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기다리며 제2편 –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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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만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적절하고 똘똘하게 제 일과 스트레스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주며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삶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어리석었고 그래서 무작정 열심히 하면 다 되는 거라고 생각을 했다.
으레 겁을 먹고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모처럼의 휴일에는 가족과의 산책 대신 작업구상을 했고, 오랜만에 동창회라도 열릴 새면 그 대신 전공 관련 책자를 집어들었다. 나의 이런 패턴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과도 점점 멀어졌고, 옛날 친구들과 만날 시간적 심적 여유도 없었다. (게다가 어느 시점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즈음 그들을 만나게 되면, 단지 서로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 서로의 삶을 잘 모르는 것뿐인데 나는 그들을 나와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나를 조금도 이해 못 해주는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작업에 매달리게 되었고, 그럴수록 맹목적으로 작업의 결과에 더 집착하며 작은 코멘트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게 되었다. 찰나의 일희는 굵직한 물방울이 되어 가느다란 실 위에 떨어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켜 그에 취해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기도 했고, 순간의 일비는 매섭게 뺨을 스치고 가 그 뒤에 남겨진 난 얼얼해진 마음과 억울함, 분노를 가슴에 깊이 품고 그것이 불어온 방향을 향해 저주를 쏟아붓곤 했다. 못난 것, 모자란 것, 부족한 것에 집착하며 무던히도 자신을 괴롭혔다. 물론 그 덕에 단시간 내에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열심히 달리는 두 다리에 적당한 근육이 붙기 전에 무릎 관절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고, 뛰어야 할 거리가 뛴 거리보다 더 많이 남았는데 이미 숨이 가빠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젖혀두고 무작정 발을 내딛고 빨리 달리는 것에 급급했다.
망아지로 살기로 한 것은, 비단 졸업을 앞두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내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인 것이다. 졸업이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서막을 알리는 지점에 불과하니까, 이제 슬슬 포크로 먹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하니 어디 한번 젓가락을 들어볼까, 하는 자세의 전환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누군가의 귀에는 엄청난 자기 위로쯤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렇다. 나는 주말에 누군가를 만나거나 만화책을 집어 드는 대신에 과제를 붙들어 매고, 작업을 더 세공하고, 오롯이 그것에 관련된 고민만을 했고 그것이 서점의 각종 자기계발서가 말하듯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효과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뭐 그런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근데 그러다 보니까 이게 제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억울한 것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백번 당연한 건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나의 작품을 비판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나 혹은 일종의 억울함을 갖는다는 건 내가 여유 없게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몰아붙여서가 아닐까. 내가 어떠한 이유를 가지고 그것들을 취사선택하며, 그것에 의해 작업을 한 게 아닌, 그렇게 취사선택함으로써 보일 것들을 기대하고 바라고 나 스스로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하였으니 억울할 수밖에. (거기엔 내가 없으니까!) 나는 작업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결과에 졸아붙은 그런 늘보였다.
그래서 조금 더 제멋대로이고 뭔가 어설프더라도 제 뜻대로 고삐를 흔들려 춤을 추는 망아지가 되려는 것이다. 혹시 몰라,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방탕스럽게 지내고 난 뒤에 생각지 못한 무언가를 내 안에서 발견하게 될지. 이 방법이 좋은 거일 수도 아닌 거일 수도 있는 건데, 노년의 모 여배우 말처럼 처음 사는 인생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건 한낱 중생인 지금의 내 역량으로 판단해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난 비교적 아쉽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떠나려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조금 더 괜찮게 살아보려고 한다.
(십대 시절 난 연고 없는 늙은 노인 아래에서 1년 정도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그분은 늘 음식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이셨고, 땅거미가 지기 전까지 대부분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곤 하셨다. 매일 정원의 꽃을 가꾸고, 그리곤 그것을 한참을 바라보는 그분의 느긋함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때때로 나는 그분에게 왜 그런 풀더기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때 그분은 나의 태도와 달리 여유롭게 웃어 보이시면서 내가 좀 더 크게 된다면 내 주변을 둘러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좀 덜 비극적일 수 있을 것이라 했다―당시 노인은 더 긍정적이라는 말 대신 덜 비극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어떤 사람은, 반 고흐의 작품은 그의 깊은 고통과 불행한 삶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편의 누군가는 반 고흐가 좀 덜 비극적이었다면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을 것이라 한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다소 불행한 듯한 내 마음속 요소들이 나에게 예술가적 기질을 제공해준다고 꽤나 착각하곤 했다. 앞서 한 말들에 덧붙여 보자면, 무작정 열심히 달리는 것과 그럴듯한 우울한 감성에 취하는 것…. 나에게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선, 그렇다.)
백동필 (영상원 영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