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9년 5월 7일

그들이 사는 세상
이야기라는 씨실, 음악이라는 날실



학교에 다니는 누군가는 예술가를 꿈꾸고, 누군가는 교육자를 꿈꾼다. 가까우면서도 먼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자 도전이다. 이미 상당한 졸업생들이 그 도전에 멋지게 성공할 수 있다고 증명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영화음악 작곡가 권현정 씨를 만났다. 권현정 씨는 우리학교 전문사 영화과를 졸업했으며, 영화 △족구왕 △소공녀 △페르소나(키스가 죄)의 작곡을 맡았다. 2015년 영상원의 공통 필수 과목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인기 교양과목으로 자리 잡은 <영상 음악>을 강의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수업에서는 자세히 들을 수 없었던 ‘예술가’ 권현정 씨의 삶과 음악에 한껏 빠져보았다.

음악감독 권현정 씨


Q. 가장 최근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페르소나’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전고운 감독님과 소공녀에 이어 함께 작업하셨는데 감독님과의 케미가 어떤 것 같나요?
여러 영화감독과 영화음악 작곡가 콤비처럼 앞으로도 함께 활동할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음악감독은 감독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는 감독과 작업을 한다기보다 모든 감독과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 호흡이 잘 맞았다 해서 전고운 감독님이 다음 작품에서도 저와 함께 작업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해요. 히사이시 조 같은 경우도 미야자키 하야오랑 작품을 계속했지만 항상 다음에는 자신과 함께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고 불안하다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어요. 모든 음악감독은 같은 입장일 것 같아요.



Q. 작곡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화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음악감독님이 생각하시는 ‘키스가 죄’의 관람 포인트가 있다면?



<키스가 죄>는 <페르소나>라는 옴니버스 영화의 한 부분이다 보니 각 에피소드마다 변화하는 아이유의 연기가 관람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특히 <키스가 죄>에서는 겉으로는 불량해 보이지만 사실은 키스 한번 못해본 여고생 한나가 주인공이에요. 아이유가 연기한 한나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 저와 감독님의 공통된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한나가 처음 등장하는 오프닝 음악이 특히 중요했고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곡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감독님은 여자들이 멋있을 때를 상상해 보면 좋겠다고 하셨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여전사 같은 느낌의 한나가 탄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음악을 사랑하고. 영화의 어떤 점에 끌려 영화음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원래는 영화음악을 하고 싶어서 작곡을 전공했는데 실제 영화음악을 하게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작곡과를 졸업하고 합창단에서 편곡자로 일하던 중 더 늦기 전에 영화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하려면 영화를 좀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최고의 영화 학교에 입학을..(웃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궁금했고,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알고 싶었어요. 영상원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다보니 더욱 더 영화 작업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의 협업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어요.


또, 영화음악은 오직 그 영화만을 위해서 작곡되는 음악이잖아요. 어떤 영화를 생각하면 그 영화에 나왔던 음악이 생각나고, 반대로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이 나왔던 장면이 함께 떠오르고. 그런 점들 때문에 영화음악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음악은 영화에 맞게 클래식, 재즈, 밴드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작곡해야하는데,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면서 동시에 다른 분야의 작곡가들은 겪어보지 못할 즐거움이기도 해요.



Q. 보통 시나리오 단계에서 수십개의 곡을 먼저 작곡하신다고 들었는데, 후에 최종적으로 일부만 사용하게 되면 감정적, 육체적인 소모가 크겠어요.



혼자 작업하든 팀으로 작업하든, 한 장면에 어울리는 한 곡의 음악 뒤에는 수십 개의 버려지는 곡들이 있어요. 팀마다 작업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제가 속해 있었던 팀에서는 팀원 모두가 같은 장면의 곡을 썼어요. 거기서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 사용되고 나머지는 버려지는, 일종의 경쟁인 거죠.


하지만 그 영화에 사용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영화에 비슷한 장면이 있을 때 편곡을 하거나 악기를 바꿔서 사용하기도 해요.



Q. 작업했던 모든 작품을 포함해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하나만 꼽자면 어떤 영화인가요?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가지만 <족구왕>은 첫 장편 영화 작업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아요.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렀고 예산이 적어 제작 환경 또한 열악했어요.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범죄의 여왕>은 처음으로 OST가 발매되었던 영화라 기억에 남아요. 보통 영화 사이트에서 별점을 줄 때 영화 이야기만 하지 영화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지만, 음원사이트에서는 음악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작곡가로서는 몹시 뿌듯했습니다.



Q. 사실 음악이랑 사운드는 매우 밀접하지만 동시에 매우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음향을 공부하신 게 영화음악에 큰 도움이 되셨나요?



영화 속 음악은 필요할 때는 드러나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영화 속에 잘 묻혀 있어야 해요. 대사를 방해해선 안 되고 여러 겹의 사운드 중에서 음악 혼자 튀어서도 안 되고. 영화음악을 할 때 고려해야 하는 많은 부분을 영화 사운드 공부를 통해서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영화에 따라 사운드디자인적인 음악을 작곡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영화 사운드를 공부하며 배웠던 것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Q. 몇 년 전부터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우리학교에서 교양 수업을 강의하고 계신데, 학생이었을 때의 학교와 선생님일 때의 학교는 어떻게 다른가요?



학생이었을 때 학교는 마냥 설레는 곳이었어요. 계속 음악만 공부하다 새로운 것을 배우다 보니 두렵기도 했지만, 영화 찍는 과정도 몸으로 배우고, 사운드나 시나리오 분석 등 영화음악 작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도 많이 배웠으니까요.


해마다 영상음악 수업을 하면서도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매년 수업을 준비하면서 책도 많이 찾아보고 음악도 많이 들어보고 영화도 많이 보고 있어요. 그런 준비들이 제 작업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학교에서 따로 영화음악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같은 수업이라도 매해 많은 것을 새롭게 배우고 있어요.



Q. 수업을 진행하시면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이 있을까요?



첫해에 <영상 음악> 수업은 교양이 아니고 영상이론과 강의였어요. 영상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학생들이 영상 작업에서 음악 감독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목표였어요. 감독님들을 만나보면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 아니고서는 영화음악에 대해 잘 표현 하실 수 있는 감독님들이 잘 없어요. 이후 교양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정말 다양한 과의 학생들이 많이 듣고, 오히려 영상원 학생보다 음악원 학생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은 영화음악을 좀 친근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영화 관람 후 크레딧을 보고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예요. 보통은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지금 나오고 있구나’하고 인식을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를 볼 수 있다면 굉장히 뿌듯할 것 같아요. 크레딧은 스코어가 나오기도 하고, 영화를 만든 스텝들을 이름을 봐줄 수 있다면 이 수업은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크레딧까지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Q. 곡이 잘 써지지 않을 땐 어떻게 하시나요?



밖으로 산책하러 나가요. 음악 작업을 하다 보면 귀가 피곤해서 이어폰도 꽂지 않고 일단 걸으러 나가요. 그렇게 그냥 걷거나 요리를 하거나 아니면 곡이 써질 때까지 그냥 억지로 앉아 있을 때도 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 영화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고 하고 있어요. 그 외로, 여행에서 썼던 곡들을 모아 앨범을 내려고 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뮤지션,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앞으로 더 다양한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곡을 쓰는 일은 힘들지만 영화가 완성되고 크레딧을 볼 때면 그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는 것 같아요.



김여진 기자
eura0811@gmail.com
취재도움: 박윤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