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9년 3월 27일

예술가를 꿈꾸며

신춘문예 당선자 김혜지, 이병현 인터뷰

 

우리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김혜지 씨는 이번 2019 매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꽃>으로 당선됐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현실이 픽션보다 무참할 때, 픽션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내며 진실을 담은 픽션을 만들어내는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춘문예 당선자 김혜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요?


회사 4년차 쯤에 선배의 권유로 문화센터를 다닌 때부터에요. 제가 소설을 좋아했지만 쓰는 건 ‘감히’라는 생각에 겁내고 있었는데, 거기서 수업을 들으면서 쓰기 시작했죠. 이번 소설은 특별히 신춘문예 출품을 위해서 쓴 건 아니에요. 그냥 소설 쓰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카피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쓰는 거라면 소설은 내 맘대로 써도 되니까 그것만으로도 신나더라고요. 첫 소설 선생님이셨던 백민석 선생님이 감사하게도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신춘문예에 투고하기 시작했어요. 그 후로는 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매년 거르지 않고 투고했어요. 계속 떨어져도 꾸준히 습작을 하고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 잠시 멈추게 됐어요. 근데 연말 신춘문예 시즌에 아까 말한 그 선배를 화장실에서 마주쳤는데, 선배가 예전에 쓴 소설이라도 내보라고 해서 투고한 게 이번에 당선된 그 소설입니다.



이번 소설에 대한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소설을 읽으신 분 중에는 소설에서 어떤 대사나 장면들이 너무 적나라해서 폭력적이라고 느낀 분들도 있었어요. 저도 고려를 많이 한 부분인데, 어떤 이야기는 이렇게 날것 그대로 던져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재 자체가 신선하지 않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주인공을 왜 꼭 죽여야 했냐고 화를 내시는 분도 있었어요. 그래도 저는 주인공의 감정이 읽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문학이기 때문에 그런 장면을 순화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기만이라고 느꼈어요.



‘꽃’이라는 제목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결말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 장면을 먼저 생각하고 쓰신 건지 아니면 다 쓰시고 제목을 정한 건지 궁금합니다.


제목은 소설을 다 쓰고나서 떠올랐어요. 이야기를 쓸 때, 시작과 끝은 정해놓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학교 옥상을 향해가고 있는 거로 시작되고 옥상에 도착하기까지 그사이 사이에 이 친구가 과거에 겪었던 일이 플래시백처럼 들어가는 것으로 구상했어요. ‘꽃’이라는 제목은, 발화하는 이미지만 연관되어있다기보다는 이 친구가 ‘꽃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지은 것 같아요.



시나리오나 소설을 쓸 때 사건 진행이 먼저라고 생각하세요, 인물의 감정이 먼저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시나리오는 플롯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편 상업영화를 기준으로 했을 때, 100분가량의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하잖아요. 제 시나리오를 쓸 때도 플롯팅을 적재적소로 해둘 수 있는가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근데 또 독립영화는 캐릭터 위주로 가는 게 맞는 것같고요. 거기서만 만날 수 있는 독보적인 캐릭터들이 생기니까요.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는 인물이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습작을 하면서 어떤 소설은 인물을 따라가면서 쓰기도 하고 어떤 소설은 플롯을 미리 박아두고 썼어요. 근데 플롯을 미리 확정하고 쓰는 건 제가 재미가 없는 거예요. 너무 가공된 이야기같고. 그래서 캐릭터가 중시되는 것 같아요.



우리학교 영상이론과 17학번 이병현 씨는 2019 부산일보 신춘문예에서 영화평론 <0과 1이 된 링 컨과 릴리안 기쉬>로 당선되었다. 그는 본 수상으로 ‘영화의 기압권’에 다가가게 해줘 감사하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그의 삶에서 글쓰기란,영화 비평 쓰기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알고 싶어 인터뷰했다.



당선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평소에 글쓰기 ‘습관’이 따로 있으신가요?


감사합니다. 당선 소감에는 매일 성실하게 쓰겠다고 했는데, 부끄럽게도 매일 쓰고 있진 않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 몰아서 그 주에 본 영화들에 대해 짧게나마 적고 있어요. 특별한 습관이라 할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읽다 보니 자연스레 ‘나도 글을 써서 책으로 내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하는 책들도 많았고요. 소설의 경우엔 공모전도 많고, 인터넷에도 연재 사이트가 많잖아요? 거기에 써 올리면 댓글이 달리고, 그게 재밌어서 계속 썼네요.



현재 영상이론과 전공 중이신데요, 영상이론과에 들어오신 계기는 무엇일까요?


제가 지금은 17학번인데 전적 대학에서는 12학번으로 문예창작과를 다녔습니다. 그때는 소설가 지망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제가 소설이랑 영 적성이 안 맞더라고요. 문학비평에는 흥미가 없었고요. 소설가 지망생 시절에도 원래 영화 보는 걸 즐겨서 평론도 취미 삼아 쓰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평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아예 대학도 옮겨야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평론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으니 1학년부터 다시 배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해서 지원했습니다. 전적대 휴학하고 탱자탱자 노는 동안 시네마테크나 이런 데 영화 보러 다닌
것도 영향을 줬고요. 평론에서 ‘링컨 이미지’라는 용어가 참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릴리안 기쉬가 시스템 내소외된 타자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이런 관점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걸까요 아니면 언급하셨던 듀나의 평론을 읽으면서 생긴 것일까요?


제가 만든 용어는 아니고요, 제가 인용한 에세이를 쓴 톰 거닝이라는 학자분이 사용한 용어입니다. 저도 제가 인용한 글만 보고 쓴 거라 비평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인지는 모르겠네요. 아마 뭔가 정식으로 정립된 단어나 학술용어는 아닐 거라 짐작합니다. 릴리안기쉬에 대한 생각은 듀나의 평론보다는 다른 페미니즘 영화이론가들의 글을 읽으며 품게 됐습니다. 콕 짚어서 누구라고 말하긴 힘드네요.



영화 평론을 쓰는 루틴이 있을까요? 영화를 최소한 몇 번 보고, 시퀀스별로 나눠서 하나하나 분석하는지 아니면 시청 후에 머리나 가슴에 남겨진 굵은 생각을 써 내려가는지?


먼저 아무 생각 없이 이 영화 저 영화 봅니다. 그런 다음 그 영화들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은지 안쓰고 싶은지 마음을 정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해당 영화를 다시 돌려보고, 특정 장면은 반복해서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볼 때 숏 바이 숏으로 분석하죠. 질문에서 하나하나 분석하는 것과 굵은 생각을 써 내려가는 것을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설정하셨는데, 저는 둘 사이에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없다고 봅니다. 마침 최근 읽은 책에서 비슷한 구절을 발견했는데, “감정은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 (수지 린필드, 나현영 역, 『 무정한 빛』, 2018, p.36.)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저도 글을 쓰다 보면 대중과 팬덤을 혐오하게 될 때도 있고, 반대로 엘리트주의에 역겨움을 느낄 때도 있고, 양가감정이 들곤 합니다.



김가은 기자
kobbaram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