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8년 12월 9일

제 6회 「여성, 괴물 – 부활」

해석하며 전복하기 – “당신은 여성괴물과 함께 강해집니다”.


환상 밖에서, 우리는 헤엄칠 것이다, 지옥에서와 같이. – 아비게일 차일드, 『인공 기억』 (Artificial Memory)

영화란 환상이다. 이때 환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영화라는 단어의 의미 역시 변할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환상을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과 “감각의 착오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보이는 환각 현상”, 곧 환영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공상의 방식을 상상할 수도, 현상의 이유를 추적할 수도 있다. 두 과정이 분리될 수 없는 경우도 물론 가능하다.


환상은 종종 유령과 유령성의 은유를 통해 나타난다. 유령은 민담이나 설화를 거쳐 고딕 ⠂환상 문학, 노래, 회화나 도상에서 비로소 그 모습을 체계화한다. 공포 영화에 이르면 유령은 명백한 지시성을 획득한다. 우리의 눈과 귀 앞에 있는 (또는 없는) ‘저 사람’이 유령인 것이다. 당장 귀신이나 마귀를 떠올려보자. 무엇이, 정확히 말해, 누가 떠오르는가?


서구권에서는 마녀를, 한국인은 처녀 귀신을, 공통적으로는 ‘마귀 들린/들리는 여성’이나 ‘빙의된/시키는 여성’을 떠올릴 것이다. 앞선 질문을 바꿔보면, 이들은 ‘어떤’ 사람인가? 2017년 3월부터 이어져 지난 12월 1일에 6회를 맞은 행사 「여성, 괴물」(The Monstrous Feminine)의 쟁점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들, ‘성난 자매들’(savage sisters)은 공포 장르를 비롯한 영화와 대중문화 전반에서 여성과 여성 괴물 그리고 괴물이 나타나는 방식과 그 이유를 묻는다.


「여성, 괴물」의 지난 시간들에 대한 짧은 메모

「여성, 괴물」은 “뱀파이어”라는 키워드와 함께 그 첫 회차를 선보였다. ‘다양한 장르 영화를 함께 보는 상영회’라는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 「여성, 괴물」은 두 번째 회차에 이르러 낭독 퍼포먼스 ⠂공연 ⠂영상 전시 ⠂부스 행사도 진행하기 시작했다. 주된 화두는 일상적으로 이야기되는 ‘모성’에 반하는, 스크린상의 ‘나쁜 엄마’에 대한 공포와 매혹이었다. 공연에는 ▵ ‘dambi’ ▵ ‘헬준’ ▵ ‘75A’의 ‘Oyo’가 함께했다.


“Mother” 낭독 퍼포먼스, 낭독 디렉팅 – 해준


3회차(2017.07.30) 이후로는 강연, 이야기, 토론의 형식을 갖추며 페미니즘 영화이론의 명맥을 드러냈다. “전염하는 비체”(Contagious Abject)가 그 주제였으며, ‘전염하는 비체’란 「여성, 괴물」의 영감이 된 영화이론가 바바라 크리드의 저작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속 개념이기도 하다. 4회차(2017.10.29) “피의 마녀들”에서는 드랙 퀸/킹 퍼포먼스, 디제잉, 생리대 화형식 및 거리행진이 이루어졌다. ‘코스모스 슈퍼스타’, 그리고 ‘아를’과 ‘위지영’이 결성한 밴드 ‘angelepilepsy’가 디제이로 참여했다. 당시 현장을 맛볼 수 있는 믹스는 angelepilepsy의 사운드클라우드에 개제 되어있는데, 사견으로는 그해 최고의 믹스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 ‘호소 헤일리 사탄’ ▵ ‘뽀뽀 페이’ ▵ ’Charlie Solitá’ ▵ ‘제시카 스트러글라이브’ ▵ ‘아장맨’이 드랙 퀸/킹으로 데뷔한 드랙 퍼포먼스는 “드랙이 젠더의 경계를 ‘문질러 지우는’ 가장 강력한 예술의 한 형태”라는 확신과 더불어 4.5회차(2017.12.25) “고요한 밤, 붉은 밤”을 통해 앙코르 공연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여성, 괴물」은 2017년을 마무리 짓는다. 「여성, 괴물」이 트위터 계정(@monstrousfem, 2017.12.16)을 통해 밝히기를, “언제나 경계의 인물들인 우리가 Silent Night, Bloody Night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지난 9월 2일부터 11월 25일까지 종로구의 ‘토탈미술관’에서 “성난 자매들”(Savage Sisters)이라는 근사한 이름과 함께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를 독해하는 세미나가 진행되었고, 같은 책에서 논의되는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바바라 크리드가 속해있던 페미니스트 영화 모임의 이름이기도 한) ‘성난 자매들’은 총 열 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졌고, 세미나의 결과물은 오디오 비주얼 필름 에세이의 형식으로 발표된다.


