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9년 4월 15일

이강숙 문희자 부부 작품기증展


강의실이 부족하여 화장실에서 수업을 받은 적 있는가? 초대 총장 이강숙 씨가 기억하기로 우리학교는 “그야말로 백지상태, 무(無)에서 시작”했다. 2002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강숙 씨는 처음에는 신설 학교의 운영을 맡지 않으려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곤혹스런 얘기들이 들려오더군요. ‘평소 그런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어 대더니 기회가 찾아오니까 뿌리치는 것은 또 뭐냐’고 말이지요. 결국 ‘그래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맡게 됐던 것입니다.”


당시의 마음을 이강숙 씨는 2016년 3월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그것은 ‘행동음악학’이자 ‘행위비평’이었어요. 글로 하는 음악학과 행동으로 하는 음악학은 다른 법이죠. 많은 이가 음악의 본고장은 저기(유럽)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는 이제부터 본고장은 이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전 세계 예술학교들의 모방 대상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됐죠. 처음에 줄리아드 음악원 같은 학교를 만들라고 했는데, 그때 모방을 하던 우리가 이제는 강충모 교수 같은 이들을 줄리아드 음악원으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예술교육기관 확립을 위한 이강숙 씨의 열정은 예술과 예술가, 넓게 잡아 문화 자체에 대한 애정과 떨어져 있지 않다. “예술가들이 질식하지 않고 가장 최선의 자기를 찾을 수 있고, 획일화되지 않은 최상의 자신을 일궈 나갈 수 있도록 이상적인 컬쳐를 만들어주는 것”이 이창욱 씨가 추구한 예술교육의 큰 틀이다. 유학만이 예술의 유일한 길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이강숙 씨는 학교 관련 자료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음악 자료를 비롯한 개인 소지품, 뿐만 아니라 아내 문희자 씨의 작품 200여점과 오경현 전 미술원장의 작품 2점을 포함한 미술품 280여점을 우리학교 발전재단에 기증했다. 지난 3월 27일 발전재단은 이강숙 문희자 부부의 기증을 기념하는 특별전시를 우리학교 석관 캠퍼스 본관 갤러리에서 개최했다.


문희자 씨의 수많은 그림 가운데 필자는 빨래판을 이용한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을 재해석한 예술적 성취가 돋보였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동기가 문득 궁금해져 작가의 프로필을 찾아보았고, 조금 특별한 이력이 눈에 띄었다. 문희자 씨는 70대 중반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숙명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국 여성들이 그동안 받아온 교육 또는 억압을 평소에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하던 물체를 통해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숨어 있는 색을 발견하는 눈”이 생긴 문희자 씨는 “늦게나마 그림을 배우면서 이제껏 못 보던 세계를 보게 됐다”.


이강숙 문희자 부부가 방문하기 전부터 갤러리는 분주했다. 관람객들을 위한 크누아 첼로 앙상블의 첼로 연주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호 교수와 우리학교 음악원 기악과 첼로 전공 학생들로 구성된 “크누아 첼로 앙상블”은 요한 스트라우스 2세(J. Strauss II)의 <박쥐 서곡 (Die Fledermaus – Overture)>, 엔니오 모리꼬네(E. Morricone)의 과 같은 곡들을 준비했다. 섬세한 첼로 선율은 전시회 갤러리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마련된 음식을 먹으며 이강숙 문희자 부부를 포함한 관람객들이 첼로의 선율과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는 모습에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다만 짧은 전시기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강숙 문희자 부부가 여전히 우리학교의 발전과 성장에 큰 관심을 보인다는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와닿았다.



홍유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