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9년 3월 27일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인터뷰



2017년 활동을 시작해 지난 2월 두 번째 단행본을 공개한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http://heterophony.kr)를 소개한다.


『HETEROPHONY#2』 Ⓒ양민영 디자이너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를 소개해주세요.


“헤테로포니(Heterophony)”는 2017년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 비평가 ▵성혜인 ▵이승린 ▵정구원 ▵신예슬이 모여 만든 음악비평동인입니다. 각 비평가는 국악/전통음악, 노이즈/실험음악/즉흥음악, 대중음악, 클래식/현대음악을 거점으로 하지만 그 사이를 배회하며 다양한 접점을 자유롭게 탐색합니다. 비평의 관습적 문법을 비틀고 활자로 수렴되는 비평을 지면 밖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비평동인’으로서의 헤테로포니에 호기심이 생깁니다. 비평동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기능하나요?


헤테로포니라는 비평동인을 만들게 된 것에는 현대의 음악이 점점 더 자신이 속하는 경계를 허물고 서로 섞이고 있다는 인상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장르 사이의 음악, 장르를 교차하는 음악, ‘변칙’으로 취급되는 음악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음악이 섞인지 너무나 오래되었는데 비평의 지면이 정해진 경계를 따라 갈라져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장르의 동료 비평가들과 ‘음악’이라는 공통분모에 관한 생각을 나누고, 서로 다른 영역을 전문으로 하는 비평가들끼리 발생하는 차이를 논할 수 있으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여기에 대해 비평동인이라는 형식을 취한 것이 사실 특별히 ‘새로운’ 시도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다른 관점과 공통의 관심사를 지닌 이들이 매체를 만드는 것은 현대에 들어 점점 더 쉬운 일이 되고 있으며, 최근의 미술 비평에서 온라인상의 새로운 비평 콜렉티브가 생겨나고 있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가 각 필자가 속해 있던 기존의 비평계나 기성 매체의 논점, 혹은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많은 가능성을 불어넣어 주는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포획된 찬사: ‘씽씽’을 둘러싼 승인의 제스처들」과 「팬덤 비평의 가능성 혹은 한계, 『BTS 예술혁명』」 같은 일종의 ‘메타 비평’을 쓸 때 발생하는 어려움과 즐거움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정구원 : 메타 비평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메타비평’이 기본적으로 자신과 다른 시각의 비평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 우선 주목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비평에 대한 비판은 ‘메타’라는 접두어가 주목을 받기 이전에도 늘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메타 비평이 어떤 단일한 비평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더 나아가 비평계, 혹은 음악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고정관념이나 가정을 깨뜨리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의 접근을 요한다는 점이 차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기본적으로 다른 관점에 대한 비판이 내포된 작업이 특별히 즐거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특정 예술 작품에 대한 비평보다 다른 관점의 허점을 짚어내고, 더 나아가 그 허점에 내포되어 있는 낡은 관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작업이 훨씬 더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행위라는 것을 늘 상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메타’라는 접두어에 녹아든 ‘전지적 관찰자’적인 느낌에 취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특정한 입장에 대한 반박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단단한 감각을 글에 부여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성혜인 : 「포획된 찬사: ‘씽씽’을 둘러싼 승인의 제스처들」은 엄밀히 말해 메타 비평의 부족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글은 아닙니다. 현재 국악계에서는 대중음악 혹은 타 장르와의 이종교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시의성 있는 비평은 대부분 대중음악계에서 이루어지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음악을 둘러싼 헤게모니 문제를 배제한 비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중음악 비평가들의 권위가 이러한 담론을 비판 없이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비평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메타 비평을 선택하기보다는 전통음악 그 자체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타 비평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평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대상이 되는 글을 꼼꼼하게 독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글이나 글쓴이를 특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이 매우 크지만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편향을 글을 통해 추론해내고 그 편향이 생겨난 경위에 대해서 밀도 있게 고민하다보면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향과 성향을 막론하고 국내 비평 제도권 안에서는 청각 경험이 시각 경험보다 덜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동시대의 청각 경험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이승린: 노이즈와 실험음악 영역을 리서치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청각성이 시각성에 비해 덜 주목을 받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청각을 열등한 감각으로 위치 지운 다음, 이제 새롭게 주목해야 할 ‘대안적’ 감각인 것처럼 강조하는 사례도 자주 보았습니다.


많은 예술적 경험들이 시각 중심적으로 구성돼 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수긍이 가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제게 무의미한 말이 되기도 합니다. 미술관이나 전시공간을 찾았을 때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등의 작품을 통해 관객이 일차적으로 요구받는 것은 아마도 ‘잘 보는 것’일 것입니다. 시각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듣기의 영역이 시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어왔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각의 우세함을 비판하며 청각의 대안적 가능성을 말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소리의 시각화나 미술의 음악 ‘되기’ 같은 시각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논의들도 제가 추구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청각은 시각과 다른 기능을 해온 감각이고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 자신만의 듣기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소리를 통한 청취 경험이 현대사회의 이슈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사유 방식으로서 작동할 수 있다고 보고, 이런 관점에서 요즘은 ‘미술관’에서 음악과 소리를 듣는 것에 대해 리서치를 하고 있습니다. 시각예술처럼 가벽으로 봉쇄가 안 되는 소리의 흩어지는 특성상, 미술관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의 청취 경험은 소리가 침투해 있는 다양한 동시대 예술에 여러가지 질문이 가능하도록 저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신예슬 : 저의 출발점은 언제나 음악이었기 때문에 음악 안에서는 시청각의 충돌이나 위계를 굳이 느낄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만 소리를 포용한 시각예술의 사례들을 접하면서 그 위계를 찾을 수 있었고, 청각이 ‘덜 주목받은 감각’으로 여겨지며 시각예술의 장 안에서 자꾸 뭔가를 증명해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흥미롭기도 했어요. 그런 광경을 목격하며 반대로 음악에서는 시각 경험이 얼마나 덜 주목되어왔는지를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다만 ‘동시대의 청각 경험’이라는 말은 몹시 고민이 되는데 그 이유는 청각 경험의 범주를 음악이나 미술 등 특정 예술분야로 삼을지, 혹은 모든 시공에서 ‘듣는 것’으로 삼을지에 따라 제가 생각하는 경험의 양태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호하게나마 답해보자면, 저는 동시대에서 무언가를 예민하게 듣는 경험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소리가 지나치게 많은 공간도 참 많고, 소리를 안 들을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이 누적된다면 감각 자체가 둔해질 거라고 봅니다. 소리는 어디에나 있고 귀는 언제나 무언가를 듣고 있고 수많은 예술이 소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존재감이 스멀스멀 멀어진다면 아무래도 좀 아쉽겠죠. 소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듣는 게 무엇인지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무언가를 듣는 경험이 적어도 제게 무슨 짓을 하고 정확히 어떤 즐거움을 주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때때로 듣기를 차단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대 중인 공연이나 그간 즐겨 들은 음악이 있으신가요?


최근 필자들 각자의 분야에서 기초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는 공연을 추천을 통해 함께 관람한 뒤, 해당 공연에 대한 짧은 감상을 모아 보는 새로운 기획을 진행 중입니다. 필자들이 모두 음악을 청취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서 각자의 특화된 부분이 있다 보니, 그것이 하나의 공연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첫 공연으로는 지난 3월 16일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 정악, 깊이 듣기>를 함께 관람했고, 곧 이 공연에 관한 글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김태원 기자
lemonadegogo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