2018. 12. 01. 부활

지난 12월 1일 동소문에서 열린 여섯 번째 「여성, 괴물」, “부활”은 ‘성난 자매들’의 세미나 멤버들이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의 각 장별로 진행 및 조력을 맡은 테이블 토크, 그리고 같은 책의 역자인 손희정 평론가의 강연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테이블 토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해 열띤 대화를 펼쳤다. 장소는 춥고 어두웠지만, 세미나 주제의 맥락과 어우러져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공포영화와 여성 간의 관계라는 쟁점이 학술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은 영화이론에 정신분석학이 도입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부터이다. 당시 로빈 우드와 제라르 렌느 같은 영화학자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타자로 규정되는 여성이 영화에서는 주로 희생자로 그려지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것이 여성과 공포영화를 둘러싼 주된 담론이었다.


반면, 바바라 크리드를 비롯한 일련의 여성 영화학자들은 더욱 복합적인 논리를 통해 공포영화 속 여성을 해석했다. 남성 괴물의 희생자로서의 여성 인물만이 아니라,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 괴물’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크리드는 ‘여성 괴물’을 설명하며 ‘비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비체’란 ‘아닐 비’(非)와 ‘천할 비’(卑)를 포괄하는, 기호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개념인 “아브젝트”(abject)의 번역어이다. 아브젝트는 ‘내’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주체로 존재하기 위해 떼어내거나 버린 것을 뜻한다.


크리드에 따르면 공포영화 속 여성 괴물은 세 가지 차원에서 비체적이다. 토사물, 교란적인 경계, 그리고 비체로 그려지는 어머니의 형상. 이러한 괴물들은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부로 ‘버려진’, “억압된 것의 귀환”이다. 그리고 공포영화는 우리에게 주체가 되기 전의 상태, 지금은 떼어내버렸기 때문에 함께할 수 없는 것과 하나일 수 있는 환영, 다르게 말해, ‘바깥’으로 데려간다.


손희정 평론가의 강연 「여기 권하는 사회: 지금/여기의 여성혐오와 여성괴물」은 그의 석사 논문인 「한국의 근대성과 모성재현의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19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멜로 드라마에서 나타나던 여성의 형상은 2000년대 후반, 주류영화계에서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괴물, 귀신, 유령, 미친년의 모습으로 현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지 여귀일 뿐 아니라, “‘모성’이라는 이름에 포박되어 있는 여성괴물이었다”. 강의에 대한 보다 자세한 기록은 「여성, 괴물」 트위터 공식 계정(@monstrousfem)에 담겨있다.


강의 이후에는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는데, 마지막 질문은 「여성, 괴물」이 취하는 전략에 관한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여성괴물이 단순히 지금/여기의 여성혐오의 산물이라면, 여성괴물을 주체화하고 이를 미적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여성, 괴물」의 방향은 위험하지 않은가’라는 ‘성난 자매’의 의문이었다. 이에 대한 손 평론가의 답변은 “해석이 해내는 전복이 있고, 그 순간 만들어지는 의미망이 있다”라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처럼, 지금/여기를 해석-전복하는 존재들이 지금/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드랙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여성, 괴물」 트위터 공식 계정 (@monstrousfem)

서인숙, 「공포영화속의 여성 섹슈얼리티-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 괴물을 중심으로-」, 『영화교육연구』 1권, 한국영화교육학회, 1999

최애영, 「여성은 왜 괴물로 형상화 되어왔는가?: 바바라 크리드, 『여성 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영화,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여성문학연구』 21권, 한국여성문학학회, 2009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역, 『공포의 권력』, 동문선, 2011

김태원 기자

lemonadegogo99@gmail.com