업로드하며 소비를 마무리 짓는다. ‘인싸 되는 법’의 시작이자 끝 역시 SNS다. 기막히게 다양한 ‘인싸’ 포즈들, 셀럽들이 읽은 것으로 유명해진 인싸 북(book), 인싸 뮤직(music) 등은 SNS에 사진을 업로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2019년 6월 13일 기준 인스타그램의 ‘#인싸’ 해시태그 수는 776,000건이다. ‘#인싸템’은 331,000건, ‘#인싸춤’은 11,100건이었다.


‘인싸’에 잠식되는 문화예술

 
‘인싸’에 합성되는 단어들은 대체로 문화예술 상품과 관련된다. 이는 ‘패션’, ‘노래’, ‘영화’, ‘책’, ‘춤’, ‘카페’, ‘게임’, ‘타투’ 등이 해당되며 이 역시 10·20대의 흥미거리와 일치한다. ‘문찐’(문화 찐따, 트렌드 문화에 뒤떨어지는 사람을 말한다), ‘일코노미’(1인과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로 혼자만의 소비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해 생기는 경제 현상), ‘탕진잼’과 같은 동시대 신조어 역시 ‘인싸’와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결국 해당 업계 종사자들은 상품과 서비스 등 각종 유·무형의 문화예술을 수요에 맞춰 공급할 수 밖에 없어지며 결국 한국의 문화는 ‘인싸’라는 단어에 잠식되어간다.

 
한국의 10·20대가 예술과 문화를 ‘인싸 되는 법’으로 치환해 소비하는 것은 유감이다. ‘인싸’ 예술을  공급할 수밖에 없게 된 이들에게도 위로를 전한다. 앞서 언급한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게 ‘인싸’라는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듯,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혼자여도 언제나 빛나길 바란다. 아싸여도 괜찮다.



김지연 기자
delay5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