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9년 5월 28일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영상원 미화 담당 박정애 씨 인터뷰

인터뷰는 정애 씨의 점심시간에 진행되었다. 목요일 점심마다 정애 씨는 다른 미화원 동료들과 함께 전통예술원 연희 실습장으로 향한다. 정애 씨의 동료인 정자 씨가 오디오 카세트를 들고 왔다. 정애 씨, 정자 씨, 종인 씨 세 사람은 카세트에서 나오는 국악에 맞춰 춤을 연습했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만 연습해서는 안되나 봐요. 되게 어렵네.” 세 사람은 멋쩍게 웃으면서도 동작 하나하나를 열심히 짚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영상원에서 인터뷰를 시작할 줄 알았는데, 전통원에서 뵙네요.


미화원들 소모임으로, 수요일과 금요일 점심에 선생님과 요가를 해요. 목요일 점심은 전통춤을 배우고요. 그래서 오늘은 여기 연희실습장에 왔어요. 전통춤 수업은 작년 2학기부터 시작했을 거예요. 전통예술원 선생님이 감사하게도 우리 팀원들에게 전통춤을 가르쳐주신다고 해서. 처음엔 몸도 뻣뻣하고, 일상에서 잘 하지 않는 동작들이라 어렵더라고요. 팔이 뻗어 나가는 선이라든지, 손끝도 섬세하게 해야 하고. 숨을 맘대로 쉬면 동작이 또 틀릴 것 같고, 그냥 막 몸짓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예쁘게 선을 만들고 다듬어야 하는 게 많아요. 시작할 때는 열댓 명이 같이 했었는데 몇몇 빠지고 지금은 우리 6명이 하고 있죠.


하루 일과는 어떠신가요?


오전 6시에 출근해서 기다리다가 6시 반부터 작업을 시작해요. 9시 반까지 1차 청소를 끝내고, 30분간 커피타임이 있어요. 그 후에 또다시 일하다가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에요. 그러고 나서 3시 15분까지 현장 마무리를 하고, 3시 반에 퇴근하죠. 각 원의 층마다 한 사람씩 배정돼요. 전 영상원 2층만 담당해요.


일찍 출근하시고, 일찍 퇴근하시네요. 퇴근하시면 무엇을 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니까, 집에 가면 피곤해요. 계속 몸을 움직이는 일이잖아요. 하루를 새벽부터 시작하니까 저한텐 3시가 저녁처럼 느껴지죠. 가서 집안일도 좀 하고, 쉬어요. 주말은 동호회 활동 좀 하고 그래요.


프로필 사진이 예술정보관에서 하는 수요영화관 배너 앞에서 찍으신 사진이에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문화의 날이라고 해서 한 명당 5만원씩 지원비를 줘요. 그걸로 영화도 보고, 볼링도 치러 가는데요. 그 사진을 찍었을 때는 회식을 좀 크게 하려고 (웃음) 학교 수요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갔죠. 그 사진에 나온 사람들은 다 우리학교를 청소하는 사람들이에요.


소모임도 그렇고, 미화원분들끼리 같이 문화생활을 많이 하시네요. 근데 오늘은 세 분밖에 안 오셨어요. 아까 대화 중에 오늘 못 오신 한 분이 허리가 아주 아프시다고 들었는데요.


이 전통춤 수업에서 제일 잘하는 언니인데요. 그 언니는 원래 몸이 안 좋았는데, 요즘 신경을 많이 써서 컨디션이 더 안 좋아 졌나 봐요. 여기 미화부 분위기가 요새 좀 안 좋아요. 이런 분위기는 작년 직접고용을 한 후부터 형성된 것 같아요. 원래는 저희가 용역 파견직이었는데요. 직접고용 될 때는, 근무도 편안하고 퇴직될 때까지 자리도 안정적이니까 좋다고들 했어요. 근데 분위기가 좀 살벌해진 거 같아요. 청소 일은 융통성있게 진행돼요.


공무원 일처럼 일정 시간마다 어떤 장소에서 몇 분만 머무르고 치우고 그런 게 아니라. 근데 이젠 현장에서 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시간 관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우린 여기서 10년 정도 이상 일했으니까 삶의 터전이란 말이죠. 편안한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충분히 잘 일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저번에 저는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귀국하고 나서 손자가 갑자기 온몸에 열이 나고 피똥을 싸고 그러는 거예요. 이제 돌 좀 지났는데. 그래서 대학병원 중환자실 격리병동에 입원했어요.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에 전염병 위험이 있어서요.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되어서, 사무실에 가서 반차를 내려고 했어요. 근데 관리자가 성질을 내면서, ‘미리 좀 내지, 왜 지금 반차를 내냐’고 하는 거예요. 아기가 아프려는 조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갑자기 열이 펄펄 나고 막 아프니까 급하게 병원에 간 응급상황이었는데 제가 어떻게 미리 알고 반차를 쓰겠습니까. 남이라도 가봐야 할 판에 할머니가 그럴 때 가만히 있어야겠냐고 한바탕 싸웠어요. 그때 참 화가 많이 났어요.


그렇죠, 서로의 환경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게 많이 어려울까요. 조금만이라도 이해해주면 될 텐데요. 그나저나 굉장히 오래 일하셨네요, 혹시 이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컴퓨터 자수 박는 일을 했어요. 옷에 로고 같은 걸 수놓는 거예요. 한 15년 정도 했어요. 한 회사를 계속 다닌 건 아니고 그런 일 하는 곳을 돌아다니면서 일을 했죠.


우리학교 노동조합 미화 부분회장을 맡고 계신다고 하셨어요, 옛날 그 일을 하셨을 때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셨나요?


아뇨, 그땐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한예종에 와서 노동조합을 알게 되었는데, 처음엔 제가 분회장을 했어요. 초기엔 어떻게 우리 요구를 전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답답한 일도 많았는데, 차츰 소통 방법도 터득해서 지금은 좀 나아졌죠. 지금도 근무환경이나 복지가 아주 완벽하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요. 분회가 당당하고 힘이 세면 중간 관리자들이 존중을 잘 해주려고 해요. 그래서 조합원들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잘 전하려고 해요.


노동조합이 원래는 없었는데 2012년쯤에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서 생겼어요. 돌곶이 포럼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그땐 학생들이랑 우리랑 붙어있는 것만 봐도 관리자 쪽에서 날벼락이 떨어지니까 대놓고 얘기하지도 못했죠. 누구 오면 학생들이랑 우리랑 따로 각자 일하는 척하면서 몰래 얘기했어요. 참 답답했어요.


사립대학은 조교들의 처우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들었어요. 국공립학교는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어떤가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조교들이나 다른 노동자들이랑 계속 얘기하면서 조정 중이고요. 사립과 국공립의 차이라기보다는 기관마다 어떻게 하냐가 중요한 듯해요. 오히려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더 좋다고 보긴 어려운 것 같아요. 절차나 서류상으로는 갖춰져 있어도 교묘하게 그걸 피해서 돈을 덜 주거나 혜택을 덜 주는 것도 있어요. 직접고용도 완벽한 대안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원래 용역 직원에게 주던 상여금 같은 것도 삭감되었어요. 방학 때는 근로시간이 줄었다고 봉급을 덜 주거나 아예 일을 못 나온 사람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중간 관리자들이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품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잘해 주시고 있지만, 더 가족적인 분위기면 좋을 것 같아요.



김가은 기자
kobbaram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